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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서리>를 알어?

구태익 | 2002.09.08 01:01 | 조회 1194

‘서리카페’의 물먹은 귀족 장-장 대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며 애환을 이야기하다

대한민국 서울의 모처.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로 늘어선 이곳에서 높다란 담장을 돌고 돌고 돌아오면 ‘서리’라고 적힌 자그마한 글자를 보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면 눈에도 뜨이지 않는 간판이지만, 실로 만만찮은 행색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멤버십 카페다.

내가 처음 ‘서리’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는 ‘서리맞아 얼어죽은 감나무’라도 있나 싶었지만, 삐까번쩍 ‘럭셔리’(luxury)한 사람들이 오고가는 걸로 보아 아마도 럭셔리에서 글자 하나가 떨어진 게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손님들의 얼굴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은 떨어진 글자가 행운을 뜻하는 럭(luck)이어서일까?

아무튼 나는 이곳에서 일한 지 1달도 안 된 견습사원이다. 그동안은 별로 손님도 없고 그나마 오늘내일 하시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의 말을 엿들어보니 오랜만에 젊고 신선한 회원들이 대거 들어왔고, 앞으로도 1달에 1명씩은 들어오게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신입회원들이 처음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예약자 명부에는 두분 다 ‘장’이라고 성만 적어놓았는데, 한분은 이곳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회원이 되신 분이고, 다른 분은 50대라는 파격적인 나이로 가입을 하게 되셨다고 한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랬나? 오늘 신입회원 환영회에 함께 하기로 했던 선배회원들이 갑자기 모 코미디언 장례식에 가게 되어서, 두 사람만이 한자리에 앉게 되었다. 편의상 50대 남자분을 아저씨 장이라 하고, 여자분을 아줌마 장이라고 표기하기로 한다.



아저씨 장 : 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아줌마 장 : 선배는 무슨? 어서 앉으세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아저씨 장 : 아닙니다. 서리도 서열이 있지. 먼저 앉으십시오. 군대에서도 제일 무서운 게 바로 한 기수 위 선배 아닙니까?

아줌마 장 : 어머 별소리를. 저는 국군통수권자가 되기엔 부적합한 사람이라 그런 건 잘 몰라요. 그리고 인수인계를 해준 것도 없고, 그냥 빈 방만 물려준 건데요.

아저씨 장 : 하하하 빈방이라는 게 참 무섭더군요. 나도 언제 또 방을 비워주고 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우리 함께 기록을 세웠죠?

http://img.hani.co.kr/section-kisa/2002/09/04/02101400012002090414-1.jpg\" align=\"left\" border=\"0\">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줌마 장 : 그래도 기록은 세우셨잖아요. 헌정 사상 세 번째, 2공화국 이래로 최단명이었다면서요.

아저씨 장 : 하하, 선배님 덕분이지요. 원래 경마나 사이클에서도 선두주자 뒤에서 바람을 피해 가면 기록이 훨씬 좋아지지 않습니까? 아마 제 다음에도 바로 기록이 깨질 겁니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 숫자와 기록에 관심이 많이 생기셨나 봅니다. 하긴 안 그럴 수 없겠죠. 기껏 십몇만원 하는 건강보험료로 타박을 받고, 임대소득 몇백만원 차이 나는 걸로 탈세니 어쩌니 하니 말이죠.

아줌마 장 : 그러게요. 후배님은 마음만 먹으면 200억 정도는 쉽게 빌려쓰는 분 아니에요.

아저씨 장 : 하하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학계에 오래 계셔서 경제계나 언론계에서는 뭐 도깨비 방망이처럼 돈을 펑펑 만들어낸다고 아시나 본데, 여기서도 나름대로 머리도 쓰고 고개도 굽실거리고 해야 합니다. 재테크 솜씨는 저보다도 선배님이 나아보이시던데요.

아줌마 장 : 무슨 소리를? 재산 관리는 전부 시어머니가 하셔서 저는 모르고 있었는걸요. 부동산도 저야 1, 2건이지만 후배님은 10건 정도가 입에 오르내리더군요. 하여튼 최고경영자(CEO) 서리님은 수준이 다르네요.

아저씨 장 : 저 역시 장모님이 관리하셔서 모르고 있던 게 대부분입니다.
아무튼 선배님이나 저나 집안의 안 어른들이 큰일을 하고 계셔서, 서리를 뗐으면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는 꽤 많은 일을 했을 텐데 말이죠.

아줌마 장 : 호호 그런가요? 후배님도 꽤나 여성인력 채용을 강조하시던데, 후배님 회사에 올해 신규직원 9명 전부가 남자더군요.

아저씨 장 : 어허 왜 이러십니까? 동병상련의 처지에 서로 위로하고 감싸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줌마 장 : 하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청문회 위원장님이 훌륭한 소신을 가진 분이라 꽤 믿고 있었죠. “이제 명문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 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대통령이 좋은 가문과 훌륭한 경력이 없으면 바로 밑의 사람이라도 받쳐줘야죠. 의원들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짜식들, 패밀리 정신도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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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저씨 장 : 아 예, 존경하는 의원… 이런 청문회 때 하던 버릇이 입에 붙어버렸네, 정정하겠습니다. 한때 잠깐 존경해버렸지만 지금은 조져버리고 싶은 의원 XX들 말이죠. 노블레세 정신이 부족해요. 노블레세라는 게 뭡니까? 자신의 부와 권력에 맞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려면 자신과 비슷한 돈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감싸며 과거의 잘잘못은 묻어두고 할 일을 하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돌대가리들. 뉴욕대 박사나 프린스턴대 박사가 몇 만 더 있었어도 우리 정치판도 달라질텐데 말이죠. 패밀리 정신이 부족해요. 패밀리. 안 그렇습니까, 선배님? 니 이제 누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가족 아닙니까?

아줌마 장 : 흠흠, 대학 이름에 너무 연연하는 것도 좋지는 않죠. 더 중요한 건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건 참 좋군요, 동생

아저씨 장 : 그럼요. 가족을 위해서라면 뭘 못 하겠습니까? 자식새끼들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려고 편법인 걸 알면서 위장 전입시킨 이유가 뭡니까? 맹모삼천지교라고 했거늘, 저는 솔직히 애들을 위해서라면 백번 천번도 이사시킬 생각입니다. 애들 마음 든든하라고 벌써 1억 가까이 통장도 만들어줬습니다. 그래야 자립심도 생기죠. 안 그렇습니까? 누님.

아줌마 장 : 저도 동생하고 같은 마음이에요. 저희 아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나라에서 살 기회를 주려고 미국 국적을 얻게 했어요. 그런데 또 다른 생각도 드는 것 있죠. 이 아이에게 대한민국을 잊지 말도록 해줘야겠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네 몸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지켜준다며 건강보험은 이쪽에서 누리도록 했어요. 더 큰 가족에 대한 마음, 그것이 애국심 아니겠어요? 이번엔 정말 대한민국의 국모가 되는 마음에서 친아들에게 미국 국적도 포기하라고 했는데….

아저씨 장 : 그러고 보면 말입니다. 이번에 의원들을 시켜 저희를 그렇게 괴롭혔던 ‘후보’ 카페의 그분도 말입니다. 겉으로는 어땠는지 몰라도 속으로는 저희랑 같은 생각이 아닐까요? 그분도 아들이 젊은 나이를 군대에서 썩힐까봐 나름의 배려를 해준 것 아닌가요? 당시로서는 제일 현명한 일이었을 겁니다.

아줌마 장 : 그래요. 며느리를 원정 출산 보낸 것도 똑같은 깊은 생각이 있어서였겠죠. 그건 저희들 패밀리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요.

이 아무개 후보에게 고함

아저씨 장 : 저는 이번에 서리직을 맡으면서 “북한에 대한 퍼주기식 지원은 곤란하다”며 저를 불러주신 윗분과는 좀 다른 생각을 피력했습니다. 오히려 그 후보분하고 비슷한 생각일 건데요.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귀중한 피를 이어받고 착실한 사교육으로 키워온 인재를 방치해둘 순 없죠. 군대에 보내는 것도 사실 어불성설이고, 가급적 외국 국적을 얻어 위기시에는 나라 바깥에서 큰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처럼 말이죠. 어쩌면 저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이래로 우리나라 귀족정치의 꿈은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 잠시 그 꿈을 되돌릴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아줌마 장 : 일리가 있네요. 제가 주변의 여러 쓴소리에도 불구하고 김활란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그분에 대한 추모의 일들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사회 지도층은 어느 시대에나 그 사회를 지도할 수 밖에 없어요. 그 시대가 일제시대였다고, 혹은 군사정권 아래였다고 그 사람을 탓할 수는 없죠. 오히려 똑똑하고 잘나서 그리고 여자라서 겪은 어려움이 더 많았을 겁니다. 후세에나마 그 아픔을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아저씨 장 : 그렇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아니 박사라고 하는 게 우리의 동질감을 더해주겠군요, 이승만 박사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하와이에서 말년을 얼마나 쓸쓸히 보내셨습니까? 저는 그분의 검약한 생활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부는 버려도 고결함은 버리지 않으셨죠. 제가 23억 대출에 1천원짜리 막도장을 썼다고 뭐라 그러는데, 회사를 위해 큰돈을 움직이지만 거기에 드는 푼돈은 아끼려는 제 마음을 왜 그렇게 모르는지.

아줌마 장 : 그런데 말이에요. 그 점은 동생이 좀 잘못한 것 같아요. 아무리 절약이 좋다지만, 우리들은 품위를 잃어서는 안 돼요. 그 ‘후보’ 카페의 그분도 어디 시장에 가서 괜히 흙 묻은 채소를 먹었다가 본전도 못 찾았잖아요. 귀족은 귀족다워야죠. 그래야 자리를 잃어도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아요. 그런데 요새 채소에도 흙이 묻어 있나요? 가정부가 시장 봐온 걸 보면, 전부 랩으로 싸여 있던데.

아저씨 장 : 아마 보좌관들이 흙 모양의 콩고물을 묻혀두었을 겁니다. 저희가 또 콩고물 먹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 않습니까?

아줌마 장 : 저는 우리 사회가 너무 냉소주의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물의 긍정적인 것은 보지 않고, 부정적인 것만 보려 하잖아요. 이 청문회라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이에요? 그렇게 꼬치꼬치 이상한 걸로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는 일은 대학생들 대자보에나 할 짓 아닌가요? 사실 조신해야 할 여대생들이 예쁜 글씨로 성폭행이니 비리니 타도니 하는 험악한 말을 쓰는 것도 큰 문제지만요.

‘칭찬 청문회’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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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저씨 장 : 역시 학계에 오래 몸담고 계신 누님이라 다르십니다. 이제 청문회 방식도 바꾸어서 ‘칭찬 청문회’로 하는 게 어떨까요? “서리님은 48평대 아파트 두채를 붙여써서 누진세를 피해갔지만, 대신 그 안에 넓은 서재와 쾌적한 학술공간을 만들어 많은 업적을 만들어냈으니 그 정도는 눈감아드려야죠” 이렇게요.

아줌마 장 : “서리님은 경제신문의 취지에 맞게 기자들을 영업 현장으로 보내 훌륭한 성과를 거두셨다면서요. 역시 경제 4강은 당신 같은 분에게 맡겨야겠습니다.” 음, 괜찮네요. 하지만 우리만 당하고 마는 것도 배가 아프지 않나요?

아저씨 장 : 하긴 그렇네요. 그 의원들도 지역구에서 얼마나 두드려맞으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거겠습니까? 나름대로 그런 때 스트레스 해소라도 해야겠지요. 맞아본 놈이 잘 때리고, 꿇리는 게 많은 놈들이 더 잘 씹는 법이죠.

아줌마 장 : 아참, 여기 중앙 홀에 대형 스크린 설치되어 있는 것 보셨나요?

아저씨 장 : 아 네, 봤습니다. 월드컵 때문 아닐까요?

아줌마 장 : 아니요. 총리 서리 청문회가 생중계되니까, 먼저 서리로 있다가 꼬리를 못 뗀 분들이 후배들 당하는 걸 보고 즐거워하신답니다.

아저씨 장 : 하하, 솔직히 재미있겠네요. 우리처럼 먼저 당하고 나서 쉬엄쉬엄 보는 것도. 저도 마음 편하게 가져야겠습니다. 어차피 총리라는 게 대통령제에서는 액세서리 아닙니까? 그래서 서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안 그렇습니까? 누님.

아줌마 장 : 그래요 동생. 어차피 6개월만 보내면 되겠죠. 그 사이에 서리 청문회도 두어번 더 있을지 모르고, 무엇보다 메인 이벤트로 벌어질 ‘후보’ 카페의 난장판이 얼마나 고소할까요?

이렇게 한여름 낮의 악몽에서 깨어나 서로를 위로하던 두 사람이 내가 그 카페에서 모신 마지막 손님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밤 카페의 관리 이사와 지배인이 나를 불러 청문회를 시작한 것이었다. 증인 선서를 하고 떳떳한 마음으로 청문회에 임했다. 갓 현역으로 군대를 제대했고, 외국 국적은 커녕 비행기도 못 타봤고, 식당 물건 하나 빼돌린 적이 없고, 통장 잔고는 군대 월급에서 남은 2002원. 그러나 내게 내려진 판결은 ‘부결’이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 카페가 그런 식으로 사원 견습생들을 부려먹는 건지, 아니면 손님들의 수많은 비리를 듣고 있는 자가 하나의 비리도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진짜 궁금한 게 있다. 그 서리들도 나처럼 월급 한푼 못 받고 쫓겨났는지, 아니면 그 자리를 놓지 않고 발버둥치는 그동안에도 우리의 세금을 쪽쪽 빨아갔는지.

이명석/ 사탕발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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