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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이      름: 구태익
  메일주소:  tygu@yonam.ac.kr
  첨부파일:  방초정4.jpg (253.9KB)
  제      목: 김천 방초정
8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8/31)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김천 방초정을 들렀습니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위치하는, 경북 유형문화재 제46호 방초정.. 정자를 세운 이는 이정복(李廷馥)공. 공은 1625년에 정자를 세웠으나 1736년 대홍수때에 유실된 것을 1788년 중수하였다고 전해진다. 방초정 앞에는 가로28m 세로25.5m에 이르는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방지(方池)와 두 개의 섬(圓島)이 배치되어 있고, 연못가에는 수령이 수백년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세 그루의 뚝버들이 물가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어 기품과 전통이 느껴집니다.

방초정은 가마를 탄듯한 2층 누각이 전면 3칸, 측면 3칸의 井자 모양 배치 한가운데 방이 위치하고 있는 아담한 정자입니다. 영남지역 정자는 대체로 마루를 넓게 쓰도록 방을 한 쪽에 치우친 형태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호남지역 정자는 방초정처럼 가운데 井자 형태의 방을 많이 둔다. 영호남의 정자 구조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수업시간에 얘기한 적이 있는데... 기억들 하시나요??

헌데, 왜 방초정에는 연못에 섬을 두 개 두었을까요?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인데.. 조선중기에는 섬 하나를 두는 원칙을 우직하게도 고수하였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방지원도의 기본 구도에 섬이 두 개 이상 출현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왜 그랬을까요?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선중기에 두 차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큰 전란을 겪은 선조들은 일종의 멘붕상태에 빠졌을 겁니다. 그간 철썩같이 신봉하던 성리학의 근본이 두 치례 전란 앞에 속절 없이 무너지자, 마이 당황들 하신 거지요. 방초정의 건립연도를 보아도 임진왜란이 끝나고 병자호란이 일어난 시기와 겹치지요.

전란을 가까스로 수습한 뒤, 사회 일각에서는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혁신이 있어야 한다.' 생각했겠지요. 그 새로운 시도로써, 청나라로부터 새로운 학문(서양기술과 천주학 등)을 받아들여 實事救是(실사구시)에 바탕을 둔 실학이 움트기 시작하였고 더불어 방지원도의 기본형도 파격과 변형을 시도해 본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말고 이지만.. 그런 추론을 감히 한번 해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번 깊이 연구해볼만 한 주제라 생각합니다.
   
 

330-802 충남 천안시 성환읍 수향리 산 3-1 천안연암대학 조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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