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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겨울풍경
글로 그리는 고향집 \'월동\' 풍경 [출처:http://www.ohmynews.com] 서리맞고 영하로 떨어진 쌀쌀한 날씨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는 서울, 부산, 광주에 사는 자식들에게 줄 배추를 바지게에 가득 지고 끙끙거리며 밭 두렁을 내려오고, 농부 할머니는 쌀포대에 담은 무 뿌리에 허리가 휘고 목이 끊어질 것 같다. <풍경2> 김장 채소를 부리고 물 한바가지 떠 마시고는 허리 펼 틈도 없이 서둘러 작대기를 \"탁! 탁! 터덕\" 두드려가며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흥얼거려 보지만 채소밭으로 가는 늙은 농부의 입에서는 단내가 풍기고, 자식들 헤진 옷 기워 입은 할멈 숨소리엔 한숨이 절로 난다. <풍경3> 해질무렵까지 오르락 내리락 몇 번이나 했을까? 노인네들은 한가하기만 한 시골 집 마룻바닥에 툭 걸치고 쌈지에서 담배를 한 대씩 꺼내 물고서는 먼 산을 보시는지 하늘을 쳐다보시는지 어딘가를 한 참 응시하다가 주름살 가득 팬 얼굴을 서로 쳐다본다. 쌀농사를 짓겠다고 가까운 논을 놔두고 저 먼 골짜기 밭에 채소를 심은 게 올 가을도 힘들게 보내는 까닭이다 할멈은 싸늘한 공기를 피해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앉히고, 할아범은 밭가에 메어 둔 흑염소를 거두러 가신다. 힘없어 죽겠는데 이 짐승은 하룻 내 풀을 뜯고도 집에 갈 줄 모른다. 염소가 끄는지 할아범이 끄는지 모르게 집에까지 간신히 한 몸이 되어 돌아왔다. 애들 오면 잡아주려고 키운 닭이 아직도 한가하기만 하다 할아버지가 가져온 김장거리를 툭툭 던져 개량 부엌간으로 던져 넣는 동안 \"영감, 무시 하나 줘요\"하니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무 하나를 꺼내 무청 달린 놈으로 건네 준다. 할머니는 무를 칼로 득득 긁어대더니 쑥딱쑥딱 채를 썰고 마늘을 짓찧어 젓갈 넣고 깨소금, 파, 고춧가루 넣어 향큼한 무생채를 만드셨다. 오래된 냄비에선 시레기국이 펄펄 끓고 있다. <풍경6> 두 분이서 앉아 먹는 밥은 예전처럼 끈기가 없고 자꾸 입안이 타들어가니 \"할멈 왜 이리 밥이 뻐셔?\"라며 한 번 투정을 하고는 반 그릇 못되게 남기고 국에 말아 드신다. 할머니는 양푼에 밥을 붇고는 참기름 한 방을 떨어뜨려 비벼 드시니 할머니 밥이 더 맛있어 보인다 \"에고고 허리야\"하며 숟갈을 상에 놓자마자 할아버지는 방바닥에 몸을 뉘셨다. \"영감, 오늘은 자면 안되지라\"하시니 금세 일어날 채비를 하시는 것 보니 예전의 호랑이 할아버지가 아니다. 바깥 일만 해주고 집에 와서는 벌렁 드러눕는 게 할아버지 방식에 맞지만 처지가 처지인지라 할멈 말을 들어야 한다. 침침한 방안에서 배추 속을 칼로 자르는 할머니, 큰 통에 물을 받고 소금 바가지를 가져다 풀고는 휘휘 젓고는 배추를 옮겨 담으시는 할아버지는 십수년 해오던 가락이 있어 손에 익어 보인다 할멈이 손이 느려지는 틈을 보아 담배 한 대를 얼른 입에 넣고 붙이시며 하는 말, \"이 일도 몇 년 못할까봬\", \"어디 아푸요?\", \"아니, 우리가 살믄 얼마나 더 산다고\", \"그래도 숨 붙어 있을 때까장은 해야지라우\", \"그건 그렇고 영식이 언제 온댜?\" \"낼 저녁에나 올랑가 모르것소\", \"먼데서 여기 오기도 솔찬히 힘들건디\", \"영감! 소금 좀 더 뿌릿쇼\", \"알았다마시 <풍경9> 해지고 여섯시부터 시작한 일이 오늘은 배추 절이는 걸로 끝일 것 같다. 밖에 나가 무를 얼지 않게 짚다발 서너개로 얼지 않게 뿌리만 대충 덮어두고서는 45년 동안 같이 살았던 인생 동무와 잠자리에 눕는다. 몸 씻을 겨를 없이 자리 깔자마자 숨소리 잠시 거칠더니 두 분 다 죽은 듯이 방안이 고요하다. 오늘 하루도 얼마나 고단하실까? 바깥 바람이 스산하게 불고 하늘이 맑은 걸 보니 아침에는 무서리가 내릴 모양이다. 열 아홉 집이 경로당처럼 노인들만 남아 지키고 있는 마을엔 가로등 마저 꺼져 있다. 철대문 삐거덕거리는 소리에 동네 개 짖는 소리로 야밤이 바쁘다. 멀리 백아산 능선이 희뿌연 연기에 싸여 흐릿하게 보일 뿐 적막 속 마을은 생기를 잃고 10년 이내에 언제라도 젊은이 두 명에게 온 땅을 내줘야 할 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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