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월드컵, 슬픈 월드컵 (펀글)

붉은 염라대왕님의 홈피에 월드컵에 관한 얘기뿐 입니다.
처음 의아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염라대왕님의 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까 해서 여
기 저기서 읽은 자료 중에 괜찮은거 골라 올려 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축구만 아니라 공으로 하는거 할줄 아는거 하나없고 별다른 흥미가 없기
도 하지만 월드컵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사전에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16강을 이야
기 할때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혹시나 하는 기대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컴에 장착된
TV 수신카드를 통해 보면서 많은 열정을 느꼈습니다.

외국생활을 하면서 컴이나 위성 TV를 통해 가끔식 고국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지금은 이곳 한국에 있지만 가끔식 이곳이 중남미의 오지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작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 선수들...

그리고 거리를 뒤덮은 붉은 물결...
우리 스스로의 열정과 환희와 즐거움이지만 전 세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한 월드컵이며 일본이 주최해서 한국에 한두 경기 나누어 줬고. 머리에 파마한 아
주머니가 몸빼 바지입고 메달린 개를 두들겨 패는 것으로 한국을 이야기하는 것을 바
라보다. 인천 국제공항이 개항하고, 한국의 경찰들이 홀리건 진압훈련 하는 것들이 한
참 외국 방송에 나올 때 한국에 돌아왔지만. 지금 그곳에 있었다면 농장의 원주민들
모아놓고 붉은 옷으로 갈아 입혀 이번 길거리 응원을 가르켜 주고 싶은 맘이 간절합
니다.

잠시 학업을 뒤로 미뤄 두고서 내일은 함 그네들의 붉은 무리속에 파묻혀 전세계에 알
려 주고자 합니다.

환희와 열정과 질서정연함, 비록 맛있는 단고기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오해
와 늘 데모만 하는 후진국 한국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다음 월드컵 그리고 몇년 후에도 \"대한민국\" 하면 붉은 응원이 외국인들의 가슴에 새
겨 줄수 있는 그런 멋진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본문]

기뻐서 눈물이 나왔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8강에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시청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열광하는 모습, 더구나 그 속에서 아저씨.
아줌마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언제 우리 국민이 이렇게 기뻐서 자발적으로 수십만, 수백만명이 모인 적이 있었던
가. 아마 57년전 광복 때 이후로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 축제 즐길 수 있는 자신감

우리에게 대규모 군중에 대한 기억은 불행하게도 \"유신철폐\"와 \"독재타도\"의 소리가
드높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장면과 겹친다. 아니면 여의도 광장에 동원되
어 \"때려잡자 공산당\"을 외치던 장면이거나.

참으로 우리 국민은 불행한 국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멍석만 깔아주면 이렇게 기뻐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데. 이 엄청난 에너지를 그동안 엉뚱한 데
낭비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아까운가.

이제는 우리도 진정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거리를 질주하고, 경적
을 울리고, 태극기로 치장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른\'들이 함께 박수치고 함성을
질러대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 우리도 이렇게 광분할 수 있구나\' 하는 귀
중한 경험은 이번 월드컵이 한국에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슬픈 일도 있다. 월드컵 때문에 \'풀뿌리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일부의 주장 때문이다.

지난 13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였던 이유가 국민이 월드컵에 너
무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든지, 언론이 월드컵에만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고 선거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은 매우 슬프게 한다.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 기간에 선거를 한다면 어느 나라에서든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
은 당연한 결과다. 왜 월드컵에 열광한 국민 때문에, 언론 때문에 민주주의가 죽었다
는 말이 나와야 하는가.

한국이 우승을 한다 해도 국가경제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정치 문제가 해결되는 것
도 아니라는 말은 맞다.

월드컵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산적한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탁하건데 이번 토요일(22일)에는 밖에 나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을 찾아가보라. 그 곳에서 함께 열기를 느껴보라.

히딩크 감독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냄비 근성\'을 지적하는 말도 나온다.
말이 나온 김에 \'냄비 근성\'을 한번 분석해보자. 잘 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욕하는
게 냄비의 본질인가. 그렇다면 당당하게 \'냄비\'임을 자처하겠다.

\'냄비 현상\'이 한국의 특산물인가. 아니다. 미국에도, 영국에도, 독일에도, 프랑스에
도 모두 있는 현상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자학(自虐)하지 말자는 말이다.

오히려 악성 냄비현상은 한번 찍히면 아무리 잘 해도 소용없고, 한번 \'내 사람\'이 되
면 아무리 못해도 봐주는 \'일편단심\'에 의해 형성된다.

*** \'냄비 근성\' 지적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예를 들어보자. 처음 부임할 때부터 \"이번에는 한번 기대해보자\"는 사
람들과 \"외국인 감독은 안된다\"고 소리높여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히딩크가 잘 할 때는 당연히 칭송의 소리가 높아진다.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숨죽이고 있다가 성적이 나쁘거나 조그만 잘못이 드러나면 \"그것봐라. 내가 뭐라고 했
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냄비언론? 이건 좀 문제가 있다. 냄비언론의 본질은 주변적인 문제를 본질적인 문제
로 호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단지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대변해주는 것이다.
여론은 \'다수의 목소리\'이지 \'큰 목소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