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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작품의 세계

구태익 | 2003.03.06 01:01 | 조회 5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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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3.30 ~ 1890.7.29)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는 신학 공부에 열중하다가 28세(1880년)때에서야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초기에는 렘브란트와 밀레의 화풍을 익혀 그 영향을 받아서 사실주의적인 어두운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1886년에 파리로 가서 베르나르 등 인상파 화가들과 사귀면서부터 타는 듯한 열광적인 화풍으로 바뀌었다. 1888년에 남프랑스의 아를로 가서 한때는 고갱과 생활을 같이하면서, 그의 예술의 개화기를 맞아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활약하였다.

그는 강렬한 주관에 의한 타는 듯한 열정적인 화풍으로 태양과 해바라기를 즐겨 그렸다. 그러나 정신병에 걸려 요양 중 권총으로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으로 [감자 먹는 사람들],[해바라기],[자화상]등이 있다. 고흐는 일반적으로 렘브란트 이후로 가장 뛰어난 네덜란드 화가로 손꼽힌다. 그는 근대 예술에서 인상주의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 모두는 오직 10년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색의 개념을 파괴하고, 거친 화풍과 결국은 그를 자살에 이르게 한 정신적인 고통이 표현된 그런 작품이 전부이다. 그의 걸작 중에 많은 자화상과 잘 알려진 [The Starry Night](1889)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말에 소련이 독일로부터 철수할 때 그들은 많은 독일의 예술 작품을 함께 가지고 갔다. 이 명작들은 레닌그라드의 Hermitage의 지하에 숨겨졌다. 이것은 거의 반세기 동안 소련 비밀이었다. 그들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세느, 고갱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드로잉맨으로 가장 뛰어난 후기 인상파 화가이다. 그의 삼촌은 세계적인 화상 Goupil and Co.의 상인이었다. 1869년 The Hague에 있는 지사에 일하기 위해 갔다. 1873년 그는 런던 지사에 보내졌고, 여관 여주인의 딸과 불행히도 사랑에 빠졌다. 이것은 여자와 함께 행복을 찾으려는 몇 가지 비참한 시도의 첫 번째였고, 그의 보상받지 못한 열정으로 그는 너무 상심했고, 곧 그의 일을 떠났다. 그는 1876년 무보수의 조교수로 영국에 있는 학교로 돌아갔고, 그의 도시에서의 비정함에 대한 경험은 종교적으로 열중하고 그의 제자가 따르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신교도의 목사였고, 고흐는 성직자로서 교육받았으나, 그는 1878년 그의 학업을 버리고 예비 목사로서 일하기 위해 벨기에 있는 the grim Borinage 주의 가난한 갱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열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는 자신의 세계를 포기했고, 그의 학업을 포기했다.

그는 Borinage에 남았고, 가난과 정신적 병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예술이 그의 일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부터 그는 그의 새로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혼자만의 열정과 함께. 그는 종종 극도의 가난, 영양 실조로 고통받았으며, 그의 삶에서 나머지 10년의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약 800개의 그림과 데생 작품을 그렸다.

1881부터 1885년까지 고흐는 네덜란드에 살았다. 때때로 하숙을 하기도 했고, 그의 헌신적인 동생 테오로부터 그의 작은 월급으로 고흐는 자금 지원을 받았다. 그의 휴머니즘을 유지하면서 그는 농부와 노동자들을 그렸다. 그 대표적인 것이 \'The Potato Eaters\'이다. 그는 테오에게 썼다. \"나는 이 사람들을 존중하려 노력했다. 그들의 작은 램프 아래 감자를 먹으면서, 그리고 그들의 육체적 노동과 그들이 정직하게 그의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들을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1885년 고흐는 Antoine Mauve의 충고로 Antwerp로 이사갔고, 대학에서 몇 달 동안 공부를 했다. 대학의 교육은 그런 개인주의자에게 영향을 거의 주지 못했다. 그러나 1886년 2월 그는 파리로 이사갔다.

그곳에서 그는 피사로, 드가, 고갱, 슈레, and Toulouse-Lautrec등을 만났다. 이때 그의 그림은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도덕성을 잃고 있는 일본의 목판의 영향을 받아 격렬하게 변하고 있었다. 고흐는 심볼과 색의 표현할 수 있는 가치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는 이것을 인상주의 화가가 그랬듯이 공기와 빛의 가시적 모습을 재구성 할 목적으로 사용했다. \"내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을 시도하는 대신 나는 더욱 강렬한 나 자신의 표현을 위해 내 방식대로의 색을 사용한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인간본성의 무서운 열정을 빨간색과 녹색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그가 Seurat의 점묘법에 의해 영향받았던 때 그는 더 광범위하고, 정열적이고, 힘찬 필법을 찾아서 떠났다. 1888년 2월 고흐는 Arles(아를)에 정착했고 그 곳에서 그는 15개월 동안 200개가 넘는 유화를 그렸다. 이 시기에 그는 그림을 전혀 팔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했고, 환각증세와 함께 정기적으로 재발하는 신경성의 질환으로 고생했다. Arles에서 그는 동업자를 찾는데 혈안이 되다시피 했고 결국 그해 말엽에 고갱을 만났다. 그러나 그 둘의 싸움의 결과로 그 유명한 사건인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자름으로 인해 그는 더욱 고통받게 된다. 이 사건은 그의 작품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으로 유명해진다. 1889년 5월 그는 자신의 요구에 따라 Arles 가까이의 St Ray의 정신요양소로 갔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Starry Night와 같은 놀란 만한 작품을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그는 그해동안 150개의 데생과 그림을 만들었다.

1889년 테오는 결혼했고, 1890년 5월에 전문가 Dr.Paul Gachet와 후원자와 같이 살고 있는 그와 가까운 Auvers - sur - Oise로 이사했다. 거기에서 그는 그의 모든 정열을 폭발적으로 쏟아 부었고, 그의 삶의 마지막 70일 동안 70개의 유화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 고뇌와 압박은 점점 더 심해졌고, 1890년 7월 29일 권총 자살로 그는 죽었다.

그는 그의 일생동안 오직 한 개의 작품을 팔았다. (Red Vineyard at Arles; Pushkin Museum, Moscow),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의 예술 세계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그 후에 빠르게 높아졌다. His influence on 인상주의, 야수파와 추상주의에 대한 그의 영향은 거대한 것이었고, 그것은 20세기 예술의 많은 다른 국면에서 나타났다. 그의 질풍 같고, 드라마 같은 삶과 그의 생각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의지가 그를 근대 최고의 문화적 영웅 중에 하나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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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먹는 사람 들] 1885,
Oil canvas, Rijksmuseum Vinsent van Gogh,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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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핀 복숭아] 1888,
Oil canvas, Rijksmuseum Kroller-Muller, Otter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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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핀 아몬드 나무의 가지들] 1890,
Oil canvas, Rijksmuseum Vinsent van Gogh, Vinsent van Gogh Foundation, Amsterdam





꽃이 핀 아몬드 나무의 가지들-
이 그림은 테오 부부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렸다. 비록 그 어느것도 요양소에서 보낸 편지에 수 차례 걸쳐 밝힌 \'비탄\'을 완전히 진정시켜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매우 불행한 처지였던 고흐는 삼촌이 된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그는 요양소를 떠나 파리로 와서야 아기를 볼 수 있었다. 아기와 테오를 보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몬드 가지의 형태는 통속적인 \'일본풍\'의 느낌을 준다. 그러나 섬세한 드로잉과 부드럽게 노래하는 듯한 색채를 통해 미묘하게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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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송이의 해바라기] 1887,
Oil canvas, Rijksmuseum Kroller-Muller, Otterlo





네송이의 해바라기 -
해바라기라고 하면 바로 고흐를 연상하게 되는 꽃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고흐는 해바라기 꽃의 강한 모티브를 발견하고 그것을 그리는 데 열중하였다. 특히 아를르에서 살고 있던 시대에 있어 해바라기는 그의 중심적 주제였다. 아무튼 대담한 노란색을 둘러싼 불꽃같은 꽃잎이 고흐의 잠재적인 정열을 만나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이루어진 느낌이다. 이 작품은 아를르 시대 이전 파리에서 그린 작품으로 해바라기의 최초에 해당된다. 이후 그의 작품 속에 눈 부시는 노란색이 주조를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네덜란드의 누에넹 시대에 그린, 새집의 형상을 연상케 하는 원형의 둘레는 어쩌면 그의 감각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패턴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그의 리드미컬한 생명력이며 그의 생애,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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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를 문 해골] (아를의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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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인이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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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스토랑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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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강의 별 달밤]





론 강의 별 달밤 -
두 사람의 연인을 전경에 두고 국화꽃이 활짝 피듯, 푸른 하늘에는 반짝거리는 별들이 가득하며, 강물에 비친 불빛의 그림자가 길게 리듬을 그리는 이 한 폭의 아름다운 야상곡은, 섬세한 가락으로 놀랄 만큼 정서에 넘쳐 있다. 고흐의 리리시즘, 거의 항상 그 강도와 밝기 때문에 리리시즘으로서의 외관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자연과의 공감을 바탕으로 그리려고 하는 그는 바로 본질적인 시인(詩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를르에 도착하자마자 밤의 아름다움을 몇 번이나 그리려고 마음먹었던 사실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져 있다. 그러나 그가 겨우 밤의 테마에 착수한 것은 9월이 되고서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 지방의 별이 가장 아름다운 달이 9월이었고, 고흐는 촛불을 그의 모자 위에 세우고 밤 경치를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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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카페 테라스] 1888,
Oil canvas, Rijksmuseum Vinsent van Gogh, Vinsent van Gogh Foundation,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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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트 마리의 어선] 1888,
Oil canvas, Rijksmuseum Vinsent van Gogh, Vinsent van Gogh Foundation,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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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를 병원](고흐가 입원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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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렌지와 푸른 장갑의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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