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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39
연경당의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협문(夾門) : 2001년 11월18일(일)
조선조 유교사회에서는 남녀구분이 엄격하였다. 태종때 이미 어명에 의해 \"사대부는
부부간에 따로 잠자라\"는 영이 내려져 바깥 양반의 침방은 사랑채에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자손을 갖게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법, 그래서 조선
조 사대부의 가옥구조는 겉으로 볼 때는 여성공간과 남성공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
지만 안으로는 통하게 되어 있어, 바깥양반의 헛기침소리나 곰방대를 두드려 보내는
신호를 안주인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잇담을 쌓아 안마
당과 사랑마당을 확연히 구분하였다 하더라도 이처럼 작은 문을 달아 연결해둠으로써
내외공간의 연속성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조선조 유교사회에서는 남녀구분이 엄격하였다. 태종때 이미 어명에 의해 \"사대부는
부부간에 따로 잠자라\"는 영이 내려져 바깥 양반의 침방은 사랑채에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자손을 갖게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법, 그래서 조선
조 사대부의 가옥구조는 겉으로 볼 때는 여성공간과 남성공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
지만 안으로는 통하게 되어 있어, 바깥양반의 헛기침소리나 곰방대를 두드려 보내는
신호를 안주인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잇담을 쌓아 안마
당과 사랑마당을 확연히 구분하였다 하더라도 이처럼 작은 문을 달아 연결해둠으로써
내외공간의 연속성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