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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169

구태익 | 2002.02.27 01:01 | 조회 667
아방궁 배치도 : 2002년 2월24일(일)

배치도를 보고 한 바퀴 둘러나오도록 이해가 되지 않아 혼났었다. 나중에 보니 우리
가 들어온 입구가 배치도의 윗쪽이었으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식으로 보면 도면
의 앞뒤가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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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궁은 산시성(陝西省) 西安 서쪽 아방촌(阿房村)이라는 한촌(寒村)에 있다. 시황제
는 함양궁(咸陽宮)을 비롯하여, 그의 손으로 멸망시킨 육국(六國)의 궁전을 본뜬 육국
궁(六國宮) 등 많은 궁전을 지어 미인과 더불어 즐겼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셴양(咸
陽)의 대안(對岸)에 더 큰 궁전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 전전(前殿)이 아방궁으로, 규
모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동서 약 700m, 남북 약 120m에 이르는 2층 건물
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방궁 건설에는 죄수 70만이 동원되었으나 시황제의 생전에는 완성되지 않아 2세 황
제에 의해 나머지 공사가 진행되었다. 셴양 부근에 세워진 수백에 달하는 궁전군(宮殿
群)은 2층으로 지은 복도와 담장 때문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로 종횡으로 이어져
아방궁에서 웨이수이(渭水)강을 건너 직접 셴양이나 난산(南山) 정상에도 갈 수 있도
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시황제는 그 사이를 오가며 자기의 소재를 비밀로 하였는데, 아방궁을 포함한 이 궁전
군은 BC 207년 항우(項羽)가 진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불에 타면서 불길이 3개월동안
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고 한다(이상 http://dpffldi2001.hihome.com/b27.htm에서 발
췌ㆍ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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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항우와 관련된 고사성어 하나 -
금의야행(錦衣夜行 : 자기가 아무리 잘 하여도 남이 알아주지 못한다는 뜻)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를 보면, 유방(劉邦)에 이어 진(秦)나라의 도읍 함
양(咸陽)에 입성한 항우(項羽)는 유방과는 대조적인 행동을 취했다고 한다. 우선 유방
이 살려 둔 3세 황제 자영(子영)을 죽여 버렸으며(B.C. 206), 또 아방궁(阿房宮)에 불
을 지르고 석 달 동안 불타는 그 불을 안주삼아 미녀들을 끼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
고 시황제(始皇帝)의 무덤도 파헤쳤다. 유방이 창고에 봉인해 놓은 엄청난 금은 보화
(金銀寶貨)도 몽땅 차지했다.

모처럼 제왕(帝王)의 길로 들어선 항우가 이렇듯 무모하게 스스로 그 발판을 무너뜨리
려 하자 모신(謀臣) 범증(范增)이 극구 간했다. 그러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누벼온 싸움터를 벗어나 많은 재보와 미녀를 거두어 고향인 강동(江東)
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자 한생(韓生)이라는 사람이 간했다.

\"관중(關中 : 함양을 중심으로 하는 분지)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요충지인데
다 땅도 비옥하옵니다. 하오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시고 천하를 호령하시오소서.\"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황량한 폐허일 뿐이었다. 그보다 하루바삐 고향으로
돌아가 성공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다. 항우는 동쪽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錦衣
夜行)\'과 같아 누가 알아줄 것인가…….\"

항우에게 함양에 정착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안 한생은 항우 앞을 물러나자 이렇게 말했
다. \"초(楚)나라 사람은 \'원숭이에게 옷을 입히고 갓을 씌워 놓은 것(沐후而冠)처럼
지혜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 말 그대로군.\"

이 말을 전해 들은 항우는 크게 노하여 당장 한생을 삶아 죽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의수야행(衣繡夜行)이라고 쓰여 있고 《한서(漢書)》에는 \'의금야행(衣錦夜
行)\'이라 쓰여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변하여 \'금의야행(錦衣夜行)\'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금의야행\'에서 \'금의주행(錦衣晝行 : 비단옷을 입고 낮길을 간다)\' \'금의환
향(錦衣還鄕 : 비단옷을 입고-입신 출세해서-고향으로 돌아간다)\'이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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