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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련과 박태환, 차범근과 박지성..

구태익 | 2008.09.03 01:01 | 조회 877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놀라운 성적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30여 년전 \'아시아의 물개\'라 불리던 조오련선수와 오늘의 박태환, 20여 년전 독일분데스리가의 차범근선수와 활약과 오늘날 박지성.. 누가 더 훌륭한 기량의 선수일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

요즘 학생들은 차범근하면 수원삼성감독에다 옛날에 공 좀 차던 유명한 선수 정도로 알겠지만, 차범근은 서독 분데스리가에서 308경기출전 98골을 기록한 유명한 스트라이커에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단 한번도 PK를 찬 적이 없고 키커로 나선 적도 없어 순수 필드골만으로 98골을 기록한 유일한(독일출신이 아닌) 외국선수라는 기록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축구 사상 가장 기적적인 순간으로 꼽히는 \'7분간의 해트트릭\' 신화를 만들어낸 이도 차범근이었다. 대한축구협회가 발간한 \'한국축구 100년사\'는 당시 상황을 \'스타 차범근 탄생\'이라는 별도의 항으로 다루고 있다.

1971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박스컵\'이라 불리는 국제축구대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시아국가들만 참가했지만 6회 대회인 1976년부터는 유럽, 남미, 아프리카권의 팀들도 출전하는 진정한 국제대회로 탈바꿈했다. 개최국인 한국은 대표팀 1진과 2진인 화랑과 충무를 대회에 출전시켰다. 9월 11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졌던 개막전은 화랑과 말레이시아의 대결이었다. 이 경기에서 화랑은 종료 7분을 남겨놓고 말레이시아(당시 아시아축구는 한국, 태국, 버마가 강했다 - 하지만 이들이 오늘날 맥을 못추는 것을 보면 스포츠는 역시 국력에 좌우된다 하지 않을 수 없다)에게 1-4로 몰려 있었다. 차범근은 이 경기에서 남은 7분 동안 혼자 3골을 몰아넣는 기적을 연출하며 4-4를 만들었다.

... 전광판은 남은 시간이 7분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때 말레이시아 골문 앞에 밀어닥친 한국 공격진.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차범근은 넘어지면서 왼발로 슛을 쏘아댔다. \'와아!\' 지금껏 야유를 퍼붓던 관중들이 엉덩이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튕겨 올라갔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화랑이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중략)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말레이시아 문전에서 혼전 중 차범근은 또다시 슛을 성공시켰다. 4-3으로 골 차는 1골로 줄어들었다. 관중들은 모두 맨정신이 아니었다. 노도와 같은 함성을 타고 한국 선수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김진국이 말레이시아 골 정면으로 보낸 볼을 차범근이 주저앉으며 오른발을 내밀어 골을 넣어 버렸다. 차라리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의 함성이 서울운동장 하늘에 폭발했다...

... 전반전에서 수비진의 실수로 계속해서 3골을 허용할 때도 차범근은 고군분투했다. 바른쪽 날개를 쉴 새 없이 번쩍이며 적의 문전에 결정타를 때려 넣을 기회를 세번씩이나 만들었다. 후반 24분 박상인의 득점도 차범근의 슛이 말레이시아 골 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오는 것을 차 넣은 것이다. (중략) 차범근은 이날 경기를 마치고 숙소인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전화로 \"나도 모르겠어요. 전반에 어떻게 3골을 먹고 나니까 후반에 화가 나데요. 그래서 그냥 정신 없이 뛰어 다닌 것 뿐이에요\"라고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그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흑백T.V를 통해 그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기적에 얼마나 환호하며 흥분했던지,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첫 경기에서 차범근의 활약으로 간신히 패배에서 벗어난 국가대표 화랑팀은 조별리그를 2승2무로 마치고 4강에 진출했다. 뉴질랜드를 2-0으로 꺾고 브라질의 상파울로선발팀과 결승에서 맞붙은 화랑은 연장까지 가는 120분의 혈전을 0-0으로 마치고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축구 100년사\'는 \'제6회 박대통령컵 국제축구대회는 차범근이라는 한 사람의 축구영웅을 탄생시켜준 대회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밖에 그의 화려한 기록과 찬사를 보자..

http://file.sports.media.daum.net/pcp_download.php?fhandle=MXYzYjlAZmlsZS5zcG9ydHMubWVkaWEuZGF1bS5uZ...>

http://file.sports.media.daum.net/pcp_download.php?fhandle=MXYzYjlAZmlsZS5zcG9ydHMubWVkaWEuZGF1bS5uZ...>

1.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외국인 선수 다득점 1위)
2. 그 당시 세계최고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 6년간 2자리수 골 기록
3. 프랑스 풋볼 잡지 세계 축구 4대인물로 선정(펠레, 마라도나, 바켄바워, 차붐)
4. 독일잡지 KIKER 80년대 가장 위대한 선수 선정
5.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
6. 스페인 풋볼잡지에서 21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5인 선정
7. 독일에서 연봉을 세번째 많이 받은 선수(지금으로 따지자면 잉글랜드 프리미엄 리그에서 연봉을 세번째로 많이 받는다고 보면 됨)
8. 80년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
9. 86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 선정
10. 월드사커지 잊을수 없는 100대스타 선정
11.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 선정
12. 월드사커지 20세기 축구에 영향을 미친 100인에 선정

등등..

그러니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축구해설을 위해 다시 독일을 찾은 차범근을, 독일국민들이 진정한 영웅 대접을 하며 열렬히 환영한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만약 차범근이 오늘날 활약하였더라면 매일매일 위성중계로 그의 한 동작 한 동작, 그의 한 골 한 골에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가 환호하고 난리가 났을게다.

ㆍ조오련

1. 1970년에 제6회 아시안 게임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 금메달
2. 1974년 제7회 아시안 게임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 금메달
3. 1978년 수영부문 한국신기록 50회 수립
4. 1980년 대한해협 횡단
5. 1982년 영국 도버해협 횡단
6. 2002년 대한해협 횡단
7. 2003년 한강 700리 종주
8. 2005년 독도 횡단
9. 2008년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를 성공.. 그의 도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47041469>[조오련선수 미니홈피] 방문은 여기를 클릭...^^

하지만 그는 1970년과 1974년 아시안게임 2회 연속 2관왕에 올라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얻었지만(당시만 하여도 아시아 수영은 일본의 독무대이었다), 1972년 뮌헨올림픽 자유형 400m와 1500m에 도전하였으나 모두 예선 탈락하며 세계의 벽은 아득하고 멀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헌데.. 그 당시 우리나라 형편을 한번 생각해보자. 1970년대에는 우리 국민소득이 겨우 1,000달러가 될까 말까 하던 시절이니 버젓한 실내수영장이 있었겠나, 훌륭한 지도자와 장비가 있었겠나.. 세계최고선수들에 대한 정보나 영법에 대한 분석자료가 있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스케듈이 있었겠나 말이다(당시 일본은 소득이 1만불 정도 되었으니 그것이 가능했지). 수영장은 커녕 한강물이나 바다수영으로 연습했을 그 당시에 오로지 맨 몸 하나로 일궈낸 성적이니 어찌 값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얘기하고 싶은 요지는, 박태환이나 박지성이 별거 아니라는 게 아니고..
\"결국, 스포츠는 국력이다\"라는 것, 그리고 온국민의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여름소년 박태환과 겨울소녀 김연아..

30년 전인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선수가 최초로 금메달을 따기까지 우리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그림의 떡\'이었다. 20~30년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한국선수가 수영과 피겨스케이팅, 또 혹은 골프같은 귀족 스포츠에서 세계를 제패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꿈일 뿐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 변변한 실내수영장이 몇 개나 있었으며 실내 빙상장과 골프연습장이 몇 개나 있었나? 인프라가 따르지 못하니 이런 종목들은 당연히 선진국사람들의 전유물일 뿐 우리가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은 가난한 자들의 hungry sports인 권투나 레슬링 같은 치고박고 싸우는 격투기(오로지 몸으로 때우는) 혹은 구기종목으로는 밥상만한 테이블 하나만 있으면 되는 탁구같은 종목이 전부이었지.

나는 그런 점이 또한 자랑스럽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하나를 따는데 건국후 30년이나 걸렸던 이 나라가 이제 금메달 13개에 세계 7위의 스포츠강국으로 우뚝 선 것. 그리고 우리도 이제 남부럽지 않게 선진국형 스포츠종목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대한민국 국민을 대충 5천만명이라 잡고, 금메달 13개를 획득한다면 385만명당 금메달 1개인 셈이 되는데... 그렇다면 인구1억 3천만명인 일본은 34개를 따야 하고, 13억 인구의 중국은 340개를 따야 한다. 올림픽 금메달이 모두 몇 개더라?? 올림픽이 끝나고 각국의 금메달 획득수를 인구수로 한번 나눠보자.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강단이 있는, 작지만 강인한 민족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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