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점심 때가 돌아와도 마누라는 오지 않았습니다. 일꾼들은 허기져서 일손을 놓고 주저앉아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나타난 아내를 보자 이첨지는 다짜고짜 야단부터 쳤습니다.
아내는 기진맥진해서 주저앉으며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밥을 하려 했으나 쌀이 떨어져 하는 수 없이 망종보리를 베어다가 까붐질해서 솥에 앉혀 밥을 지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만삭이었던 아내의 몸에서 아이가 나오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급히 방에 들어간 아내는 홀로 아이를 낳고 탯줄까지 끊어 아이를 광주리에 뉘어 놓고 난 후 보리밥을 이고 오리가 넘는 길을 걸어왔더랍니다.
그제서야 살펴보니 다 떨어진 짚신에 맨발이었던 아내의 발뒤꿈치와 지나온 발자국마다 피로 얼룩졌더랍니다. 이를 본 이첨지와 일꾼들은 밥 먹을 생각도 못하고 그만 한바탕 울었더랍니다.
<화가>
ㆍ중앙일보 2003년 5월24일(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