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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0여리 유럽대장정..^^

구정귀 | 2003.08.26 01:01 | 조회 4428
처음에는 유럽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일정을 보여주시고 독일과 네덜란드의 정원을 설명하는 영어책 두 권을 주시며 해석하라고 하실 때, \'정말 가긴 가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2권의 책을 해석하면서, 집 벽에 큼지막하게 붙어있던 여행예정루트가 그려진 유럽 지도를 보면서, 보름동안의 여행을 기다렸다.

ㆍ8월 3일(일)

4시에 기상하여 어젯밤에 챙겨놓은 짐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7시에 4번 출구에서 우리와 여행을 함께 할 아빠 학교 학생 두 명(근엽형과 상원형)을 만났다. 그리고 나서 베를린까지 짐을 부치고 나서 출국수속을 하니 8시30분이었다. 잠시 면세점 구경을 한 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홍콩까지는 대략 2시간정도 걸리는데 나는 타자마자 자버려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홍콩으로 와버렸다.

홍콩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할 때까지는 잘 몰랐는데 입국수속을 하고 홀로 나오자 이상한 향기(?)가 났다. 이 향기의 정체는 홍콩사람들의 땀 냄새였다. 알고 보니 이곳 사람들은 땀을 흘리고 그 옷을 그냥 말린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말리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홍콩거리를 딱 2시간만 거닐어 보니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루룩 흐르는 이런 습기차고 바람 안 불고 더운 곳에서 하루를 생활하고 집에 오면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것 같기도 하였다. 홍콩은 정말 더웠다. 여하튼, 1시에 홍콩에 발을 디디고 홀로 나가자 관광안내센터에 안내원이 앉아 있었다. 우리가 두리번거리자, 그 사람이 다가와 쉬운 영어로 이것저것 재미있게 안내해 주어서 홍콩의 여러 정보도 얻고, 2시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안내원이 가르쳐준 대로 41번 버스를 탔다. 홍콩의 버스는 전부 2층 버스이고, 건물들도 1층이 모두 높았다, 좁은 면적에서 살아야하는 입장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것 같다.

일곱번째 정류장에서 내려서 홍콩공원으로 갔다. 홍콩공원 앞에는 작은 분수가 있는데 그 분수는 참 깔끔하게 젖을 수 있게 해놓아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홍콩공원에서는 너무 더워서 그늘만 찾아다녔고, 너무너무 더워 대충보고 peak tram으로 갔다. 그곳에서 peak tram을 타고 산꼭대기에 있는 빅토리아peak로 갔다. 그곳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아는 음식이 하나도 없어서, 아버지께서 그냥 1번부터 6번까지 순서대로 주문을 하셨다. 하지만 음식도 그런대로 먹을 만 했고, 음식점 앞에 블랙홀이라는 돈벌이가 꽤 될 것 같은 기계가 있었다. 그 모양은 단순히 깔때기 모양이고 윗부분에서 동전을 굴려 빙빙 돌다가 좁은 구멍으로 떨어지는 것인데 왠지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은 뒤, 높은 곳에서 홍콩시내 전경을 본 후 다시 peak tram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서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타러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chat park라는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동남아시아 여자들이 수 백명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고, 눈을 감고 들으면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 여하튼 배를 타고 구룡공원을 향해 걸어가는데 역시 더운 곳이다 보니 에어컨의 성능이 월등한 것 같았다. 문이 열려 있는 상점 앞을 지나갈 때면 마치 그 지역만은 열기가 범접하지 못하는 신성지역 같았다.

우여곡절 끝(더워서)에 구룡공원에 도착했다. 넓기는 정말 넓었는데 너무 더워서 분수 앞에 잠시 앉아 있다가 잠이 들어 구룡공원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그러다 다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서 공항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가 chat하는 날이라서 많은 동남아 여인들이 거리에, 도로에 나와 담소를 나눠서 도로 곳곳이 폐쇄되어 있었고 버스정류장도 바뀌어서 2시간 가까이나 정류장을 찾아 헤매었다. 마침내 버스정류장을 찾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베트남음식점이 있었다.

아버지의 제안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맛을 보기위해 들어갔는데 아쉽게도 쌀국수는 없었고, 해석 불가능한 음식들이 메뉴판에 올라와 있어서 이번에도 무작위로 시켰는데 맛이 괜찮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고 들어서니, 입국게이트에서는 보지 못했던 라이트형제의 첫 비행기 모형이 천장에 걸려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출국수속을 해버리고 면세점에서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치 않게도 어떤 설문조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용은 왜 홍콩에 왔는지, 와서 뭐했는지, 재밌었는지 뭐 이런 것을 조사하는 것인데 알아듣기는 잘 알아들은듯 싶은데 제대로 대답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13시간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비행을 하면 몹시 피곤하고 지루해서 환장한다고 하던데, 홍콩에서 조금 무리하여 돌아다녀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많이 피곤해서 자면서 날아갔다.

ㆍ8월 4일(월)

취리히에 도착했다. 취리히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이번에는 홍콩에서처럼 그 사이에 시간이 많지 않아서 공항 밖으로는 나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이번 비행은 2시간 밖에 되지 않았고, 승객들이 딱 16명밖에 없어서 매우 편하게 독일로 갈 수 있었다. 하늘에서 본 베를린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초록바다에 듬성듬성 서있는 저택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며 녹지율 40%라는 것을 자랑하는 듯 했다. 베를린 공항에서 이모부께서 독일로 발령이 나셔서 2년 전에 함께 독일로 오신 이모와 만 2살 된 사촌동생을 만났다. 공항에서 9인용 폭스바겐 차를 빌리고 베를린 시내로 출발했다. 이제 일행이 8명이나 되었는데(2살박이도 유아용 시트를 준비하여 어엿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차가 비좁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베를린에선 분단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과 장벽을 보고 전승기념탑을 구경하고 케밥을 먹으러 갔다. 케밥은 터키의 햄버거라고 할 수 있는데 싸고 양 많고 맛있는 양고기 햄버거이다. 그리고 우리의 베이스캠프이자 이모의 집이 있는 코트부스로 갔다. 거기서 이모부께서 비행의 피곤을 풀어주신다고 사우나로 데려가셨다. 독일의 사우나는 남녀혼탕이라서 긴장을 하고 갔는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그냥 살색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저절로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서 편히 피곤을 풀 수 있었다.

ㆍ8월 5일(화)

7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드레스덴(Dresden)으로 이동했다. 드레스덴의 Zwinger궁 앞 광장의 좌측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있고 우측에는 성당이, 중앙에는 궁전 주인인 작센후작의 동상이 있었고 궁전은 ㅁ자 모양이었다. 과거 이곳은 동독 땅이었다. 과거 동독에서 생산된 차 가운데 깍두기모양의 매연이 심하게 나오는 차가 있어서 그 차 때문에 성벽이나 성의 조각들이 다 검게 변해있다고 이모께서 설명해주셔서 공해의 무서움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은 위도가 높아서 그런지 하늘이 낮아 구름이 꼭 잡힐 듯 내려와 있고, 그만큼 햇살이 너무 뜨거웠다. 그래서 성벽 그림자에 앉아 있다가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노래를 잘 감상하고 20센트를 주고 Zwinger궁전을 나왔다.

그 다음에 작센 후작의 여름궁전 Pillnitz로 이동했다. Pillnitz궁의 건물은 동양식으로 되어 있다 길래 어떨까 했는데, 그 당시 동양이라 함은 인도를 뜻하는 것이어서 인도풍 건축들이 있었고, Pillnitz궁의 정원은 건물 면적의 대략 50배정도였다. 그건 정원이라기보다 일종의 수목원 같았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나열해 있는 길을 거닐다가 왠지 모를 편안함과 웅장함에 감동을 받았다. Pillnitz를 나와서 원래는 다음 일정이 길어서 체코로 가려고 했으나 여행가이드북에서 체코의 치안은 매우 불량하다고 해서 체코와 독일 국경근처에서 자기로 했다. 그리하여 국경마을 Altenberg에 도착했다.

다른 독일지역에서는 山구경을 한번도 못했는데 Altenberg는 마치 스위스의 산골마을 같은 분위기가 났다. Altenberg에서 구한 숙소는 이번 여행 전체 숙소 중에서 최고였다. 일단은 싸고, 맛있는 음식에 예쁜 주인과 그 엄마보다 더 예쁜 딸이 있어, 유럽에 온 것을 축복하며 눈을 감았다.

ㆍ8월 6일(수)

체코국경을 넘어서 프라하에 당도하였다. 좀 비싸긴 하지만 안전을 위해 유로주차장에 차를 잘 세워놓고, 30여년전 체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는 바츌라프광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단체관광을 온 한국인 50명 정도를 만나, 그쪽 가이드의 설명을 얻어듣고 그 사람들이 단체사진을 찍을 때 몰래 끼어서 같이 찍기도 했다. 바츌라프 광장은 바츌라프국왕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바츌라프국왕은 강력한 팽창정책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가다가 동생에게 암살당했는데, 이곳사람들은 이 사람을 우리나라 광개토대왕 만큼 존경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구시가지로 갔다. 구시가지에도 물론 광장이 있었다. 물론 그 광장에도 성당과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성이 있었는데 특히나 이 성은 천문시계탑으로 유명하다. 중세에는 시간을 중히 여겨 시계탑을 높이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이 탑의 정상에 올라 중세의 모습을 고스라니 간직하고 있는 시가지를 둘러봤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넘어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중세의 건축들이 잘 간직되고 있었다. 이 탑을 내려와서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카를교에 갔다. 원래 카를교는 별 볼일 없는 다리였는데 어쩌다 무너져서 다시 카를국왕이 다시 지을 것을 명령하면서 30개의 성상을 추가하여 지금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30개의 성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 요한 네포무크의 동상은 만지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소문이 있어 하도 만지작대서 황금색으로 눈에 띄었다. 그리고 다리 끝에 있는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고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무려 30유로(42,000원)나 지불했다. 그냥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니깐 그러려니 하고 다음 목적지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한국관이라는 숙소를 예약해 두었으므로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드디어 일이 터졌다. 그동안 배낭여행을 하는 대학생들을 많이 만나서 얘기도 많이 했는데 모두 유럽에 와서 기분 나쁜 건 한국사람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멋진 곳에서 잘 자고 잘 지냈기 때문에 남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빈에 와서 좋은 기분을 망쳐버렸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을 때는 으리으리한 사진들이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반지하에 침대는 10개가 2층 침대로 이어져 있었고, 더군다나 침대틀은 조금씩 썩어있는 나무들로 이어져 있고, 침대의 메트릭스는 이상하게 꺼져있어서 길가다 주워온 것 같았다. 그리고 통풍은 전혀 안되어 있고, 만약 불이난다면 대피할 수 있는 곳은 전혀 없는 무지막지한 곳이고, 대략 30명 가량이 같이 자는데 화장실은 지하에 한 개 있고, 샤워실도 지하에 한 개 뿐인데다 면적도 한 평이 안 되는 말도 안되게 좁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실로 예약을 했었는데 그것마저 지키지 않고 입구에 사람을 더 받아서 우리는 계약파기라고 항의하자 주인장은 양해를 구한다고 하면서 값을 1인당 7유로(약 10,000원)씩 깎아주었다. 일단 이틀로 예약한 것을 하루 자는 걸로 바꾸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꿀꿀한 기분에서 저녁은 대강 먹고 아버지께서는 화가 안 풀린다고 하면서 2차를 가자고 하셨다. 2차로 간 음식점에서 2m 짜리 소시지를 안주로 아버지와 형들은 맥주를, 나는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관으로 와서 잠을 잤다.

ㆍ8월 7일(목)

어제만 해도 주차걱정은 하지 말라는 아저씨가 5시쯤에 다른 투숙객과 아버지를 깨우시더니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차를 빼야한다고 양해를 구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차를 빼러 나가셨다가 빈 시가지는 일방통행이 많은지라 한참을 헤매었다가 간신히 주차를 시키고 돌아오셨다고 아침부터 화가 나셨다. 나는 일찍 일어나 다른 투숙객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이 아침 먹으라고 하는 소리에 식당으로 갔다. 아침은 육개장만 해서 줬는데 참 가관이었다. 기름이 둥둥 떠다니고 자르지도 않은 엄청 긴 이름모를 녹색식물이 2개 달랑 있고, 반찬은 리필이 되지 않고 밥도 매우 적게 주면서 셀프라고 가져다가 먹으라고 했다. 아침부터 다시 열 받은 우리는 어쨌든 빈에 왔으니 시내로 나갔다.

처음 간 곳은 슈테판 성당이었다. 어마무지한 규모의 웅장한 성당인데 그냥 그뿐이다. 큰 바로크 양식의 건축인데 아침부터 기분이 몹시 안 좋아서 그런지 영 감흥이 없었다. 다음은 멋진 정원이라는 이름의 벨베데르(Belvedere)정원에 갔는데 전정도 하지 않고, 분수도 틀어놓지 않아서, 별로 재미가 없었다. 교외에 있는 중앙묘지에 들러 모차르트와 베토벤ㆍ요한스트라우스ㆍ슈베르트의 무덤을 참배하고 시내로 들어와 \'쇤부른(Schoenbrunn)\'궁전을 답사하고, 짤츠부르크로 이동하였는데,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여러 군데를 둘러보고 다소 늦게 출발하였더니 방 구하기가 어려웠다.

짤츠부르그로 향하며 여관이나 산장마다 들러 방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불이 켜진 호텔을 발견하고 들어가 흥정하였더니, 특급호텔인 쉐라톤호텔이라 가격이 한 사람당 10만원이 훨씬 넘었다. 하지만 한밤에 어쩔 도리도 없고, 여행나온 김에 특급호텔에서 하루를 묵는 것도 평생 추억이 될꺼란 아버지 말씀에 모두들 동의하며 이 날밤은 최고급 호텔에서 멋진 밤을 보냈다. 그나마 이모가 독일말을 잘해서 아침은 공짜로 먹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또 밤늦게 산길을 운전하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사슴이 지나가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한 것도 이 날이었다.

8월 8일(금)

편히 잘 자고 아침도 맛있게, 많이, 오랫동안 먹어 기분 좋게 나왔다. 12시에 다음 목적지인 짤츠부르크로 출발했다. 가장 먼저 미라벨(Mirabell)정원으로 갔다. 지금까지 본 정원들과 달리 작고 아기자기한 예쁜 정원이었다.

그리고 ‘물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헬부른성에 갔다. 헬부른성에는 성 안에 가이드 코스가 있어서 우린 그걸 신청했다. 한 가이드가 여러 명의 여행객을 데리고 다니며 이곳저곳을 설명해주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재밌고 무더위를 씻어주는 신선한 곳이었다. 가이드가 영어로 해서 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교황이 재미로 이런 시설을 만든 게 유래가 되서 지금까지 전래되고 있다고 한다.

시원하게 헬부른 구경을 하고 호엔짤츠부르크성으로 갔다. 이 성은 높은 산에 위치하고 있어서 걸어서는 못가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케이블카를 타고 성에 갔다. 역시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서 매우 좋았다.

성을 내려와서 모짜르트의 생가 구경을 한 후, 짤츠부르크를 떠나 인스부르그로 가는 길에 아버지는 어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해가 지기 전에 숙소를 구하셨는데, 그곳이 \'아차우(Aschau)\'였다. 아차우의 숙소(Burghotel)는 설악산에 온 듯한 묘한 한국적 분위기가 나는 곳이어서 역시나 편하게 잠을 잤다.

ㆍ8월 9일(토)

Aschau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인스부르크(Innsbruck)로 가서 \'황금지붕\'과 \'시의 탑\', \'개선문\'을 보고, 휘센으로 갔다.

독일에는 \'낭만가도(Romantische Strasse)‘라고 불리는 길이 있다. 우리는 이게 낭만적인 곳을 볼 수 있는 길 인줄 알고 일정에 포함했는데 알고 보니 ’로마로 가는 길‘이 이 낭만가도의 본래 뜻이라는 것을, 낭만가도의 시작인 휘센에 와서야 알게 됐다. 해서, 원래 낭만가도를 달려 뮌헨까지 가는 일정을 바꾸어 Landsberg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가기로 하고, 일단 휘센까지 왔으니 휘센의 명소, 일본디즈니랜드가 모방을 한 ’노인슈반슈타인(Neunswanstein)\'성을 보러 갔다. 이 성은 그냥 겉에서 보고 말았는데 산중턱에 하얀 성이 서 있는 것이 깔끔하게 멋이 있다.

파리로 가는 길에 대학도시로 유명한 독일의 ‘튀빙겐(Tübingen)’이란 곳에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튀빙겐은 우연히 지나다가 들른 게 아니고 150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고스라니 남아있는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구시가지를 구경하기 위해 일부로 숙박처로 정하였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런 관광명소는 따로 관리해서 관광객들만 오게끔 할 것 같은데 이 곳 사람들은 겉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까지 일반 가정집으로 쓰고 있는데도 잘 유지가 된다는 사실이 참 부럽다. 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이 ‘튀빙겐 여름축제의 날’이라고 해서 튀빙겐의 공원에서 열린 축제구경도 잘 했다. 아무래도 예약만 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행운이 절로 따라오는 것 같다.

ㆍ8월 10일(일)

할아버지가 직접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하이델베르크의 ‘하이델베르그(Heidelberg)\'성으로 갔다. 이 성을 올라가려면 350개의 계단을 올라가던지 잘 누워있는 경사면을 걸어 올라가야하는데 경사면을 올라가면 돈을 내야한다. 돈 받는 곳은 성문 앞에 있어서 우린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경사면을 올라가 결국 돈을 내고 城구경을 했다. 역시 높은 곳에 있어서 경치가 대단했다. 내려갈 때 나와 아버지는 계단으로 내려가 먼저 차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 때 귀찮아서 문을 살짝 닫고 있었더니 지나가는 독일 사람이 문이 열렸다면서 손수 문을 닫아주기까지 했다. 독일인의 국민성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일행들이 다 모이고 파리까지 700km를 달렸다. 파리까지는 계속 잠을 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파리에서는 사흘을 묵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3일치 예약을 했는데, 일행인 형들의 유럽여행 합류결정이 늦어진 관계로 해서 숙소가 형들은 우리 가족과 다른 곳에 숙소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 차를 우리 숙소에 두고 지하철을 타고 형들 숙소로 가기로 했다. 파리 지하철의 좌석는 한국처럼 일렬로 되어 있는게 아니고 음식점처럼 4개의 의자가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는 것이어서 처음에 자리에 앉았을 때는 시선처리가 거북했는데 나중에는 서로 이런저런 얘기도 하게 되었다. 어쨌든 한국에서 가져온 형들 숙소약도가 조금 이상해서 헤매다가 결국엔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본 끝에 겨우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을 찾아보던 중에 또 케밥집 같은 분위기의 식당을 찾아서 주문을 했는데 이상한 음식이 나와서 어디나라 음식이냐고 물어봤더니 파키스탄 음식이라고 한다. 역시 싸고 양은 엄청 많았는데 맛은 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족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우리 숙소로 돌아왔다.

ㆍ8월 11일(월)

어젯밤이 열대야였나 보다. 형들은 어제 더워서 6번이나 샤워를 하다가 결국에는 침대에 물을 뿌리고서야 잘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 숙소에는 에어컨이 나와서 매우 상쾌하게 잘 잤다. 그래서 형들 숙소를 우리숙소로 옮기게 형들 숙소에 가서 사흘 예약한 것을 취소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럴 수 없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오늘도 형들은 그냥 더운 숙소에서 자게 됐다.

여하튼 오늘은 ‘베르사유(Versailles)궁\'을 보러 갔다. 지금까지 여러 정원과 성을 봤는데 아버지는 계속 \"이런 것들은 다 베르사유궁을 모방한 亞流일 뿐이야\"라고 계속 무시를 하시길래 베르사유가 진짜 그렇게 대단할까 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하였다 수 백만 평의 엄청난 규모는 둘째 치고 정말 화려한 조각과 무늬들은 2차대전대 히틀러가 특별히 지시해서 전혀 손상이 안 가게끔 배려한 이유를 알게 한다. 너무 넓은 정원이여서 걸어서 보는 건 무리여서 남자들은 1시간동안 자전거를 빌려서 돌아다녔는데 ¼밖에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무려 42℃가 넘는 날씨 때문에 도저히 더 볼 수가 없었다. 아쉬움이 남는 베르사유를 뒤로 하고 나오는 길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이글이글 끓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차 본네트에 날계란을 깨봤더니 흰자가 익어버렸다……. 정말 무지무지한 태양이다.

그리고 베르사유의 원조가 된 \'보르비꽁떼(Vaux-le-Vicomte)에 갔다. 베르사유는 루이 14세가 이 보르비꽁떼를 보고 배알이 꼬여서 만든 궁이라고 하여, 많이 기대를 걸고 보르비꽁떼를 기다렸다. 보르비꽁떼 들어가는 길은 플라타너스의 길이라고 하는데 대략 1m간격으로 줄지어진 플라타너스가 아무것도 없는 평지위에 덩그러니 있다. 두 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멋있다\' 보르비꽁떼의 성과 정원도 규모는 꽤 크지만 큰 규모에 빈틈없는 화려한 무늬들이 있어서 단지 거대하다는 느낌만은 들지 않는다. 최고로 멋진 두 성을 구경을 한 후에 다시 파리시내로 들어왔다.

파리 시내에서 건물의 안과 밖이 뒤바뀐 파격적인 모습의 \'퐁피두센터’를 구경하고 스트라빈스키광장의 움직이는 분수를 봤다. 움직이는 분수는 예술적으로 극찬하는 작품이라지만 내가 봤을 때는 별의미 없는 정말 \'이상하기만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레알(le Halles)\'이라는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엘 갔더니 무시무시하게 생긴 흑인들만 돌아다녀서 매우 무서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형들 숙소에 차를 세워놓고, 어제 갔던 파키스탄 음식점에 가서 다른 음식을 시켜먹었는데 이번에는 맛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물과 얼음을 공짜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게 아주 좋았다. 저녁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우리 숙소로 돌아와서 시원한 에어컨 속에서 잠을 잤다.

ㆍ8월 12일(화)

우리 숙소로 형들이 차를 끌고 와서 차를 타고 파리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다가 개선문을 지나게 되서 사진도 한번 찍고, 모네의 정원을 보러 갔다. 모네의 정원은 모네의 그림을 그대로 정원으로 옮겨서 모네의 정원이라고 불리는데, 나는 모네가 일본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모네의 정원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두고 너무 더워서 근처에 모네의 박물관이 있어서 들어가서 2시간정도 시원하게 있다가 모네의 정원을 보러 갔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에 분무기와 더운 공기 때문에 정말 사우나에 온 것 같았는데 거기 있는 그림들은 다 일본그림이고 심지어 우리에게 일본말로 말을 거는 사람까지 있어서 조금 짜증이 났다. 말을 건 사람한테 우리는 한국사람이라고 조심하라고 그러긴 했는데 그러고 나니깐 이제 일본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빨리 선진국이 되서 한국말로 인사를 받아 봤으면 좋겠다.

모네의 정원 중에서 ‘물의 정원’이 있다기에 헬부른처럼 시원한 이벤트가 있을까 기대를 하고 갔는데, 물의 정원이란 건 그야말로 호수정원이었다. 다른 곳보다 습기가 더 많아서 더 더웠다. 나는 빨리 나와서 아까 갔던 박물관에 가서 10분정도 있다가 주차장으로 갔다. 정말 너무 더워서 우리는 파리 근처를 벗어나기로 했다.

그래서 400km를 달려 대서양, 이다도시의 고향인 ‘뻬깡(Fecamp)\'으로 갔다. 뻬깡의 절벽산 위로 올라갔다. 위엔 교회 겸 호텔과 밀밭이 있었다. 어쨌든, 그 위에서 뻬깡 시내를 내려다보니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어 흰색과 파란 바다가 대비되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산 위에서 길을 익혀두고 산을 내려와 해변으로 갔다. 위에서 볼 땐 몰랐는데 자갈 해변이었다. 일단 내의만 입고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나왔다. 자갈 해변이다 보니 모래가 없어서 깔끔하게 물놀이를 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 오니 저녁이여서 우리 숙소에 모여 다같이 한국에서 준비해간 컵라면과 햇반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이다 보니 맛이 끝내줬다.

ㆍ8월 13일(수)

아침부터 지옥 같은 파리를 벗어나기 위해 출발했다. 아버지는 파리시내 관광을 시켜주겠노라 하시며, 개선문ㆍ에펠탑ㆍ국회ㆍ국방성ㆍ대법원ㆍ대통령 궁ㆍ퐁네프다리ㆍ루부르 박물관ㆍ나폴레옹2세 다리ㆍ파리국립도서관 등을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일일이 설명해주셨다. 날씨가 더운 관계로 우리는 개선문과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서 잠깐 내려서 사진만 찍고 다시 차에 올라타 시원한 차 속에서 시내관광을 마쳤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이 파리의 디즈니랜드에 버금가는 자신들만의 주제공원을 만든 것이라고 하는 ‘아스트릭스 공원(Asterix parc)\'에 구경하러 갔는데 주차료만 10,000원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멀리서만 보고 벨기에를 거쳐 네덜란드로 갔다.

원래 네델란드에서는 ’헤트루(Het Loo)\' 정원에 가려고 했으나 가는 도중에 자동차가 너무 밀려서 독일의 북서부의 작은 마을 ‘엠멀리히(Emmerich)\'로 갔다. 이곳에서 숙소를 알아보는데 처음에는 ’귀곡산장‘ 같은 분위기의 Zimmer(여관)를 보았으나, 도저히... 화장실에 불도 안 켜지고 주인 몰래 어떤 방문을 열어보니 아주 어두운……. 영화에서 자주 보는 계단이 3개만 보이고 그 밑은 하나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지하실도 있고, 온 창문에 두꺼운 커튼이 달려있고 어떤 방은 아무것도 없는데 흰색 커튼만 날리는 방도 있고 주인의 얼굴도 딱 굳어서 정말 무서웠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은 결과, 결국 우리는 라인 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자리한 멋진 숙소를 잡았다.

ㆍ8월 14일(목)

아침에 일찍 일어서 ‘헤트루’를 보기 위해 다시 네델란드로 갔다. 헤트루는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정원이다. 그래서인지 입장료도 조금 비쌌지만 완벽한 관리와 내가 보기엔 베르사유와 비슷한 정도의 화려한 무늬와 멋진 조각과 꽃과 분수와 시원한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내가 아버지가 준 책 중에서 처음으로 번역한 정원이라 특히나 뜻 깊은 곳인데, 멋있어서 왠지 나도 기뻤다.

다음에는 독일로 다시 돌아와서 하노버(Hannover)의 \'헤렌하우젠(Herrenhausen)\'으로 갔다. 이곳은 영국식(자연식)정원과 프랑스식(인공적인)정원이 있었는데 분수도 안틀고 전정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별로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녁에는 하노버근처의 시골마을 ‘지에르쉐(Siersse)\'의 아담한 곳에 숙소로 잡았다. 마침 이곳에서 이 마을사람의 생일잔치가 있었는데 이 생일잔치에 마을사람 모두가 참석해서 축하해 주는게 상당히 감동적이어서, 생일축하 노래도 한곡 불러주면서 재밌게 밤을 보냈다.

ㆍ8월 15일(금)

아버지께서 아침에 독일의 북쪽으로 온 김에 발트해에 가서 발이라도 한번 담그고 가자고 제안을 하셔서, 우리는 독일북부 항구도시 ‘트라베뮌데(Travemünde)\'까지 차를 타고 올라 갔다. 이곳은 뻬깡과 달리 너른 모래사장인데다가 수온도 낮고, 엄청난 해파리떼가 있어서 수영은 못하고 말 그대로 발만 담그고 해안가에서 맛있는 해물요리로 점심을 먹고는 베를린 쪽으로 내려왔다.

베를린의 남쪽 도시 포츠담에는 ‘상수시(Sanssouci) 공원’을 보러 갔다. 상수시궁을 동독시절에 공원으로 바꾼 이곳은 계단식으로 꾸며진 독특한 정원이 있다. 피곤하긴 했지만 가길 잘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지금까지 보아온 정원과는 사뭇 다른 멋진 정원을 볼 수 있었다.

상수시공원을 나와서 이모집이 있는, 우리의 베이스캠프인 코트부스(Cottbus)로 갔다. 가는 길에 6대의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봤다. 나는 차의 가장 위에 앉아서 그 사람들이랑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순식간에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모든 장비를 다 갖추고 오토바이를 타니까 멋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저녁은 이곳에서 이모부가 해주신 소시지와 빈의 악몽을 떠올리게 해서 조금 씁쓸한 육개장을 먹고, 잠이 바로 오지 않아 밖에 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이모집으로 돌아와서 잤다.

ㆍ8월 16일(토)

아침밥을 먹고 남자들만 사우나에 가게 되었다. 예전에 갔던 곳은 이 동네의 자그마한 사우나였지만, 오늘은 규모가 큰, 수영장도 있는 사우나에 갔다. 아침 일찍 가서 아무도 없어서 정말 편하고, 상쾌하게 긴 여행의 여독을 풀고 있을 때 독일인 부부 2쌍이 들어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물론 다 벗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상상만 했던 일이지만 막상 보게 되니 매우 자연스럽고 편해서 한국도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코트부스의 자랑거리라는 ‘브라니츠(Branitz)\'공원엘 갔다. 만약 내가 처음 유럽에 도착해 있었을 때 봤다면 작은 감동이라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것들만 보고 와서 그런지 영 시시하게 느껴져서 재미가 없었다.

브라니츠공원을 나와 폴란드로 갔다. 이모부는 독일과 폴란드는 마치 한국과 북한이랑 비슷하다고 하셨다. 폴란드와 독일은 다리 하나 사이로 갈라져 있는데 그 다리 하나 사이가 그렇게 클 수가 없다. 독일 쪽은 번듯하고 깨끗한 건물에 깨끗한 도로였는데, 다리 하나를 넘어서자 빈민촌 같은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조잡한 물건을 파는 행상이 늘어서 있는 폴란드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여기서 폴란드관광의 의욕을 잃고(사실 시간도 없었지만)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처음에 폴란드를 넘어갈 때는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30분 가까이나 여권검사를 하던 독일-폴란드 국경수비대 사람들이 독일로 다시 넘어갈 때는 인사 한마디로 간단히 검사가 끝났다.

저녁은 이모부가 회사의 V.I.P가 왔을 때만 모신다는 한 음식점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 곳에서는 ‘핫세(Hasse)\'라고 하는 우리나라 족발과 비슷한 음식을 파는데, 우리의 입맛에 잘 맞았다. 핫세 요리를 먹고 다시 코트부스에 와서 이모랑 나의 어릴 적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ㆍ8월 17일(일)

아쉽고도 긴 1만3천여리의 유럽 대장정(아버지께선 우리가 렌트카를 빌려 타고 다시 반납하기까지 정확히 5,367.1km를 달렸다고 하셨다)을 마치고 유럽을 떠나는 날이다. 어제 모두 챙겨 놓은 짐을 싣고, 베를린 공항으로 떠나는 아우토반에서 이번에는 이모부차도 같이 갔는데 속도무제한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달고 있는 이 고속도로에서 위험하지 않은 속도경쟁을 펼쳤다. 9인승 승합차가 시속 200km로 달리는 폭스바겐을 보면서, 그 뒤에 벤츠가 비키라고 빵빵거리고, 비켜주니까 부우웅 하면서 날아 가버리는 것을 보면서 유명 브렌드의 힘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생활 내내 우리와 함께 생활한 폭스바겐 승합차를 반납하고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있는 게이트에 와서 이모와 이모부와 작별인사를 한 후에 출국수속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취리히에서 입ㆍ출국할 때나 베를린에서 입국할 때 뽀뽀하는 연인들이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취리히로 출발했다.

낯익은 취리히공항의 면세점에서 지난번 홍콩에서 취리히에 올 때 만난 홍콩친구를 다시 만나서 너무너무 기뻤다. 그 친구는 스위스 관광을 하고 이제 홍콩으로 돌아간다는데 우리는 이번에 홍콩으로 가지 않고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 가기 때문에 같이 못가게 됐다고 하니, 서로 너무 아쉬워서 가지고 있던 과자를 나누어 먹었다. 이 친구는 나랑 동갑인 여자아인데 상당히 미인이지만, 남자친구도 엄청난 미남이라고 하니 조금 아쉽기도 했다.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도쿄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이번 비행은 저번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13시간 비행의 고통을 맛보게 되었다. 솔직히 조금 졸리기는 했는데 뒤에 앉은 엄청난 덩치의 두 러시아 사람 둘이서 13시간 내내 중후한 음성으로 대화를 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도덕 방학숙제를 하다가 의자가 불편해서 승무원들이 있는 곳 앞에 가서 창으로 하늘을 보고 있다가, 심심해서 승무원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일본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는 아시아나 비행기 속에서 참 화가 나는게 2시간동안 비행을 하는데 승무원들의 한국말을 딱 3번 들었다는 것이다. 취리히에서 일본에 올 때는 그렇다고 해도, 한국으로 오는 길에 더군다나 우리나라 항공기 안에서 일본말로 서빙을 받고 있다는게 영 거슬렸지만 국력차이가 그런지라 뭐라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여하튼 15일 만에 인천공항에 오니 감회가 색다르다, 가장 먼저 이곳저곳 다니면서 맡은 이질적인 냄새가 없었고, 내가 아는 언어가 여기저기서 나온다는 것이 기뻤다.

*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소득은 역시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온 것이다. 넓은 세상이 던져져서 최악의 상황에서 잠도 자보고 택시기사한테 사기도 당해보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서, 다시 먹으라면 절대 못 먹을 음식을 먹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배부른 소리만을 하고 다녔는지 알게 되니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독일을 다니면서 감동받은 것이 2개가 있다. 일단 하나는 거리에 장애우가 많다는 것, 우리나라에는 장애우가 없어서 흔히 볼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장애우들도 많이 있지만 그들이 마음 놓고 세상에 나올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독일의 장애우들은 자기가 장애가 있다는 것에 조금의 부끄러움이 없다. 오히려 정상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어쩌면 뻔뻔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리를 활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단한 준법정신이다, 독일의 도로의 표지판은 별게 없다. 주차금지, 주정차 금지, 모든 교차로에 있는 우선차도표시와 속도제한과 추월금지표시가 전부이다. 특히나 우선차도는 그 표지판이 있는 차도가 무조건 우선이라서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그 차는 우선차도에서 오는 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못하는 제도인데, 이 표지판 덕분에 접촉사고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한국인 성격에는 절대 못하는 이런 제도가 있고, ‘한번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잘 하자’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있는 독일이 부럽다. 어서 빨리 우리나라도 이런 문화가 정착되어 선진국의 대열에 끼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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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학교제출용이어서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파일용량이 커서 사진은 빼고 본문만 실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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