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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과 호남정자들[신경준 버젼]

구태익 | 2003.03.16 01:01 | 조회 3507
이 또한 장원조경 신경준사장의 기행문입니다. 회사직원과 관련된 부분도 있으나 수정없이 그대로 올리니, 여과해서 읽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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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8. 토요일 갬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8시 20분 배를 타기 위하여 우리는 서둘렀다. 거의 밤샘을 하다시피한 사람들은 잠에 겨워 휘청거렸지만 할 수 없는 일.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오는 중에 보는 바다는 갈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주위의 양식장들 사이로 배가 겨우 빠져나가는 것이 이제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주위의 크고 작은 섬들... 배에는 담요가 깔려 있었는데 그 추접한 담요 위에 누워서 잠을 자는 직원들. 어제 밤에 밤샘을 할 때 알아 봤다. 역시 여행의 경험이 없어서일 것이다.

시간이 배를 땅끝의 육지로 우리를 실어다 주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포구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산 초당으로 달렸다. 정말로 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봉우리마다 암벽이 돌출되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북한산의 암반이나 관악산의 암반에는 비할 수가 없지만...

다산 초당에 도착했다. 기념관의 앞에 주차를 하고 두충나무를 잔뜩 심어 놓은 밭두렁을 지나 산을 깎아 낸 소로길을 지나 언덕을 넘으니 기왓집 몇채가 보였다. 어디에나 있는 위락지- 천편일률적인 상업의 놀이수단, 기념품가게-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있는 등긁는 것. 염주. 바가지 기타 등등...

산을 올랐다. 조그마한 야산이었지만 아픈 무릎으로는 장난이 아니었다. 숨도 차고 올라가니 무수한 책에서 봤는 다산초당이 눈에 나타났다. 초라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는 건물 새채. 다산은 여기에서 그 역사에 남을 글들을 썼구나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西菴에는 제자들이 기거했다고 쓰여있었다. 이 좁은 방에서 여러 제자들이 기거를 했다니...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옛날의 우리네 방은 너무나 좁다. 지금의 우리가 너무 호의호식하는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정석(丁石)이라는 다산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로 갔다. 정석-정다산의 바위같이 굳은 마음이란 말인가. 유배에서 풀려날 때 쓴 글씨라고 해설되어 있었다. 자신의 바위와도 같은 마음- 그 당시 유교의 개념으로 볼 때 임금을 향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을까? 아니면 이 반골의 선비가 유배에서 풀려나면서도 나의 마음은 유배를 올 때의 마음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함일까. 곧고 단아한 글체, 군더기도 없고 기교도 없다. 이러한 글체를 쓴 다산이란 인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본당에 오니 다산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무식한 도둑의 인상이었다. 자세히 보니 곧은 코에는 고집이 거득했고, 양쪽 귀밑은 시커멓고 아주 고집이 센 불굴의 의지를 가진 힘이 넘치는 인상이었다. 그 초상화가 다산 정약용의 진짜 얼굴과 동일하다면...

초당의 현판은 추사가 썼는데 그 글씨에 대해서 여기서 내가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안되리라 싶다. 무수한 나보다 글을 잘 보는 사람들이 많은 평가를 한 글씨이니까. 기둥에 써 붙여 놓은 글씨들도 완당이라고 낙관이 되어 있는데 내가보는 일반 추사체와는 다른 살집이 찐 두툼하고 풍만한 글씨체로 여러가지 아름다운 문구로 장식되어있었다.

애련지(?)를 보고 집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본당의 좌측에 샘물이 있었지만 물에 먼지가 많아서 한술 떠먹는 것을 관두고 동쪽의 집(동암)으로 갔다. 간판이 멋떨어지게 붙어있다. 다산초당. 보정산방... 다산초당은 다산이 쓴 글씨인데 정석의 글씨와는 사뭇 다르게 아주 멋을 내어 갈겨 뻣쳐놓았다. 아마 한잔을 하고 흥에 겨워서 썼을 수도, 달밤에 글을 읽다가 기분이 내켜서, 아니면 좋은 손님과 담소를 하다가 기분이 내켜서 썼을 수 있을... 내가 보기에는 기분이 좋았을 때 쓴 글씨 같았다.

보정산방(寶丁山房)- 추사가 쓴 글씨- 글씨의 아름다움이야 말할 수 없고 내가 이 대가의 글씨에 대해 논할 자격도 없지만, 보정이라는 글자에서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정다산의 앞머리에 추사는 보석을 박아 놓은 것이다. 얼마나 한 사나이의 생이 위대해야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배에 비유해 줄 수 있을까. 이건 작위적으로 행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고 싶어도 되지 않는 것. 우리는 조훈현을 天下의 조훈현이라고 많이들 부른다. 조훈현은 천하인 것이다. 아무리 바둑을 잘 두어도 천하라는 칭호를 앞에 부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조훈현의 이름 앞에 천하라고 붙이 듯 추사는 정약용의 이름 앞에 보배보자를 붙인 것이다. 두사람의 존경과 우애와 정약용의 이름됨에 시기와 질투가 타 올랐다. 얼마나 부러운 일이며 나의 앞날에 내 이름앞에는 무엇이 붙을 수 있을까.

천일각으로 갔다. 바다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산은 여기에서 휴식을 취하고 생각에 잠기고 하였을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정자는 최근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설명에는 여기서 읍내에 있는 친척을 그리워했다고 되어 있지만 어쩌면 그 원대한 책들에 대한 구상을 하였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내려와서 다산기념관에 갔다. 입구에 장우성이 그린 다산의 초상화가 있었다. 이 초상화는 초당의 초상화 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그려져있다. 내용을 둘러보고 우리는 차를 몰고 담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배가 고파서 광주를 들렀다. 그 유명한 떡갈비를 먹기 위하여... 정말로 푸짐하게 잘 먹었다. 그리고는 무수한 책에서 읽고 또 여러 tv프로에서 보고 또 보고했던 우리나라 조선의 조경사에 황금빛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소쇄원으로 갔다. 그리고 이 소쇄원은 내가 여기에 적을 필요도 없이 무수한 학자들이 칭송의 노래를 부르고 불렀다. 그리고 현대의 조경학자들도 칭송함에 입이 부르털 지경이었다.

소쇄원에 도착 - 지금부터는 내가 느낀 바만 적겠다. - 주차장에 내려서 약도를 간단히 보고 대나무 밭 사이로 올라갔다. 역시 입장료는 안받아서 좋다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잔설이 남아 있고 좌우에 대나무는 무성하고 이 좁은 멋진 소슬한 길을 올라가면 조경사에 가장 뛰어난 양산보의 작품의 세계가 펼쳐진다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역시 남도의 대나무밭은 언제 보아도 정취가 있어서 좋다. 그리고 올라갔다. 겨울이라 초라하고 말라붙은 개울. 쓸쓸한 정자, 외나무 다리. 퇴락하고 퇴락한 집... 황량한 가운데 서있는 담장... 너무나도 쓸쓸한 광경 - 소쇄원48영은 한갓 시인들의 말장난이란 말인가. 무수한 학자들이 읊조린 소쇄원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단 말인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만들어 놓은 하나의 신화적 노래에 불과하단 말인가. 사람이 살다가 간다는 것 - 이런 별 볼 일 없는 도랑 곁에 집을 짓고 산 한 사나이-양산보-의 삶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시인 묵객들이 다녀가서 시를 짓고 유명인사들이 많이 다녀갔다는 것만으로 유명해진 이 초라한 장소가 유명세만 타고 아무 별 볼일 없는데 우리를 아직까지 사로잡고만 있지는 않은지...

그 동안 윤선도와 정약용의 거인적 족적에 잠겨있던 나는 실망의 한숨을 뱉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길도와 다산 초당은 이곳에 비하면 너무나도 예술적 가치와 아름다움이 묻어있어 느낌이 배어나는 곳이다. 대미의 장식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다니... 초라하고도 초라한 풍경에... 아무리 잘 봐 주려고해도 잘 봐 줄 수 없는 어느 군 어느 고을에나 있는 개울가의 양반집보다 하나도 조경적으로 나을게 없는 한 양반의 집에 지나지 않는 것에 왜 많은 조경을 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그렇게 아름답게 노래했을까... 시인 묵객들이 많이 배출되어서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철학적인 뜻이 함축되어 있어서인가. 의문이고 의문이다.

그냥 돌아 나왔다. 그리고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일의 일정이 있는 순천으로 바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손이 사는 곳에 들러서 소쇄원 목판화를 하나 샀다. 항상 명승을 관람하고 나서 남는 것은 이러한 소품들만 그 때의 기분을 되새기게 해주니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내 머리를 번득 스치는 무엇이 떠올랐다. 현대의 인공적인 거대하고 정제된 세련미에 너무나도 잘 길들여지고 있는 나의 눈은 자연이 主고 인공이 최소한으로 베풀어진 장소에서 너무 많은 인공의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儒家란 무엇인가. 인위적으로 조직된 인륜을 이야기하는 철학이 아닌가. 자연이 지배하던 시절에 인간이 어떻게 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 모여 살 수 있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유가의 세계에서는 잘못된 상대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피비린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가의 경지에서 볼 때 이 무위의 자연에서 유가의 학자들은 인공의 내음을 지우고 안식을 찾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양산보 - 이자는 내가 알기로는 조광조계열의 개혁파인 인사이다. 유가의 정치를 꿈꾸다 좌절한 한 사나이의 철학이 구현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돌아보며 권력의 단물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새롭게 자신을 일깨워 주는 공간이 이 초라하고 초라한 무위의 공간인 것이다라는 생각이 미치자 내가 발걸음을 너무 빨리 내딛으며 빠져나오지 않았는지하는 아쉬운 생각이 났다.

혼란스러워 피곤이 갑자기 몰려온다. 그러나 한성일이는 내 눈치를 챘는지 정자를 몇개 더 보고 가자고 한다.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자고하고 식영정으로 향했다.

식영정 앞에 가사문학관이 있길래 들렀다. 현대적 건물이 이렇게 고색창연한 곳에 있으니 여러 옛 건물들이 초라해 보인다. 입구에는 사각형 방지가 있고 방지 옆에는 날라갈 듯 모인 지붕으로 지은 정자가 있다. 단청도 아름답고... 단청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우리의 조상들은 저 정자에 오를 때마다 구름위의 천상의 세계를 올랐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름다운 戱畵이다. 현대적 감각에 맞게 지어진 건물의 현판은 여초선생이 쓴 것이다. 역시 멋있게 써 놓았다. 지금은 새로이 지은 건물이라 말들이 많겠지만 세월이 흐르면 이것 또한 역사적인 건물로 남으리라. 역시 조선시대의 유행가의 산실인 전라도답게 여러 묵객, 판각가들이 그 시대의 유명한 정자, 싯귀를 쓰고 조각해 놓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역시 책을 한권 샀다. 집에서 읽으면 많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리라고 상상하면서...

식영적에 올라가니 경치가 아름답다. 그 시대에도 이랬는지는 모르지만 저수지가 커다랗게 놓여 있고 석양에 저수지에 비치는 햇살은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주위의 아름드리 소나무는 숲속의 조그마한 정자를 자연과 동화되게 빚어놓은 한폭의 전형적인 조선의 묵화였다. 이 언덕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양반들 만이었을까. 일반 서민들도 올라와서 쉴 수가 있었을까. 광활한 대지 위에 급경사의 언덕이 있어 조망하기 좋아 정자를 지은 자는 돈있는 자일지 몰라도 이용은 뭇사람들이 다 이용하며 시름도 달래고 노래도 부르고 노닐었기를 바라며 돌아섰다.

그리고 순천을 가는 길에 있는 명옥헌으로 갔다. 명옥헌은 건물은 팔작지붕의 대가리가 너무 작아서 건축적인 가치는 별로인 것 같았지만 앞의 배롱나무에 꽃이 피는 계절에 온다면 아마 자리를 뜨기가 힘들 것 같았다. 배롱나무 속에서 연못을 쳐다보며 대청에 앉아 있으면 아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배롱의 흐트러진 모습과 그 연못에 비친 배롱의 꽃과 천지에 꽃의 향연 그것은 아마 그 시대 사람들이 지상에서는 보기 힘든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연을 아주 인공적으로 조성한 자연적 아름다움. 그러나 치졸함이 배어있는 아름다움. 유흥준은 대교수졸(大巧守拙)이라는 옛 사람의 말을 빌어 표현했고 오주석은 너무 아름다운 것은 비정함이 베어있다고 했던가.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한갓 옛 사람들의 돈자랑을 구경한 것도, 한사람의 야심찬 역작을 구현한 장소도, 한사나이의 무념무상의 마음을 표현한 아집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쓸쓸하고 허망하다. 이 역사의 시체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항상 허망-虛懷-으로 다가오는 자신이 한스럽다. 좀 더 젊었더라면 교훈적인 시사점도 많을 텐데... 겨울의 풍광은 항상 서글픔만 주는 것이라 자위도 해본다.

순천을 갔다. 윤사헌씨가 마련한 회를 맛있게 먹고 좀 불편한 잠자리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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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답글 아이쿠 이런... 여비 3723 2003.07.28 01:01
76 유럽, 출발일정 변경~!! 구태익 2719 2003.07.23 01:01
75 답글 일정일부 변경 : 7월23일 구태익 3351 2003.07.23 01:01
74 유럽의 유명 정원 홈피 첨부파일 구태익 3426 2003.07.10 01:01
73 답글 나머지 서양정원 홈피들..^^ 구태익 3740 2003.07.14 01:01
72 Vaux-le-Vicomte 찾 사진 첨부파일 구태익 2346 2003.07.09 01:01
71 유럽일정 변경 : 7월4일 수정 구태익 2929 2003.07.04 01:01
70 답글 비엔나ㆍ파리ㆍ쾰른 숙소 : 7월23일, 내용추가~!! 구태익 3323 2003.07.07 01:01
69 여름방학 유럽여행 일정초안 구태익 3261 2003.06.2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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