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정보기억 정보기억에 체크할 경우 다음접속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개인PC가 아닐 경우 타인이 로그인할 수 있습니다.
PC를 여러사람이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는 체크하지 마세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자랑스런 우리 역사 : 허성도교수

구태익 | 2011.11.24 01:01 | 조회 2489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는 정말 뭉클한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한 이래, 한반도에 갇힌 우리 민족의 역사는 언제나 외침에 시달리며 근근히 어렵게 어렵게 생명을 보전해온, 그리 자랑스러울 게 없는 약소민족으로 생각해왔던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풀렸습니다. 근대사 100년.. 일제의 침탈에 허덕이다가 간신히 독립을 하는가 하였더니,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고 그나마 남은 쪽박마져도 산산조각이 난 채 정말 빈 손, 맨 주먹인 채 아득한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렇게 짧은 세월에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했던 의문이...

그 뿐인가요? 이제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넘어서 \"한류\"라 불리는 문화선진국으로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이 현실을 도저히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늘 강대국에게 짓눌리며 기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찌질한 백성이 불과 반 세기만에 세계주도국 대열에 올랐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이 글을 읽고 나는 드디어 오랜 의문이 풀렸습니다.

대한민국과 한민족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원고가 길어 스크롤의 압박이 있습니다만, 부디 끝까지 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함께 생각해봅시다. 지금껏 너무 몰랐던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랑찬 역사에 대해...

===================================


ㆍ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초청 강연 : 서울대 중문학과 허성도교수
ㆍ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ㆍ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