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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서-242 강진 다산초당

구태익 | 2007.04.25 01:01 | 조회 2278
ㆍ전남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에 위치한 이 정자는, 조선조 후기 실학사상가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선생이 辛酉사옥(1801년 천주교도들에 대한 탄압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와서 외가(해남 윤씨)의 도움으로 마련한 초당이다.

\'茶山\'이란 이름은, 본시 이곳이 정약용이 기거하기 전부터 차밭이 만산(滿山)하여 [茶山]
이라고 불렸다는데 그는 이곳에서 그의 호를 \'다산\'이라 고쳤다. 해남의 외가쪽 사람들은
尹孤山이래 家傳되어오던 천여권의 장서를 제공하였으므로, 다산은 이곳에서 실학사상과
관련된 다양한 독서와 사색을 통하여 수많은 저술을 하였다.

즉 다산은 이곳에서 마음놓고 사색하고 연구하며 눌린 자의 억울함에서 벗어나 생의 즐거
움을 느끼며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하여 수많은 저서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산
은 여기서 18명의 제자들을 가르쳐 모두 학자로 키웠다. 원래 15,6평의 초가였던 다산초당
은 1930년대에 폐허화했는데 1959년 해남윤씨의 주도로 결성된 \'정다산유적보존회\'에 의
해 우선 초당이 복원되었다. 이후 1970년대에 강진군이 중심이 된 \'다산유적복원위원
회\'에 의해 다산 동암과 서암, 유적비 등이 복원 · 건립되었다. 초당 동편 백련사로 가는 길
목 잔등은 흑산도에 있는 약전 형과 고향이 그리울 때면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던
곳으로 이런 선생의 심회를 되살리기 위해 그 자리에 천일각을 지었다 : [다산학술재단]
홈페이지

http://www.tasan.or.kr/tasan_tour_chodang_01.htm>다산4경 ☜ 클릭하세요


* 도면 : 이재근(1991). <조선시대 별서정원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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