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정보기억 정보기억에 체크할 경우 다음접속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개인PC가 아닐 경우 타인이 로그인할 수 있습니다.
PC를 여러사람이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는 체크하지 마세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人境과 境外 : 황기원 칼럼

구태익 | 2004.08.04 01:01 | 조회 4183
環과 境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환경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 정의로서, 바로 環境이라는 한자말과 environment라는 영어 말에 농축되어 들어 있음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면서 환경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뉘앙스가 숨어 있음을 보게 되고, 그 뉘앙스는 인간의 環境觀에 미미하기는 커녕 심심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環境이라는 말에서 環은 둘러싼다는 뜻이고, 그렇게 때문에 둘러싸여지는 주체를 이미 내포하고 있으니 사실 이 한 마디로써 그 뜻을 충족시킨다. 그러므로 그 뉘앙스는 環보다는 境에서 비롯한다.

境은 土(땅)와 竟(끝)의 뜻을 모은 문자이고, 또 竟은 사람(儿)의 노래(音)가 끝났다는 뜻을 모은 문자이다. 해서 境은 나라와 나라 사이를 가르는 國境처럼‘경계’를, 그윽한 幽境처럼 어떤‘장소’를, 어려운 逆境처럼‘처지’를, 그리고 고아한 詩境처럼‘수준’을 가리킨다. 이 쓰임새 모두 境은 울타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것들이 병치되거나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 가지 環境觀

그래서 환경이라는 말에는 당연히 울타리가 숨어 있으니, 이제 주목해 볼 것은 우리가 환경을 생각할 때에 나타나는 세 가지 시각이다. 그 하나는 울타리가 없는 삼라만상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환경을 울안으로 보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환경을 울 밖으로 보는 것이다.

환경이라고 근대 동양인들이 번역한 영어 environment라는 말에도 물론 이 세 가지 시각이 들어 있다. environ의 어원은 안을 뜻하는 en-과 회전을 뜻하는 -vier의 합성에서 비롯하니, 분명히 나를 둘러친 울안이다. 그러나 environs는 近郊를 뜻하니 이는 정녕코 울 밖이다. 그러나 environment는 이제 울타리가 없이 꽉 짜여진 생태계와 같은 뜻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바람직한 삶터로서 여기고 그리는 것은 어떤 시각에서 보는 환경일까?

나라를 뜻하는 國이나 정원을 뜻하는 園에서 囗는 울타리이다. 그러므로 나라나 정원은 분명히 울안이 좋고 울 밖이 나쁜 장소라는 환경관이 숨어 있다. 이때 환경은 아끼고 지켜야 하는 삶을 약속하는 반지처럼 빈 틈 없이 둥글고 샐 틈 없이 단단하다.

울 밖은 이미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환경이 아니고 사람답지 못한 들녘 오랑캐, 야만인들이 사람답지 않게 사는 塞外이다. 그러나 울안은 길들여지고 다듬어진 문화인들만의 邑內이다. 시쳇말로 그 곳은 도시환경이고 문화환경이다. 그 울은 기치창검이 수풀처럼 울창하고 토석이 절벽처럼 높은 장성이다.

하지만 그 환경이 자랑스러운 반지가 아니라 옥죄는 고리가 되면 울안과 울 밖의 상황은 역전된다. 이와 같이 답답하고 거북한 환경의 상황, 울 밖은 이른바 저속한 俗世와 더러운 陋巷(누항)이라는 말로서 타기된다. 이것은 도연명이 움막을 짓고 숨어살았던 人境, 시쳇말로 인간환경이고, 수레바퀴 소리가 시끄럽던 도시환경이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소쇄하고 편안한 환경의 상황은 이른바 世外, 그리고 境外라는 말로서 칭송된다. 이것은 도연명이 그리던 무릉땅의 世外 桃花源境, 시쳇말로 이상향이다. 아니면 이것은 성혼이“병 없이 분별없이 늙어 가는”장소로 그렸던“말없는 청산과 태 없는 유수와 값없는 청풍과 임자 없는 명월”이 아름다운 隱逸之處, 시쳇말로 자연환경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환경이라는 반지와 고리이다. 이것들은 하나의 환경을 벗어 낫지만 결국 또 다른 환경에 둘러싸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울을 초월하면서 사는 방식이 있으니, 하나는 붕새처럼 고공을 떠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새처럼 저공을 들락날락하는 것이다. 청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처에 널려 있으니, 비록 하찮지만 정 붙이고 깃들여 사는 곳이 바로 나의 환경이라고 여기는 것은 붕새의 생활 방식이다.

네다리 솔소반 죽 한 그릇에
하늘과 구름이 함께 떠돈다
주인이여 무안해 하지 말지니
물 속에 비친 청산 내 좋아하오

라고 노래한 김삿갓의 경지가 바로 이 방식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도성 안에서 피탈을 내어 나라를 뒤흔드는 권세를 쥐고서도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근교에 狎鷗亭을 짓고 기러기를 벗 삼아 초연한 척 거짓 삶을 살았던 한명회는 분명히 참새처럼 울을 들락날락하는 방식의 표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여전히 환경이라는 반지와 고리를 벗어 던지지 못한다. 이 역시 하나의 환경을 벗어났지만 결국 또 다른 환경에 둘러싸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한번 곰씹어 보아야 할 것은 境의 개념이다. 불가에서는 능히 알 수 있는 것을 智라하고 앎을 이룩한 상태를 境이라고 하였다. 노자는 남을 아는 것을 智라 하였고 나를 아는 것을 明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境은 땅위에 그어 놓은 금도 아니고 허공에 세워 놓은 울도 아니다. 이것은 깨달음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터전인 意境인 것이다. 이것은 쇠를 끝없이 갈아 만든 明鏡에 비로소 비치는 心像인 것이다.

이것이 도연명으로 하여금 人境 속에서 車馬의 시끄러움을 잊을 수 있었던 까닭이고, 백주에 사립문만 닫으면 세상일을 끊을 수 있었던 밑천이다. 이것이 宗炳으로 하여금 방안에 누워서 천리를 유람할 수 있게 했던 경지이다. 이것이 버질로 하여금 불모지인 아르카디아를 이상의 세계로 노래하게 한 이미지이다.

환경은 손발을 묶는 고리가 아니라 생각을 맑게 하는 머리띠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人境도 境外도 아닌 境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황기원교수님 칼럼 : [책 같은 도시 도시 같은 책]에서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455개(15/23페이지)
참고자료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75 펜타곤 추모공원 설계한 한국인 조경가, 제프 리 구태익 4363 2004.09.11 01:01
174 도시하천을 살리자-8 : 국민일보 사진 구태익 3612 2004.09.08 01:01
173 어린이놀이시설의 새로운 경향 첨부파일 구태익 3249 2004.09.06 01:01
172 도시하천을 살리자-7 : 국민일보 사진 구태익 7131 2004.09.02 01:01
171 도시하천을 살리자-6 : 국민일보 사진 구태익 3457 2004.08.25 01:01
170 도시하천을 살리자-5 : 국민일보 사진 구태익 3773 2004.08.19 01:01
169 도시하천을 살리자-4 : 국민일보 사진 구태익 3994 2004.08.11 01:01
168 답글 구태익 석사논문(원문 PDF파일) 첨부파일 구태익 3784 2004.08.06 01:01
167 도시하천을 살리자-1 : 국민일보 칼럼 구태익 3627 2004.08.06 01:01
166 도시하천을 살리자-2 : 국민일보 사진 구태익 4393 2004.08.06 01:01
165 도시하천을 살리자-3 : 국민일보 사진 구태익 3818 2004.08.06 01:01
>> 人境과 境外 : 황기원 칼럼 구태익 4184 2004.08.04 01:01
163 서울시 도시녹지의 환경개선 효과[서울시정연] 첨부파일 구태익 3359 2004.07.16 01:01
162 신행정수도와 풍수-1 : 신경준칼럼 구태익 4849 2004.07.09 01:01
161 답글 신행정수도와 풍수-2 : 신경준칼럼 구태익 4016 2004.07.09 01:01
160 신비스런 한국의 예언지명 구태익 4347 2004.07.09 01:01
159 아침 공기가 더 나쁘다 구태익 4188 2004.06.17 01:01
158 [생명 되찾은 서울 난지도] 上 : 동영상 구태익 4219 2004.06.11 01:01
157 답글 [생명 되찾은 난지도] 下 - 중앙일보 구태익 4082 2004.06.11 01:01
156 우면산 생태공원 [중앙일보 6월1일자] 구태익 3726 2004.06.01 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