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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43 : 장소로서 경관(Landscape as Place)

구태익 | 2002.04.12 01:01 | 조회 1738
통일신라의 경애왕이 견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는 포석정터

포석정은 물이 흘러 가는 경로가 다양하기 때문에 술잔을 서로 다른 위치에서 출발시
킬 경우 결코 같은 경로로 이동하지 않으며 수로 경사가 급격하게 변하는 곳이나 굴
곡 지점에서 수로 폭을 확장, 내측 바닥면의 함몰을 만들어 술잔이 엎어지는 것을 방
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유체학적 기술은 수천번 이상의 실험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포석정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흘러 내리는 물의 양 및 속도와 수로의 형태 및 폭, 측면의 만
곡률, 표면장력, 술잔의 크기 및 무게 등이 치밀하게 고려된 고도 과학기술의 산물임
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면 포석정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놀이\'를 위한 시설에 불과한
것인가? 포석정이 놀이 시설이라는 주장은 삼국사기에 `서기 927년 12월 후백제의 견
훤 군대가 신라 금성(지금의 경주)에 쳐들어 가 포석정에서 흥청망청 놀고 있던 경애
왕 (景哀王)을 자살케 했다\'는 대목에 근거하고 있다.

또 삼국유사의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도 `제49대 헌강왕(재위기간 서기
875-885년)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南山神)이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췄다\'는
대목도 포석정이 놀이 시설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포석정이 놀이 시설이 아니라 국정(國政)을 의논하던 `회의 장
소\'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화랑세기(花郞世記)\' 필사본에 포석정이 사당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는 `포석사(鮑石祀)\'라는 말이 나오고 포석정 주변에서 음이 같은 `포석(砲
石)\'이라고 쓰인 명문기와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포석정이 위치한 남산이 신라의 4대 성지(聖地) 중 하나라는 것과 경애왕
이 포석정에서 숨을 거둔 12월은 날씨가 추워 술을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놀이 시설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다.

어쨌든 포석정의 용도가 놀이 시설이었느냐 회의 장소였는가의 공방은 차치하더라도
포석정이 신라인의 뛰어난 과학기술의 결정체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 http://history21.netian.com/history7/history7-2-23.htm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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