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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기.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1. 시공사. 2003.

구태익 | 2009.03.10 01:01 | 조회 1030
또 한권의 아주 흥미진진한 재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 읽은 것은 지난해 눈수술을 받고 집에서 쉬면서 이었으나, 의사가 눈을 쓰지 말라 하여 보다말다 하였다가 얼마전에 다시 꺼내 무척 흥미롭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2006년 2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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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기.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 시공사. 2003.


14~16세가 유럽에서는 그리스ㆍ로마의 고전문화가 부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문, 예술, 사상 등에서 새로운 문화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가리켜 르네상스라고 한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문화의 전통을 보전하였으며, 지중해무역의 중심지로서 도시들이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 도시국가들이 전성기에 있을 때,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다
: 중학교 2학년 <사회>교과서 44쪽에서..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원들 중에는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와 같은 교황이외에도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의 여러 도시국가를 지배한 군주 등 쟁쟁한 인사가 많았다. 특히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대대로 학문과 예술을 보호하여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 금성출판사. 중학 2학년 자습서 <사회> 44쪽에서..

위의 교과서 내용은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운동에 관한 상식의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배경과 원인에 관한 설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그 전개과정과 결과에 관한 이해도 전혀 없습니다. 역사를 이렇게 ‘수박 겉핣기식’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기에 이탈리아반도를 중심으로 문예부흥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점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 이탈리아반도는 지중해를 통한 물자교역의 요충에 위치하여, 11세기말부터 13세기까지 이어진 십자군원정을 통하여 비잔틴제국과 이슬람제국 그리고 동방과의 교역을 독점할 수 있었으므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는 점,

두번째는 이슬람이나 비잔틴과 무역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들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폐쇄된 유럽대륙의 사상과는 달리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소개되어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반도는 유럽역사의 영원한 원천이라고 하는 로마제국의 본거지였으므로 찬란했던 고대 로마문화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어 이를 부흥시키려는 노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에서도 하필이면 피렌체가 그 중심에 위치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피렌체는 프랑스 등 남부유럽과 독일과 같은 북부유럽에 물자를 공급할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한 까닭으로(영ㆍ호남과 서울을 잇는 길목에 위치한 삼거리가 번성하여 천안이 되었듯이) 상업자본이 크게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부유한 상인들이 다투어 예술을 후원한 이유는 중세의 봉건체제 아래에서 신흥자본계급으로 성장한 그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특권은 너무나도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과거 화려했던 로마시대 귀족들의 삶을 꿈꾸며 귀족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문화와 예술분야에 아낌없이 투자하였다는 것. 이것이 이제껏 내가 아는 르네상스운동의 배경에 관한 지식의 전부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주장합니다. 르네상스 예술을 결코 오늘날 우리들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은 당시의 예술과 예술가들이 오늘날과 같은 순수예술 창작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당시의 예술은 언제나 부와 권력과 함께 하였으므로 예술가는 그들의 재능을 팔고 재력가는 예술을 통해 부를 과시하였으며, 권력자는 이를 통해 그의 힘을 과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술의 후원자요, 르네상스운동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는 메디치가문 역시 예술진흥을 위해 예술가들을 뒤에서 돌봐주는 공익적 후원자가 아니라 예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적극적으로 이용한 정치가요, 세력가였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중세적 상황에서 상업을 통해 이윤과 이자소득 획득한다는 것은 고리대금업으로 취급되어 종교적 파문을 선고받을 정도로 큰 죄악이었으니, 신흥자본가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교회에 막대한 헌금을 납부하여야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점차 교회는 이들의 자본에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고, 부자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가문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하여 교회를 신축하거나 개축하는 데에 헌금을 하는 대신 교회장식에 그들의 문양을 새기거나 자신들의 모습을 새기면서 예술가들을 이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그들이 예술의 ‘후원자’라기 보다는 ‘주문자’였다고 평가합니다. 사실 후원자를 뜻하는 영어 ‘patron\'의 어원인 라틴어 ’partrono\'는 수호자, 후원자, 단골손님이라는 뜻도 있지만 고대 로마시대에는 ‘평민의 보호자’, ‘노예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쓰이었다니, 당시의 예술가와 주문자의 관계는 후원의 관계이기 보다는 주종에 가까운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르네상스 당시의 위대한 미술작품은 실제로는 한낱 장식용 악세서리나 공예품 가격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헐값을 받았으며, 화가들은 그림 주문자의 온갖 주문과 간섭을 받으며 쥐꼬리만한 수고비에 감사해야 하는 철저히 예속된 노예와도 같은 처지였다고 합니다.

실례로 15세기에 살았던 메디치가문의 ‘피에르 디 메디치(1416~1469)’는 메디치궁의 벽에 <동방박사의 행렬>이라는 벽화를 그리게 하면서 세 사람의 동방박사 모습을 각각 비잔틴황제 ‘조반니8세’와 그리스정교의 총주교 ‘쥬세페’ 그리고 메디치가문의 후계자이자 그의 아들인 어린 ‘로렌초 일 마니피코(1449~1492)’의 얼굴로 대치하도록 명하였으며, 이들을 뒤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름 아닌 ‘피에르’ 자신과 그의 아버지 ‘코시모 일 베키오(1389~1464)’의 얼굴로 그리게 하였고, 어떤 모습으로 무슨 색을 사용하여야 하며 어떤 배경에다 어떤 사물을 넣으라는 것까지 지정할 정도이었다고 합니다.

첨부된 아래 그림이 바로 <동방박사의 행렬>이라는 벽화의 일부인데, 아래 오른쪽에 백마를 탄 젊은이가 메디치가의 종손 ‘로렌초’이고, 그 뒤를 따르는 백마 위에는 아버지 ‘피에르’가 타고 있고, 그 뒤 갈색 말을 탄 이가 할아버지인 ‘코시모’ 입니다. 이 그림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메디치가문의 정통후예인 ‘로렌초‘가 가문을 이어 나가며 그의 든든한 후견인으로 ’피에르‘와 ’코시모‘가 받쳐준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피에르’가 이런 그림을 그리도록 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중세는 봉건영주와 교황의 권위가 강조되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었으나 이 당시 이탈리아는 강력한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 눌리어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크고 작은 영주들이 지배하는 공국들로 분열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서 유독이 피렌체와 베네치아만이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뽑는 공화정의 형태였다는 것입니다.

(※ 참고 : 공국(公國)이란 큰 나라로부터 ‘공’의 칭호를 받은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로서, 통치권이 자식에게 되물림 되지 않으며 다른 공작가문과 서로 돌아가며 통치한다. 물론 나중에 강력한 공작이 나타나 권력을 세습하게 되면 자연히 공국에서 왕국으로 바뀐다)

따라서 상업자본을 축적한 메디치가문은 정치적 야심을 품었고, 가문의 명예를 높여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려는 수단으로서 예술을 이용하여, 예술작품의 주문제작을 통해 정치선전을 꾀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르네상스 초기인 14세기에 살았던 ‘코시모 일 베키오‘는 자신의 경비로 도시 한가운데 있던 산로렌초 성당을 대대적으로 개축함으로써 기존 명문가인 ’파치‘가문과 ’스트로치‘가문에 대항하여 신흥가문인 그들의 위세를 과시하였으며, 그의 손자 ‘로렌초 일 마니피코’는 옛 미술품을 수집하고 작가를 다른 왕이나 귀족에게 소개함으로써 외교적 기반을 굳혀갔습니다. 나중에 로마교황 레오10세가 되는 그의 아들 ‘조반니 디 메디치(1475~1521)’는 성인으로 추대받는 교황 레오3세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대치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그와 동일시하도록 하였으며, 그의 후손으로 나중에 공화정을 폐지하고 공작으로 등극하게 된 ‘코시모 1세(1519~1574)’는 급기야 하느님의 상징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자신의 신격화를 꾀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히틀러나 스탈린, 김일성 같은 독재자들이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 포스터나 동상을 만들어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어찌 보면 당시의 예술가들은 순수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창작자가 아니라 오늘날의 사진작가나 그래픽 혹은 광고 디자이너, 축제의상가 또는 무대 디자이너 역할을 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골리앗을 물리친 구약성서의 다비드상이 피렌체 공화정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등장한 것도, 로마교황이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상을 만든 것도 모두 다비드나 로마황제의 후광을 통해 권력자들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 것(박대통령시절 광화문4거리에 세운 이순신장군 동상 역시 군부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문무를 겸비한 구국의 영웅으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이며, 평생 전쟁터에 나간 일도 없는 코시모공작이 갑옷차림의 사자와 같은 인상으로 그려진 것도, 예순살의 후작부인이 젊은 미녀의 얼굴로 바뀐 것도 오로지 작가의 정신과는 상관없는 주문자의 요구에 따른 것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경탄해 마지않는 위대한 예술가들 -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라파엘로 등 수많은 그 시대의 작가들이 모두 영혼이 없는 단순한 기능인에 불과하였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아무리 주문자들이 까다롭고 사리에 맞지 않는 주문을 하더라도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하고 실험하여 작품을 완성해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시기에 예술을 주도한 작가들은 그들의 창의성과 고도의 숙련된 기예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빛날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저자는 예술품은 박제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감상하여서는 안된다는 말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특히 르네상스기에 만들어진 예술품은 주문자의 의도가 분명하므로 주문자-생산자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예술품이 놓였던 본래의 그 자리에서 작품을 감상하여야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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