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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강추!!!

구태익 | 2002.08.06 01:01 | 조회 1217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http://www.pops2u.co.kr/music/eurolatin/f00255.asx\" hidden=\"true\" loop=\"10\" >

음악 : Luna Liena / Los Tres Diamantes


나의 대학시절, 대학 신입생으로 발을 들여놓은 캠퍼스에는 매일 같이 관악경찰서에서 전경들을 가득 실은 닭장차들이 학생 등교와 함께 같이 출근하였고,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 사이사이에는 사복경찰이 두리번거리며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개학을 하고 한 2주쯤 지났을까? 도서관앞을 지나고 있는데, 도서관 3층 로비에서 한 사나이가 유인물을 뿌리며 외마디 비명처럼 \"여러분 모입시다\"라고 외치는 순간, 어디선가 건장한 사복들이 달려들어 그를 덮쳐 개패듯이 패고는 검은 지프차에 구겨넣었고 유인물을 집어들던 학생들을 향하여 마구 최루탄을 쏟아대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 목격한 대학내 시위 광경이었다. 아니 어찌보면 시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유인물을 뿌리고 한마디 내뱉는 순간 완전 진압되고 말았으니까..

그날 밤 기숙사에서 이제 겨우 서로의 얼굴이나 익히던 몇몇 신입생들끼리 모여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더러는 겁을 먹고(나도 여기에 포함) 더러는 선배들에게 들은 얘기들을 옮기며 유신독재의 악랄함과 박정희의 실체에 관한 얘기들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3월말쯤에는 꽤 큰 시위가 있었고, 그날 밤 나와 같은 방을 쓰던 치의예과 1학년(청주고 출신) 김모군이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날 청주고 동기들은 그가 관악경찰서에 끌려갔다는 얘기를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김모군의 어머님이 기숙사에 찾아 오셔서 그 녀석의 짐과 책가지를 챙기시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시는 것을, 나는 정말 무기력하게 묵묵히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여 뛸듯이 기뻐하셨을 어머님의 감격도 잠시, 1달만에 시국사태로 대학에서 제적되고 구속까지 되어버린 아들의 유품을 챙기시는 어머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녀셕이 너무도 우직했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한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는 신입생이 알면 얼마나 알 것인가? 경찰의 심문에 고분고분 응하기만 하였어도 \'훈방\'정도로 나왔을텐데..

이런 시국사태는 3월 개학이후 4월, 5월에는 더욱 빈발하였고, 어느덧 우리에게 시위(이때까지만 해도 단순시위였지, 각목이나 화염병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와 최루탄과 강격진압은 일상이 되면서 우리는 자연 이런 폭압적인 정권을 증오하게 되었고, 반정부적인 감정이 쌓여가면서 개발독재를 지향하던 당시의 한국사회가 안고있던 고질적인 모순과 병폐도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고 그 원인과 해결방안, 민주주의의 참뜻과 민족의 장래, 한반도 분단의 원인과 통일방안들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유신독재가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던 1979년은 대학 2학년이었다. 유신독재에 항거하던 민중의 힘은 \'YH여공들의 시위\'로부터 시작되어 야당총재의 \'국회위원직 제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고(이때 YS는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으로 기억된다), 급기야 부산ㆍ마산시민들의 항거에 의해 \"부ㆍ마사태\"로 전개되었고 김재규의 \'10ㆍ26사건\'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렸으며 캠퍼스는 장갑차와 착검한 군인들에 의해 학생들의 등교가 통제되었다. 다시 개학을 하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그동안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부정권을 지키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었다. \'12ㆍ12쿠테타\'로 군부를 완전히 장악한 전두환일당은 이듬해 1980년 5월의 봄, 광주학살의 \'5ㆍ18사건\'을 저지르며 다시 대학에는 휴교령을 내렸고, 모든 사태가 그들이 바램대로 이루어지자 서로 훈장을 나눠 먹으며 정권찬탈을 자축하였다.

그 이후 정권찬탈의 친위대 \'국보위\'를 만들고 \'삼청교육대\'를 세워 정권에 반대하는 인물은 \'순화교육\'에 보내졌다. 거대한 폭력집단 앞에 저항할 능력도 의지로 없는 나 닮은 대부분의 학우들은 뭔가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응어리와 우울한 기분에 휩싸인 채 3학년을 간신히 마쳤고(휴교바람에 수업일수가 모자랐으므로), 4학년에 올라가서는 빼앗긴 꿈을 안은 채 취업이냐 군입대냐, 진학이냐와 같은 현실에 부닥쳐야 했다.

이때 우연히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책, 피터 빅셀의 산문집 『책상은 책상이다』(이 책은 우리 대학 도서관에도 있다. 내가 대학 2학년때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꼭 권하고 싶다)를 재미있게 읽은 뒤, 그 책을 번역한 시인 김광규의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이라는 책을 읽고 그 가운데 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한 편에 낯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이 시의 전반부는 전두환의 군사정권에 저항하지 못하는 당시 나처럼 평범한 대학졸업반들의 어두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이 시의 후반부는 이제 그렇게 고뇌하고 가슴 아파했던 기억조차 아스라해진 오늘날의 나의 모습을 그려놓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김광규시인의 4ㆍ19가 그랬고 그의 40대가 그랬듯이, 나의 10ㆍ26과 5ㆍ18이 그랬듯이 나 또한 40대중반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

옛날에 감명받았던 한 편의 시가 생각났고, 그 시를 다시 읽으며 나의 대학시절이 생각나 이렇게 주절주절 사설을 풀어보았노라. 공감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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