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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5 조선의 최후

구태익 | 2006.02.18 01:01 | 조회 2361
김윤희ㆍ이욱ㆍ홍준화 [조선의 최후]. 다른세상. 2004


요즘 MBC-TV에서 [궁]이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대체로 젊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는 멜러 드라마들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만약에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이라면...’으로 시작하는 역사에서의 ‘if-가정법’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꼭 4년 전 대학후배 한 사람이 어떤 클럽 게시판에 ‘만약에...’라고 역사의 가정법을 동원하여 현실을 푸념하는 것에 격분(?)하여 한바탕의 논쟁을 벌여 그녀로부터 완전항복을 받아낸 일이 있고, http://tygu.yonam.ac.kr/board/board_read.php?seqid=622&cur_page=1&s=최향미&t=0&b_id=50>(그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여기를 클릭하기 바람) 장동건이 출연했던 ‘2009 로스트 메모리’라는 영화를 보고 엄청 실망하여 분개하기도 하였다.

내가 이처럼 역사에서의 가정법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래봐야 현상이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만약 이랬으면 지금 우리는 이랬을 것이다\"라는 논지를 거꾸로 말하면 \"그 때 이렇게 하지 못했으므로 우리는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열등의식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한때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존경받는 왕실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몇 해 전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이 방한했을 때이다. 영국보다 훨씬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가 왜 온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근엄한 왕실 하나 없어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들처럼 영국여왕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렵 인기를 모았던 KBS-TV 드라마 [명성황후]를 보면서 흥선대원군의 나라사랑과 명성황후의 나라사랑은 방법만 달랐지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데에 뜻을 같이 하였을 것이라 믿었고, 고종과 순종은 스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 마지막까지 발버둥친 비운의 희생양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흥선대원군도 명성황후도, 고종도 백성이나 나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전제군주였을 뿐이다. 대원군이 안동김씨 일족의 세도정치를 혁파하고 서원을 철폐하는 등 개혁정책을 수행한 것도, 경복궁을 대대적으로 중건한 것도 백성의 행복과는 별무관한 다만 왕실의 안녕과 존엄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요, 명성황후와 고종이 대원군을 밀어낸 것도 개혁노선의 대립이기 보다는 권력투쟁의 결과였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1905년 11월15일 오후, 이토가 고종에게 을사조약을 인준하라 압박하는 자리에서 고종이 ‘개국 이래 국가의 중대사는 정부관리와 대신들 그리고 재야의 유림과 인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결정하였으므로, 이토록 중요한 문제를 짐이 혼자 결정할 수 없다’고 버티자, 이토는 ‘언제부터 한국이 인민의 의향을 물었단 말입니까? 한국은 입헌국가가 아니라 전제군주국가입니다’라는 말로 묵살하였다고 증언한다.

이는 고종에게 들이댄 이토의 정말 뼈아픈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이토는 ‘언제 당신이 백성의 뜻을 물었던 적이 있느냐? 김옥균이 개혁을 부르짖을 때 또 갑오년 농민군이 목숨을 걸고 반외세와 반봉건을 외칠 때, 당신은 그 인민을 진압하기 위해 우리 일본과 청나라를 불러들여 제 백성들을 死地로 몰아넣지 않았느냐?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황제의 권한을 제한하려 하자 보부상을 동원하여 짓밟은 것이 누군데 이제 와서 인민의 뜻을 묻겠다는 것인가?’하고 반문하면서 고종의 말문을 막았던 것이다.

끝내 고종이 정부대신과 협의해야 한다며 인준을 거부하고 망국의 책임을 대신들에게 떠넘기자 이토는 이틀 후 무장한 일본군들이 경복궁을 포위한 상태에서 내각회의를 열어, 총리대신 한규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완용 등 을사오적들의 동의로 조약을 체결해버린다. 다만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은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다는 일왕의 친서로 이들을 안심시킨 채...

전제군주시절에는 ‘왕=국가’이어서, 왕과 왕실의 안위는 국가의 존망과 함께 하는 중대사이므로 오늘날의 시각으로 이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태평성세일 때의 이야기일 뿐, 국가의 존망이 걸린 격동기에 백성과 합심하여 나라를 지켜야 할 군주가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백성을 내팽겨지는 일은 동정의 가치가 없다.

하긴 임진왜란이 벌어졌을 때도 그랬다. 무능한데다 비겁하기까지 했던 임금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도성을 버리고, 종묘사직도 내팽겨친 채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주를 거듭하였으며, 나중에 조선백성과 의병 그리고 이순신장군과 수군의 혁혁한 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전란의 책임을 면하고자 전쟁영웅 이순신장군과 의병장들에게 오히려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백성과 등을 돌린 채 제 욕심만 채우려 하는 왕실이 어떻게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그러므로 드라마 [궁]에서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왕실의 모습은 우리에겐 꿈일 뿐이다)

게다가 고종은 제 나라 백성은 부정부패한 관료의 수탈과 외국자본의 침투로 도탄에 빠져 피눈물을 흘리며 허덕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외국자본에 철도와 광산 등 온갖 독점권을 넘긴 대가로 받은 리베이트자금과 뇌물, 백동화를 마구 찍어 인플레를 유발한 대가로 거머쥔 막대한 자금으로 황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허망한 일들(능을 개수하거나 전각을 개축하고, 서양물품을 사들이거나 화려한 연회를 베푸는 등)에 탕진하였다.

실례로 당시 대한제국의 정부 1년 예산이 1897년에 5백만여원, 1907년에 2천만여원이었다고 하는데, 1897년부터 1907년까지 10년간 황실이 끌어모은 자금은 총 4,35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이 돈은 1907년 당시 2천만 동포가 1원씩 모아 나라 빚 1,300만원을 갚자고 벌였던 ‘국채보상운동’을 세 번이나 충족시키고 남을 금액이었다니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망해가는 왕조의 왕실이 이 모양이었으니, 그 아래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오죽하였으랴! 중앙관료들은 매관매직으로 자신의 배를 채웠고, 지방 관료들은 세금을 걷어 자신의 배를 채웠다. 그 가운데에서도 나를 정말 놀라게 한 사실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울분을 토하며 자결하였던 우국지사 충정공 민영환(명성황후의 조카)이, 갑오농민전쟁을 주도했던 전봉준이 지목했던 매관매직의 정점에 서 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당시의 개화파들과 독립투사들이 가진 세계관과 역사관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일본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아 일본의 도움으로 조선을 개회시키려고 했던 개화파들의 순진했던 세계관은 물론이요, 우리에게 영원한 애국지사로 기억되고 있는 안중근의사조차 일본이 내세운 ‘동양평화론’에 입각한 평화주의자였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즉 안중근의사는 침략의 괴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지만 그의 조국 일본을 증오하지 않았으며, 제국주의로 치달은 일본의 폭력성과 침략성에 맞서기 보다는 한중일 세 나라가 화평하게 살기를 바랬던 이상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500년을 이어온 조선왕조가 내부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교적 세계관에 안주하였다가 내우외환을 견디지 못한 채 그 수명을 다하고만 비참한 말로는 다시 읽어보아도 속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저자들은 묻는다. 조선왕조 몰락의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하는가?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합방의 최종결정권자는 결국 왕조체제 아래에서는 군주 즉 임금일 수밖에 없다. 권력구조가 한 사람에게 귀속되어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식민지가 되어버린 책임은 당연히 왕이 져야 한다. 만약 그가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협박을 받았다면 차라리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며 눈물을 삼키는 것보다 백배 더 위대한 모습이다.

그러나 비겁한 조선의 왕은 그러지 않았다.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모멸을 참아냈다고 안쓰러워 할 필요도 없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과 박영효는 군주를 배신하였다 하여 죽이라고 자객을 보냈던 고종이지만 나라를 통째로 팔아넘긴 이완용과 같은 을사오적을 죽이라고 자객을 보낸 일은 없다. 을사조약과 합방으로 나라를 넘긴 댓가로 황실은 을사오적보다도 더 화려하고 편안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만의 책임이라 볼 수 있을까?.

다시 저자들은 묻는다. “조선왕조의 백성들은 왜 무능하고 부패한 왕조를 바꾸지 못했는가?” 하고..

왜 갑오농민전쟁과 갑신정변, 갑오개혁은 성공하지 못하였는가? 결국 그것은 조선에 살았던 당시 대다수 백성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끝으로 말한다. “이런 일이 어디 100년전의 역사일 뿐인가?”하고... 오랜 옛날부터 역사를 만들어왔던 것은 권력 없는 조상들이었다는 사실, 그들의 선택이 우리 운명의 최종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주 청주농고 졸업식에 참석하여 애국가를 부르다가, 애국가 1절 가사의 한 소절 한 소절에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을 읽다가 느꼈던 당시 민중들의 처참한 삶이 애국가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에 투영되어 절절한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망해버린 조선왕조... 그 가련한 추억은 오늘날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고 만화적인 캐릭터로 포장되어 멜러물로 다시 살아나 인기를 끌고 있지만, 드라마 [궁]에 대한 나의 소회는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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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동문수학한 세 사람의 젊은 학자들로서, 개항기 조선사회의 경제사를 연구하였거나 대외관계사를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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