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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취화선>보러 가자...
\"끝없는 변화욕구 한폭의 산수화로”
<춘향뎐>(2000) 이후 2년 만에 조선 후기 대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담은 <취화선>을
내놓은 임권택 감독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던 지난 26일 전주에서 만났다.
임 감독은 \"얘기가 중요하지, 밥이야 뭐…” 하며 주문한 음식에 숟가락 한번 대지 않
고 인터뷰에 응했다.
시사회 때 \'예전 작품들과 달라지려 했다’는 얘기를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
가.본디 내가 롱테이크(길게 찍기)를 즐겨 작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번엔 롱테
이크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클로즈업을 많이 썼고 편집에 속도감을 살렸다.
한국화는 대개 세로로 그리는데 스크린은 가로다. 때문에 클로즈업을 많이 쓴 면도 없
지 않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시도한 건 기본적으로 <서편제> <축제> <춘향뎐>을 만들
면서 뭔가 다른 작품을 내놓고 싶었던 마음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에서 장승업이 \"달라지고 싶다”고 절규할 때 감독의 모습을 보았다. 예인의 삶
을 그리면서 자신의 삶이 거기 투영되었을 것 같다.
그런 심회가 없을 수 없다. 나도 기왕 해놓은 것에 주저앉았다면 지금까지 계속 해먹
지 못했을 거다. 장승업은 20대에 이미 이름을 날렸고, 52살에 행방불명되기까지 평
생 당대 최고의 화가로 살았다. 작품에 그 장면을 넣은 건, 그의 삶을 \'천재성’이란
말만 가지고 설명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장승업의 마지막을 그린 장면(안 보신 분들을 위해 밝히지 않음)이 매우 인상적이다.
<근원수필> 등 관련기록을 보면 장승업이 행방불명된 뒤 그가 금강산 신선이 됐다는
둥 온갖 얘기가 떠돌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 그는 끊임없이 거듭나
려 한 화가다. 그런 그가 \'완성’에 올랐다고 안주하며 신선으로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림이든 뭐든, 예술에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세
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라졌을 거라고 본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건 죽음으
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 안으로 들어가 그와 동화되는 경지가 아니겠는가.
시점숏(등장인물의 눈에 비친 장면)을 많이 사용했다. 때문에 화가의 그림이 생물이
되어 살아 나오기도 하고, 산수 자연이 화폭으로 들어가는 인상을 주었다.
화가 얘기다 보니 도리 없었다. 그가 그리고 싶은 세상을 표현해야 하므로. 각각의 장
면도 그렇지만, 영화 전체를 보고난 뒤 한폭의 한국화를 본 느낌을 얻도록 만들고 싶
었다.
추사 김정희 등의 문인화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신선하다.
장승업 시대에 오면 진경산수와 풍속화 등의 맥이 끊어지고, 김정희의 <세한도>가 대
표하는 문인화 이외에는 그림으로 치지도 않았다. 천민 출신인 장승업은 문인화의 세
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중국 그림의 기법을 다 섭렵한 대가다.
장승업으로서는 그런 문인화에 대해 뿌리깊은 저항의식이 있는 게 당연하다.
그 장면이 추사에 대한 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장승업의 그림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궁궐에 끌려가서도 태연한 장승업의 모습은 <장자>에 나오는 대범한 화공의 일화를 닮
았다. 그건 실제 기록에 나온다.
장승업은 고종의 부름을 받아 도화서에 들어가서도 \"술 석잔 줘야 그림을 그리겠다”
고 강짜를 놓기도 하고, 세 번이나 도망을 치기도 했다.
술에 취해 무의식중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도 인상적이다.
그건 이종상 서울대 박물관장의 일화다. 그이가 술에 크게 취해 집에 돌아왔는데, 아
침에 보니 작업실에 그림이 하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대가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다
른 대가의 삶을 인용한 것이다.
김용옥씨와 시나리오를 함께 썼다. 그가 한 일은 어느 정도인가.
그는 명나라 때의 대표적 화론인 <석도화론>을 번역하는 등 중국 화론은 물론 장승업
이 산 시대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인물들의 대사 구사는 모두 그
에게 맡겼다. (칸 영화제에 보낼) 영어 자막의 번역에도 김 교수가 깊이 개입했다. 그
래서 일단 안심이 된다.
<춘향뎐> 이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연거푸 초청받았음에도 임 감독은 짐짓 무심한 태
도를 취했다. \"작품을 어떻게 보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그이들 눈에 비치는 대
로 판단하겠지.” 그가 지나는 말로 한 얘기 한마디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
하리라는 다짐으로 들렸다. \"나도 거듭나야겠단 생각은 늘 하지만, 그게 그이(장승업)
처럼 치열한가는 모르겠네.”
전주/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
아래 사진은 광기의 화가 \"장승업\"의 극중 한 장면
<춘향뎐>(2000) 이후 2년 만에 조선 후기 대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담은 <취화선>을
내놓은 임권택 감독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던 지난 26일 전주에서 만났다.
임 감독은 \"얘기가 중요하지, 밥이야 뭐…” 하며 주문한 음식에 숟가락 한번 대지 않
고 인터뷰에 응했다.
시사회 때 \'예전 작품들과 달라지려 했다’는 얘기를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
가.본디 내가 롱테이크(길게 찍기)를 즐겨 작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번엔 롱테
이크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클로즈업을 많이 썼고 편집에 속도감을 살렸다.
한국화는 대개 세로로 그리는데 스크린은 가로다. 때문에 클로즈업을 많이 쓴 면도 없
지 않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시도한 건 기본적으로 <서편제> <축제> <춘향뎐>을 만들
면서 뭔가 다른 작품을 내놓고 싶었던 마음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에서 장승업이 \"달라지고 싶다”고 절규할 때 감독의 모습을 보았다. 예인의 삶
을 그리면서 자신의 삶이 거기 투영되었을 것 같다.
그런 심회가 없을 수 없다. 나도 기왕 해놓은 것에 주저앉았다면 지금까지 계속 해먹
지 못했을 거다. 장승업은 20대에 이미 이름을 날렸고, 52살에 행방불명되기까지 평
생 당대 최고의 화가로 살았다. 작품에 그 장면을 넣은 건, 그의 삶을 \'천재성’이란
말만 가지고 설명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장승업의 마지막을 그린 장면(안 보신 분들을 위해 밝히지 않음)이 매우 인상적이다.
<근원수필> 등 관련기록을 보면 장승업이 행방불명된 뒤 그가 금강산 신선이 됐다는
둥 온갖 얘기가 떠돌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 그는 끊임없이 거듭나
려 한 화가다. 그런 그가 \'완성’에 올랐다고 안주하며 신선으로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림이든 뭐든, 예술에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세
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라졌을 거라고 본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건 죽음으
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 안으로 들어가 그와 동화되는 경지가 아니겠는가.
시점숏(등장인물의 눈에 비친 장면)을 많이 사용했다. 때문에 화가의 그림이 생물이
되어 살아 나오기도 하고, 산수 자연이 화폭으로 들어가는 인상을 주었다.
화가 얘기다 보니 도리 없었다. 그가 그리고 싶은 세상을 표현해야 하므로. 각각의 장
면도 그렇지만, 영화 전체를 보고난 뒤 한폭의 한국화를 본 느낌을 얻도록 만들고 싶
었다.
추사 김정희 등의 문인화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신선하다.
장승업 시대에 오면 진경산수와 풍속화 등의 맥이 끊어지고, 김정희의 <세한도>가 대
표하는 문인화 이외에는 그림으로 치지도 않았다. 천민 출신인 장승업은 문인화의 세
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중국 그림의 기법을 다 섭렵한 대가다.
장승업으로서는 그런 문인화에 대해 뿌리깊은 저항의식이 있는 게 당연하다.
그 장면이 추사에 대한 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장승업의 그림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궁궐에 끌려가서도 태연한 장승업의 모습은 <장자>에 나오는 대범한 화공의 일화를 닮
았다. 그건 실제 기록에 나온다.
장승업은 고종의 부름을 받아 도화서에 들어가서도 \"술 석잔 줘야 그림을 그리겠다”
고 강짜를 놓기도 하고, 세 번이나 도망을 치기도 했다.
술에 취해 무의식중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도 인상적이다.
그건 이종상 서울대 박물관장의 일화다. 그이가 술에 크게 취해 집에 돌아왔는데, 아
침에 보니 작업실에 그림이 하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대가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다
른 대가의 삶을 인용한 것이다.
김용옥씨와 시나리오를 함께 썼다. 그가 한 일은 어느 정도인가.
그는 명나라 때의 대표적 화론인 <석도화론>을 번역하는 등 중국 화론은 물론 장승업
이 산 시대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인물들의 대사 구사는 모두 그
에게 맡겼다. (칸 영화제에 보낼) 영어 자막의 번역에도 김 교수가 깊이 개입했다. 그
래서 일단 안심이 된다.
<춘향뎐> 이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연거푸 초청받았음에도 임 감독은 짐짓 무심한 태
도를 취했다. \"작품을 어떻게 보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그이들 눈에 비치는 대
로 판단하겠지.” 그가 지나는 말로 한 얘기 한마디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
하리라는 다짐으로 들렸다. \"나도 거듭나야겠단 생각은 늘 하지만, 그게 그이(장승업)
처럼 치열한가는 모르겠네.”
전주/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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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광기의 화가 \"장승업\"의 극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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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 날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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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 '감독선상 하라 카는대로 벌로 한거여..' | 구태익 | 1551 | 2002.05.09 01:01 |
360 | 김을분할머니 대종상 신인여우상 후보에 | 구태익 | 1685 | 2002.05.10 01:01 |
>> | 영화 <취화선>보러 가자... | 구태익 | 1769 | 2002.05.09 01:01 |
358 | 영화 [醉畵仙]을 보다 | 구태익 | 1461 | 2002.05.11 01:01 |
357 | [알림]5월7일 이후 글들은 옮겼음 | 구태익 | 940 | 2002.05.08 01:01 |
356 | 인기 짱!!!!! | 오라~ | 941 | 2002.05.07 01:01 |
355 | 휴일 잘보내셨어여??? | 쑥 | 1102 | 2002.05.06 01:01 |
354 | 생각보다 고생을 많이 했군요..... | 이상훈 | 1040 | 2002.05.11 01:01 |
353 | 지금 학교는 | 구태익 | 1235 | 2002.05.06 01:01 |
352 | 그렇군여... | 쑥 | 947 | 2002.05.06 01:01 |
351 | 교순님..진짜진짜... | 안지선.. | 997 | 2002.05.06 01:01 |
350 | 헉! | 끈! | 998 | 2002.05.06 01:01 |
349 | 끈~~~ ㅋㅋㅋ | 쑥 | 1107 | 2002.05.06 01:01 |
348 | .......담에도?? | 끈! | 983 | 2002.05.08 01:01 |
347 | 과제처리기간(Study Week)!!! | 구태익 | 1036 | 2002.05.06 01:01 |
346 | 형 미얀해 | 구정우 | 901 | 2002.05.05 01:01 |
345 | 1학년 조경 A,B반 학생들 다모임 가입좀... | ... | 997 | 2002.05.05 01:01 |
344 | 정확히 알려줘 | 구태익 | 901 | 2002.05.06 01:01 |
343 | 지송해여.... | 이소라.... | 1111 | 2002.05.05 01:01 |
342 | 소라가 많이 상했나보군..ㅉㅉ | 구태익 | 1081 | 2002.05.06 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