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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관한 단상(斷想 : 단편적인 생각)

구태익 | 2013.01.08 01:01 | 조회 3399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 필리핀.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구 9,000만 명이 넘는 큰 나라, 북쪽 큰 섬인 쿠손 섬(우리 학생들의 어학연수지가 있는 Baguio시 위치)만 하여도 남한 면적보다 훨씬 넓어 10만 ㎢가 넘는다.

이 넓고 큰 나라를 5박6일 짧은 기간 그것도 주로 바기오에만 머물다 와서는 이 나라가 어떻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필리핀사람들에게 매우 결례일 것이다. 하지만 며칠 둘러보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바 있어, 필리핀을 통해 우리도 이런저런 많은 부분들을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여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몇 가지 단편적인 생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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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과거 197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부자 나라였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7,420명(총 5개 보병대대가 1개 대대씩 교대 참전)의 지상군을 파견하여 우리를 지켜주었고, 우리가 지지리도 가난하여 세계 최빈국(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시절 필리핀은 우리나라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금 장충체육관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체육관(1963년 건립)을 설계하고 기술자를 보내어 지어준 나라도 필리핀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보릿고개라 하여 이른 봄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던 1960년대, 식량자급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던 우리 농촌에 앞선 벼농사 기술을 가르쳐 준 나라도 필리핀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통일벼를 개발하여 쌀 자급에 성공할 수 있었지요. 당시 필리핀에 있던 [국제 미작연구소]는 세계적인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필리핀의 국민소득은 2010년 기준으로 2,011달러에 불과하여 우리의 약 1/10에 그치고, 이렇다 할 기반산업이 없어 심한 빈부격차(15대 명문가문이 국부의 50%이상 점유, 5인기준 가구당 월 소득 134불 이하 빈곤층이 전 인구의 1/3을 차지)를 겪고 있으며, 해외파견 근로자의 송금(2010년 기준 약 188억 불)이 국가재정의 주 수입원이 되고 있습니다(필리핀주재 한국대사관이 발행한 [필리핀 개황]을 참고). 물론 2010년 5월 현 대통령 아키노3세가 취임한 이래, 적극적인 인프라투자와 재정적자 해소 및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형편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독재자 마르코스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1년간 집권(1972년 9월 계엄령 선포)하면서 뿌리 깊은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만들었고, 독점재벌에 의한 시장독점체제 구축과 이에 다른 서민경제의 파탄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르코스 당시 야당지도자였던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은 망명길에 올랐다가 1983년 8월 귀국도중 공항에서 암살당하였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시위와 폭동이 일어나 마르코스가 퇴진한 뒤, 베니그노 상원의원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올랐으나 그 이후 들어선 민주정부라는 것이 무능하고 부패하기 그지 없어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것)의 어려운 경제상황은 더욱 어려워졌고, 이에 국민들의 가슴 속에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베니그노와 코라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키노3세(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가 부패청산과 경제건설을 공약으로 2010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하네요.

이거 우리나라와 비슷한 얘기 같지 않은가요? 차이가 있다면 독재자 마르코스와 독재자 박정희, 둘 다 독재자이긴 하지만 한 사람은 경제를 일으킨 인물로 기억되지만 또 다른 사람은 부정부패한 인물로 기억된다는 점, 우리나라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이고, 필리핀은 야당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우리로 치면 박대통령에게서 죽음의 고비를 맞았던 김대중 대통령에 해당)와 코라손 아키노(이희호여사?)의 아들이 대통령에 올랐다는 것이지요.

필리핀이나 우리나 독재자의 딸이건 야당지도자의 아들이건 2세가 정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이 이번 필리핀 방문하던 날이 대통령선거가 있던 날이고, 박근혜후보가 당선 확실하다는 뉴스를 인천공항 출국직전 알았으니까요. 만약 박근혜당선자가 아버지시절 개발독재의 어두운 후유증을 잘 치유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세대 간의 골이 깊어져 필리핀처럼 양극화로 치달아 사회가 아주 불안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필리핀에 가서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필리핀은 중국계(화교) 독점자본이 시장을 독식하여 커피전문점은 오로지 ‘스타벅스’뿐, 할인매장은 오로지 ‘SM’이라 부르는 단 하나의 브랜드뿐(우리나라는 이마트도 있고, 홈플러스도 있고 롯데마트도 있어 서로 서비스와 가격 경쟁을 치열하게 하쟎아요, 헌데 독점하고 있으면 그걸 필요가 없죠. 어차피 SM으로 가지 않으면 더 비싼 동네 구멍가게로 가야 하니까),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수입차는 오로지 수입상의 농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이어서, 수입상들이 담합하여 가격을 마음대로 붙이니.. 한국차만 하여도 우리 국내가격의 평균 1.5배에 팔린다고 합니다. 우리보다 소득이 1/10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 마진은 모두 수입상이 붙여먹기 때문이지요. 이런 것이 “반경제민주화”인 “독점재벌”에 의한 경제양극화이겠지요.

또 하나 느낀 점은 “개미와 베짱이”입니다. 우리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에서 개미는 본받아야 할 성실근면의 상징이고, 베짱이는 게으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의미가 바뀌어 개미는 평생 뼈 빠지게 일만 하다가 만년에 골병 들어 모은 돈 써보지도 못하고 불쌍하게 죽은 반면 베짱이는 음반을 취입하여 대박난다는 얘기로 마무리됩니다.

그렇습니다. 필리핀에서 가서 느낀 점 가운데 또 하나는 우리보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이 항상 밝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처럼 심각하거나 무표정한 얼굴인데 비해 그들은 항상 잘 웃고 표정이 밝았습니다. 물론 열대특유의 낙천성과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카톨릭의 영향, 가무를 즐기는 낙천적인 국민성 같은 것들이 이유가 되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건 참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스트레스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일까요?

며칠 간 필리핀을 둘러보고 이 나라와 이 나라 국민들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이며,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 독재자 마르코스를 몰아내었으니 이제 경제민주화를 이루어 다시 한번 아시아강국으로 떠오르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나라입니다. 6·25전쟁 때는 군사를 파병하여 우리를 도와주었고 우리가 어려울 때 많은 경제원조와 농업기술도 가르쳐주고 멋진 건물도 지어주더니,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가 안되어 개고생하니 영어공부를 도와주는 참으로 고마운 나라이지요.

이제 다음주 수요일이면 영어연수를 마치고 다들 돌아오겠네요.. 힘들었나요? 좋은 경험이 되었기 바랍니다. 마지막 남은 일정도 잘 소화하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근데 요즘 한국은 너무 추워.. 추워도 너무 추워.. 돌아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 필리핀 생각이 많이 날 겁니다.

P.S : 필리핀 가기 전에는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라는 문학적 표현을 보고 낭만적인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사실 야자수는 수관폭도 좁고 지엽도 치밀하지 못하며 잎의 크기도 작아 녹음수로 쓰기에는 그늘이 너무 적더라는 것도 이번에 깨달았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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