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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기행[신경준 버젼]

구태익 | 2003.03.16 01:01 | 조회 4277
장원조경 신경준사장께서 직원들과 함께 지난 1월말에 보길도를 다녀와서 기행문을 남기셨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여기에 원문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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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20분에 서울을 출발하여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모든 게 좋고 좋았다. 날씨가 흐린 것을 빼고는... 8시 15분에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Ocean Park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국수로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 출발(8:40)하여 고창휴게소(10:25)에서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고 달리고 달렸다. 고창 근처는 눈이 많이 와 잔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목포에서 고속도로를 내려와 강진에서 땅끝을 향해서 달리는데 이쪽의 지형은 여느 전라도 땅과는 사뭇 달랐다. 산세도 험하고 산머리에는 암석이 노출된 게 사뭇 강원도의 산세와 다름이 없었다. 아마 한반도 산세의 기운이 바다를 향하여 달려가면서 마지막으로 힘을 다 솓아 부어 융기하여 꿈틀거리는 듯하였다.

꼬불꼬불한 산허리를 돌아 땅끝에 도착하였다. 땅끝은 조그마한 포구였는데 새로이 지은 전망대도 위용을 자랑하고 선착장 주위에는 횟집들도 즐비했다. 표를 타서 배를 기다리니 시간이 좀 남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백반이었는데 1인당 5,000원, 미역국에 밥맛도 꿀맛, 김치도 짜서 탈이지 맛있고 역시 남도의 음식은 달기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보길도로 가는 장보고호에 몸을 실었다.

배는 차도 실어 나를 수 있는 제법 큰 배였는데 중학교 때 부산서 충무를 오가는 배에 비하면 그 동안 성장한 우리나라의 국력을 보는 것 같았다. 배에서 남자 직원들은 고스톱에 열중하고, 나와 최승호는 밖으로 나와서 사진을 찍고, 배는 순풍에 돛을 단 듯 미끄러지고, 날씨는 포근하고, 모든 것이 좋았는데 흐린 것이 흠이다.

바다란 역시 사람의 가슴을 확트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어장의 어구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소득을 가져다주는 곳-하지만 적조니 녹조니 하면서 자연파괴를 말하면서 신음하는 곳... 애환은 어느 곳에나 서려있음을 보여준다.

넙도(남도)라는 섬에 40분만에 잠시 귀착을 하고 10분 후에 보길도에 도착했다. 한눈에도 섬이 제법 커 보였다. 그러나 앞섬인 노화도는 면소재지가 있는 섬으로 더 컸고 건물도 많았다. 곧 보길도와 앞섬이 다리로 연결될 모양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면 경관도 많이 달라지리라.

보길도의 항인 청별항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부황(浮凰, 浮黃?)리로 향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섬을 다 보아야한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청별항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에 부황리는 위치하고 있었다. 멋들어진 정자(세연정)와 연못. 여러책에서 보는 풍광보다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예전에 우리나라의 한 멋쟁이가 20여년에 걸쳐 조성한 정원답게 아름답고 조촐하게 그리고 제법 웅장하게 꾸며져 있었다. 꼭 창덕궁의 비원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네모난 방지도 처음보고 여러 가지 조경사적인 이야기도 떠 올려보고 이 겨울에도 중부지방의 풍치와는 별다른 상록의 나무들. 꽃이 핀 동백나무도 있고... 연못과 방지는 남여의 성관계를 상징한다던가... 저 연못 속에 자연스럽게 놓인 돌들의 아름다움- 역시 윤선도의 미학적 식견을 볼 수 있는 그 자체이다.

洗然亭 - 자연을 씻었다는 것인가?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씻어내었다는 것인가? 어찌하였든 무엇을 안전히 없앤 후 초탈하여 진수만 남았는 것을 즐기는 정자란 뜻인가.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으로 볼 때 이 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저 나라님이 사는 궁궐보다도 더 아름다운 자연을 자신이 구현해 놓고 지켜보는 이 정자는 경복궁의 경회루도 창덕궁의 주합루도 이보다는 못하다는 말인가.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고색창연함만 남았지만 그 당시 이정도 규모의 정자를 짓고 돌들을 배치하고 연못을 감상하고 시를 짓고 활도 쏘고 하였다면 과히 그 정취는 황후장상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느낄까. 아름다움일까 쓸쓸함이까.

그리고 우리는 동천석실(洞天石室)로 갔다. 말라버린 개울을 건너 1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된다더니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빽빽이 들어선 상록의 나무사이로 하늘도 거의 보이지 않는 골자기를 핵핵거리며 올라가니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정자 앞에 서니 通天 그 자체였다. 앞의 산자락(格紫山)은 병풍을 둘렀듯이 펼쳐져있고 병풍의 끝을 마감이나 하듯이 좌우로 볼록하게 팔걸이처럼 솟아 있다. 그리고 중간에는 안산이 고느즉히 있고 통천석실은 조금 올라붙어 이 명당을 한눈에 바라보게끔 되어있다. 좌청룡과 우백호 안산과 조산 得破가 확실한 개울. 명당중에 명당. 특히 관조할 수 있는 정자란 조금 높게 올라붙어야 명당의 값을 더욱 발하는 게 아닌가. 낙서재가 있던 자리는 밭때기로 변해 있고 앞의 개천은 잘 어우러져 좌에서 우로 흐르고 있었다.

윤선도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부사시사를 지었을까. 이 섬이 그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국에 책에서 읽은 이 글은 단순히 시험을 치기 위하여 읽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40대 중반의 지금. 김지하가 오적을 쓰듯 하루 저녁에 단숨에 썼을까. 아니면 두고두고 써내려간 인생이 걸려있는 글일까. 아니면 자신의 백성(?)에 대한 훈계와 애정의 표현일까.

부용(浮龍. 芙蓉)리에서 윤선도는 낙서재를 지었다. 그 곳에서 어부사시사. 농가월령가를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황리의 세연정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신이 만든 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지은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틈이 나는 대로 동천석실에 올라와 자신이 있는 부용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며 그 곳이 황제의 자리와 동일하다는 것을 느끼며 낙서제의 위치는 제왕의 의자에 해당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세를 위로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사람들이 그리우면 여황리(어항리)에서 여러사람과 더불어 환담하였을 것이다.

용은 남자가 집무를 하는 엄정한 곳, 그리고 놀기는 봉황이 있는 곳에서 놀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여황리에서 여러 봉황(주민)과 놀다가 하늘(동천석실)에 와서 자기가 지상에서 노는 곳을 감상하다가 이 음(봉황이 노는 곳-부황리)과 양(용이 노는 곳-부용리)이 잘 조화된 곳을 하늘(동천석실)에서 더 잘 조화되게끔 관조도 하고... 格紫 - 자란 황제를 뜻하는 색이 아닌가. 격이란 의자를 뜻하기도 하고. 자신이 있는 낙서재는 황제의 의자 위... 이상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왕국에서 백성들을 돌보듯... 보길도는 자신의 왕국... 이 사나이는 이곳에서 왕국을 이룬 것이다. 한 멋을 아는 사나이가 낙향을 하여보니 자신의 뜻을 이룩할 수도 있는 땅이 있어 그 곳에서 모든 것을 부르고, 만들고 ...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 윤선도가 어떠한 인물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우리는 차를 몰아 천연기념물이 있다는 예송리해수욕장으로 갔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어부 한 명은 배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미역을 다듬고 있었다. 주위의 돌들은 썩돌만 가득한데 아름다운 오석의 둥근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은 초라했다. 그냥 바닷가에 늘어선 좀 큰 나무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에 얼마나 학술적 가치가 있는 수종들이 많은 지는 남부 수종에 능통하지 않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록의 거대한 수림이 도처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보길도의 역사적 가치를 알만했다.

차를 돌려 이제는 송시열이 귀양을 가다가 풍랑을 만나 잠시 머물렀다는 탄시암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2곳의 해수욕장(통리 해수욕장과 중리 해수욕장)을 거쳤는데 계속해서 보는 바다이고 해수욕장이라 그냥 덤덤히 지나쳐 탄시암으로 향했다. 길은 좁았지만 바위로 가는 길은 호박돌을 박아서 잘 단장해 놓았다. 바위앞에 스테인레스로된 詩 해설판이 추운 겨울바다를 더욱 푸르게 하고 바위를 돌아가니 초라한 글새김이 드러났다. 항상 사진에 금강산이니 묘항산이니 하는 곳에 새겨진 거대한 명필들의 새긴 글만 보다가 이 웅장한 바위에 조그마한 보일듯말듯한 글씨로 새겨진 송시열의 글귀를 보는 순간 이 거인이 표현한 유가의 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송시열은 송자(宋子)라고 불리우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가 아닌가. 허목과의 학문적 당파적 대결, 그리고 상호를 존경하는 여러 가지 일화들을 어릴 때부터 들어온 나는 송시열이 상대를 모함하고 감옥에 넣고하는 노인네가 아니라 유학의 대가로 공자의 사상을 조선의 사회에 맞게 재해석하고 그 해석을 완성시킨 자로 알고 있었는데 이 늙은 노인네가 귀양을 가면서 적은 싯귀도 마음에 영 안드는 것이다.

여든셋 늙은 몸이 찬 푸른 바다 한가운데 있구나
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이길래 세 번이나
쫓겨나니 궁한 운수로다.
북녘 끝 부질없이 님을 우러르며
남녘바다 바람 잦기만 기다리네
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에
감격하며 외로운 충정 흐느끼네

무슨 미련이 아직 남아서 자기를 사지로 보내는 임금에게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인가. 이 싯귀가 임금의 귀에 한시바삐 들어가서 자기를 풀어 주기를 바라서인가. 아니면 송시열의 유학적 세계관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는 단 말인가. 늙고도 노회한 유림의 거두가 이렇게 넋두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사회상과 그 시대의 한계성이 실망스럽고 안타깝다. 오히려 이 보길도에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 자기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며 그 백성을 위하여 월령가를 부르고 자신의 왕국의 어부들을 위하여 어부사시가를 부르는 윤선도가 얼마나 멋쟁이인가.

해가 서산을 넘어 간다. 우리는 섬의 동쪽 끝에 있어서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것을 혹시나 볼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숙소가 있는 서쪽해안가로 차를 급히 몰았다. 그러나 날씨는 흐렸고 해는 보이지 않았다. 숙소는 삼능건설 연수원-폐교를 연수원으로 개조하였는 곳이었다. 앞에는 재법 마을이 켰다. 한 때는 많은 꼬맹이들이 뛰어 놀았을 것이다. 폐교가 된 사연은 보나마나 뻔한 것. 추운 겨울 바다에 맞게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고 꼬불꼬불 산길을 00나무 숲을 지나 올라가니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연수원은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게 잘 관리가 되어있었다.

여장을 풀자마자 저녁을 먹을 곳을 찾았다. 관광객이 별로 오지 않는 비수기라 식사를 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숙소를 지키는 할머니는 말했다. 그리고 한 식당을 알려주었는데 가오리회, 아나구회, 우럭회를 먹고 소주를 몇잔 걸치고 숙소로 돌아 왔다. 숙소에 와서 한잔하는 팀, 고스톱치는 팀, 카드하는 팀, 자는 사람 등... 역시 여행이란 이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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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자료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77 답글 아이쿠 이런... 여비 3724 2003.07.2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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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답글 일정일부 변경 : 7월23일 구태익 3352 2003.07.23 01:01
74 유럽의 유명 정원 홈피 첨부파일 구태익 3426 2003.07.10 01:01
73 답글 나머지 서양정원 홈피들..^^ 구태익 3740 2003.07.14 01:01
72 Vaux-le-Vicomte 찾 사진 첨부파일 구태익 2347 2003.07.09 01:01
71 유럽일정 변경 : 7월4일 수정 구태익 2929 2003.07.04 01:01
70 답글 비엔나ㆍ파리ㆍ쾰른 숙소 : 7월23일, 내용추가~!! 구태익 3323 2003.07.0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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