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130

2002년 12월22일(일) : \'와비(わび)의 정원\' 뒤쪽에서 \'기백암\'과 통하는 출입구

계춘원에 입장하면서 받은 팜플렛에는 바로 이곳이 사진에 나와 있었고, \'니지리구찌
(にじりぐち)\'라고 간단히 표시되어 있었다. 팜플렛을 들고 다니며 다른 장소는 모두
확인하였는데, 이곳만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입구쪽으로 다시 돌아가서 표받던 아가씨에게 물어봤다.
\"여기 사진에 나와있는 니지리구찌가 어디 있노?\" 뭐라고 뭐라고 대답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나는 한국사람이라 일본어가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고 했더니
\"예, 그렇습니까?\"하고는 빨딱 일어서서 따라오라고 한다. 따라 갔더니,
\'와비의 정원\'과 다실을 잇는 벽면을 가르키며 어쩌구저쩌구 설명을 한다.

하지만 설명을 들어봐야 니지리구찌(にじりぐち)가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젠장 한자로 써놓았으면 금방 뜻을 짐작할 수 있을낀데...

그래서 \"니지리구찌(にじりぐち)를 한자로 어찌 쓰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일본말이기 때문에 한자로 쓰기가 곤란하다\"고 한다. 그래도 재차 물었다.
\"그럼 그 뜻이 뭐냐?\" 그랬더니 \'데하이리구찌(ではいりぐち)\'의 준말이라 한다.

\"아, 알았다. \'데하이리(ではいり)\'라면 한자로 出入이라 쓰지?\"하면서, 수첩을 꺼내
어 出入이라 써보이니, \"예, 맞습니다\"하고 맞장구를 친다. 그러고 나서 뭐라고 뭐라
고 하는데, 뜻을 대충 간추려보니 이런 말이다.

\'出入り口(니지리구찌, にじりぐち)\'란 다정에서 자신의 몸을 낮추어 겸손함을 몸에
익히기 위해 보통사람들이 무릎걸음으로 드나들던 문이라는 말이다.

물론 지체 높은 귀한 손님은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오겠지만..

일본어의 특징 중 하나가 한자가 들어오기 전부터 쓰던 일본고유의 말이 있었는데, 한
자가 들어오자 그것에 한자말을 덮쒸어 일본말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예컨데 \'들
어오고 나간다\'는 말을 고유의 일본말로는 \'데하이리\' 또는 \'니지리\'라고 해왔는데,
한자가 들어오자 한자에서 같은 뜻인 \'出入\'이란 글자를 이 말을 표현하기 위해 쓰면
서, 읽기는 \'데하이리\' 또는 \'니지리\'라고 읽는 것이다.

이런 점이 우리 말과 전혀 다른 점이다.
우리는 한자의 뜻과 발음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어 \'出入\'이라 쓰면 \'출입\'이라 읽지
결코 \'들어오고 나간다\'라고 읽지는 않는다(뜻은 물론 그렇게 통하지만, 읽을 때는 결
코 그렇게 읽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出入\'이라 써놓고 읽기를 \'들어오고 나가
다\'라고 읽고 있으니, 외국인들로서는 일본한자 읽기가 가장 어렵다.
심지어 일본인들조차도 고유명사로 표현된 한자는 제대로 읽기가 어렵단다.

하여간 모르는 것은 주저하지 말고 물어봐야 하고,
이해가 안되면 재차 납득할 때까지 계속 물어봐야 내 것이 된다!

더구나 여기는 친절하기 그지없는 일본 아닌가? 어설픈 일본말에도 자세히 가르쳐주려
고 노력하니 고맙고, 한일간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더욱 보람
있었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할 때 모르면 한자가 서로 통하기 때문에 의사소통
이 된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

하긴 우리 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생판 낯선 외국인이 더듬더듬 어설픈
우리말로 뭔가를 알고 싶어 물어올 때, \"몰라요\"하며 냉정하게 돌아설 사람이 있겠는
가? 안쓰러워서도 직접 데리고 가서 이해할 때까지 가르쳐줄려 하지.. 다만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영어에 주눅이 든 사람들이어서 노랑머리 외국인이 영어로 물어오면 당황
되고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그래서 도망을 가는게 문제지..

(사진이 많이 흔들려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