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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와르, 그는? : 필독!!

구태익 | 2002.09.15 01:01 | 조회 5938
르노와르 Pierre A Renoir(1841∼1919)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로서, 1841년 도자기 생산으로 유명한 프랑스 중부 리모주에서
태어났다. 4세 때 파리로 이사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한 양복점이어서 13세부터 도자기
공장에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였다. 이곳에서 색채를 익힌 것이 뒤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무렵부터 점심시간에는 루브르미술관에서 J.A.와토나 B. 부셰 등
의 작품에 이끌려 화가가 될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4년 후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화
의 물결에 밀려 실직하고, 겨우 부채그림이나 점포장식 등을 하며 연연하였다.

1862년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C.모네, A.시슬레, 바지위 등을 알게 되면서 C.
피사로, P.세잔, J.B.A.기요맹과도 사귀어, 훗날 인상파운동을 지향하는 젊은 혁신화
가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도자기 굽는 일을 배우다가 미술의 길로 들어선 르노와르는
스스로를 그림쟁이라 불렀다.

산업혁명에 접어든 사회에 살면서 늘 전통적인 수작업의 섬세함을 동경하던 르노와르
는 1864년 <살롱>에 입선하면서 간신히 화가로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상
파 그룹 중에서 유일하게 인물화에 전념한 작가인 르노와르는 바르비종과 퐁텐블루 등
지로 가서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 경치나 정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초상
화,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과 아이들의 생기발람함을 노래하는 듯한 그림을 그렸다.

나부(裸婦)와 소녀들을 풍만하고 매력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
다. 1854년 도기공방(陶器工房)에 첨화(添畵) 직공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밤에는 데생
을 공부하였고 몇년 후, 공방의 일자리를 잃자 화가가 될 것을 결심, C.글레르의 화실
로 들어갔다.

초기에는 코모, 들라크루아, 크루베 등의 영향을 받았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
쟁에 종군한 후에는 작풍도 점차 밝아졌다. 그리하여 인상파의 기치를 든 1874년 제1
회 전람회에는 《판자 관람석》(1874)을 출품하였고, 계속하여 제2회와 제3회에도 참
가하여, 한동안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더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
개하였다. 그는 행복한 기질의 삶의 기쁨을 화면에 채웠다.

대작(大作) 《물랭 드 라 갈레트 Le Moulin de la Galette》(1876)와 《샤토에서 뱃놀
이를 하는 사람들》(79)은 인상파시대의 대표작이다. 81년 이탈리아를 여행, 라파엘로
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고부터는 그의 화풍도 마침내 한 전기(轉機)를 맞이하
였다. 귀국 후 얼마 동안의 작품은 색감과 묘법(描法)이 크게 바뀌었다.

즉 담백한 색조로써 선과 포름을 명확하게 그려서 화면구성에 깊은 의미를 쏟은 고전
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로 《목욕하는 여인들》(1884~87) 등을 그렸다. 그 후는 완전
히 인상파에서 이탈하여 재차 독자적인 풍부한 색채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
숙한 작풍을 확립하였다. 글레르의 화실에서 알게 된 C.모네·A.시슬레·F.J.마질
과, 그들을 통해 알게 된 C.피사로·P.세잔 등과 함께 <카페 게르부아의 모임>에 참가
하였고, E.마네와 모네의 영향하에 점차 인상주의운동을 지향하게 되었다. 모네 등과
같이 화가(畵架)를 세운 파리 근교의 센강 주변, 특히 아르장퇴이에서의 작품은 1874
년·1876년의 인상파전(展)에 출품되었다.

1874년 봄 <인상파전>을 포기하고 콜렉터가 많은 <살롱>에 출품했는데, 실제로 그는 <
살롱>에서 작품을 팔아 경제적인 여유를 구가하면서 여행할수 있게 된다. 1880년대,
르누아르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여행을 통하여, 색채와 데생을 종합한 나름대로의
기법을 완성한다.

1876년 무렵은 그의 독자적 화풍이 형성되던 시기였고, 1876년의 제2회 인상파전에는
15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1877년의 제3회전에는 《별을 쬐는 나부》 등을 출품,
그의 인상파시대를 대표하는 작품군을 발표했다. 그는 동료화가들과는 달리 인물상에
집착했으며, 옥외나 실내의 광선이 인물에 비치는 효과를 추구하였다. 그는 샤르팡티
에가(家)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 자식들》 등 매혹적인 초
상, 실내상(像)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81년 무렵 그는 그 자신이 말하는 <벽>과 맞부
딪쳤다. 구도·형태의 견고성과 명확성 및 질감(質感)을 찾는 모색이 대략 10년간이
나 이어졌다. 새로운 탐구를 위하여 81년에 알제리와 이탈리아를 여행한 그는 S.V.라
파엘로와 폼페이의 벽화에서 큰 영향을 받고, 엷계 칠한 옻칠의 색면·구도성을 《대
수욕(大水浴)》에서 시험하였다. 후기에 이른 그의 특징적인 주제인 나부도 이 시기
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880년대 후반 르누아르는 선형이 부드러워진 작품을 선보
이면서, 붐비는 대로를 지나다니는 여인들의 얼굴, 그 평범하과 환한 얼굴이 강조된
일상 생활을 묘사하는데 치중한다.

1890년 무렵부터 엷게 옻칠한 색채를 중층(重層)시키는 수법인 이른바 <무지개빛의 시
기>가 시작되었고, 인상주의와 고전적 구조라든지 질감 표현의 조화가 그만의 독특한
수법으로 완성되었다. 《잠자는 욕녀(浴女, 1897, 라인하르트 컬렉션)》 등 많은 걸작
도 이 시기에 속한다. 1903년 남프랑스의 카뉘쉬르메르로 이주한 이후의 노년에는 빨
강·주홍색 등의 강도와 휘도(輝度)를 한층 늘려, 욕녀·어린이·꽃·풍경 등을 그렸
으며, 그 같은 대상은 세속적인 매력을 유지하면서 상징적·시적인 세계에 도달하였
다. 조각·리토그래프류도 이 시기에 가서야 취급하였다. 1892년 <피아노 치는 소녀>
를 국가가 구입함으로써 작가의 명성은 국제적이 된다. 말년에 마비로 손을 못쓰게
된 르누아르는 칸뉴 부근 남프랑스의 지중해 햇빛아래서 시간을 초월한 고전주의적 기
법을 다시 찾는다.

《팰리스의 심판》 등 몇 개의 대작(大作)은 있으나, 손의 신경통 때문에 유채류는 소
품이 많다. 그는 1881년 40세 때 알리안과 결혼, 장남 피에르(배우)·차남 장(영화감
독)·삼남 클로드를 두었다. 또 1900년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도뇌르를 받았
다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근대에 계승한 뛰어난 색채가로서, 1900년에는 레지
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890년부터는 만년에는 지병인 류머티즘성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매고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작하는 기쁨을 잃지 않았다. 말년에
는 색채가 교묘하게 조합되 서 선적인 요소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66세때에는 마이
욜과 사귀면서 그의 영향을 받아 조각을 하게 되었는데 최후 10년 간은 조수를 써서
조각에도 손대어 《모자(母子)》(16)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화가 르노와르 개인의 연대기적 일생사나 화풍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리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르노와르의 작품에 녹아있는 그의 화려한 색감과 분위기, 색채의 터치(touch) 등을 자
세히 들여다 보시고 <정원설계> 과제물의 컬러링(coloring)을 할 때, 참고하시라는 것
입니다.

특히 색을 칠하는 것이 너무 거칠다거나 색감이 칙칙하다 또는 어둡다는 지적을 받은
사람들은 르노와르의 작품에 나타난 그 화려한 색감을 잘 들여다 보시고, 그 느낌을 <
정원설계>나 <졸업설계> 컬러링에 응용하라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조경도면은 화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조경은 \"종합과학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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