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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울림] 기쁘되 가련했던 내 청춘이 깃든 곳 : 귄기태

구태익 | 2007.09.13 01:01 | 조회 987
생각난다.

내가 서울대 기숙사 신관 사동 424호에 처음 짐을 풀었던 날이.
그날은 지금 내 나이의 꼭 절반인 스물한 살 되던 해의
2월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투명한 햇살은 창턱에 머물고 있고,
침대와 책상, 옷장이 두 개씩 있던 그 단출한 곳이
내가 난생처음 집을 떠나
낯선 룸메이트와 함께 한 해 동안 머물게 된 공간이었다.

창가의 구석에 놓인 책상이 내 것이 됐는데,
나는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구석이란 벽이면서 문이기도 한,
밀폐된 듯 숨통이 열려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닌가.

거기 앉으면 세상과 내가 일대일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평온함이 찾아와서 ‘데미안’이니 ‘금각사’, ‘젊은 날의 초상’,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같은 책 속의 풍경이 선연하게 지나가고,
두런두런 목소리들이 책갈피에서 들려나오는 것만 같았다.

나와 함께 그해 한 해 많은 고락을 나눴던 방이었다.
온몸에 묻은 최루탄 가스를 턴 곳이었고,
경찰의 수배를 받던 학생이 몰래 찾아와 묵었다.
봄비 오던 사월에는 밤늦게까지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지금은 원고를 잃어버린 소설들을 완성했다.
늦은 밤에는 옆 방 친구들이 찾아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플레이보이지에 나오는 누드 브로마이드들을 벽에 붙여 놓았는데,
기숙사 조교가 압수해갔다.
며칠 후에 반성문을 들고 찾아가 보니 조교 방에 걸어 놓고 있더라고
투덜대던 옆방 친구가 생각난다.
고교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슬픔과 기쁨과 좌절과 낙관이
그 방에 있던 무렵 내 곁을 지나갔다.

아침에, 강산에 가득 눈이 내려 기숙사 문을 열고 나가자
가슴이 쿵쿵거리던 12월의 중순,
나는 긴 입김을 내뿜으며,
기쁘되 가련했던 내 청춘의 순금 같은 부분이 다 지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언젠가 눈이 아주 많이 오는 날이 찾아오면
나는 그곳 가로등 아래로 찾아가 그 옛날의 내 방 창가를 조용히 올려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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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권기태] 최근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생존 기록을 담은 <일 분 후의 삶>을 펴낸 권기태님은 십수 년간 일간지 기자로 근무했고, 현재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단편 <입대>로 ‘대학문학상’ 수상, 첫 장편 <파라다이스 가든>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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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다. 29년전 관악사(서울대 기숙사) 다동 305호

호실장은 서양사학과 2학년 K모 선배이었고, 1학년은 나를 포함하여 3명(한 명은 청주고등학교를 나온 치의예과 J군, 다른 한 명은 공대를 다니다가 관두고 재수하여 사회계열로 입학한 부산중앙고 출신 K선배)...

입학을 하고 한 달 무렵 되었을 때, 교내에서 제법 큰 데모가 도서관 앞에서 있었다. 나는 미침 자연대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그 시위 현장과 맞닥뜨려, 난무하는 폭력과 최루탄을 피해 간신히 기숙사로 들어 왔다. 하지만 그날 밤, 같은 방 룸메이트이었던 치의예과 신입생 J모군은 외박을 하였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들어오지 않았다.

청주출신 친구들의 얘기는 큰 시위가 있던 그날 J군은 그 시위에 휩쓸려 닭장차에 실려 갔다고 했다. 1주일이 지나고 청주에서 올라오신 J군의 어머님은 우리 방에 남겨진 그의 옷가지와 책 꾸러미를 챙기시며, J군은 끝내 학교에서 제적되었다고 하시며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시는 것을 남은 우리는 묵묵히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평소 J군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뜻을 보였다면 ‘갈 길을 갔구나’ 하고 체념하겠지만, 전혀 사회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술 마시고 미팅 다니며 놀기 좋아하던 녀석이었는데.. 또 대학에 들어온지 한 달도 안되는 신입생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구속에 제적까지 되었나 하는 점이다. 아마도 ‘서울대생’이란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폭력경찰 앞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반항하였다가 괘씸죄로 더 큰 화를 자초한 게 아닐까 싶다.

그 때 한 방에서 동고동락하던 선배ㆍ동료들.. 뿐만 아니라 기숙사를 인연으로 알게 되었던 친구들.. 해양학과 이태신, 조선공학과 이성주 등등.. 이제 나이가 50이 되어가니 그 때 그 시절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아침울림]은 문화관광부가 제공하는,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정기메일 서비스입니다. 오늘은 권기태님의 [기쁘되 가련했던 내 청춘이 깃든 곳]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문득 나의 대학시절과 상남숙사에서 생활하는 우리 학생들이 생각나 여기에 옮겨 보았습니다. 상남숙사 사생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인연과 좋은 추억이 영원히 함께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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