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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015

구태익 | 2002.12.26 01:01 | 조회 1774
ㆍ동대사 배치도 : 2002년 12월20일(금)

東大寺는 남대문-中門(본당의 입구)-본당인 大佛殿이 일직선 축상에 있고, 이 축을 중
심으로 위쪽 若草山 산자락에는 니가쯔도(二月堂), 산가쯔도(三月堂)이라 불리는 건물
이 배치되어 있는 神社가 있다.

東大寺는 나라 \'동쪽의 관대사(官大寺)’란 뜻으로 지었다. 일종의 국립 사찰로 당시 일본
으로서는 중요한 정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일본 인구 5백만 명이던 시절 동원된 인력만
도 2백만이 넘었다 하니 대역사였던 셈이다.

이 절은 당시 일본 제13대 왕이었던 성무천황(成務天皇326~370)이 백제스님 행기(行
基)
로 하여금 대불을 간청하여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기스님은 668년 오늘날
오사카 부근, 사카이(堺)시 가원정(家原町)에 있는 가원사(家原寺)에서 백제 왕족 고
지재지(高志才智)와 백제 여인 봉전(蜂田)의 아들로 태어난 백제사람
이다.

동대사 건설 총책임자는 고구려인 \'고려복신(高麗福信)\'이었으며, 법당에 모셔
진 높이 16m 무게 250 ton의 청동대불을 만든 이는 백제인 \'국중마려(國中麻呂)\'
이었고, 대불전 건축은 신라인 \'저명부백세(猪明部百世)\'가 담당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동대사(東大寺)는 고대 한반도의 3국인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일본은 왜 삼국시대 한국인들에게 사찰건축과 대불조성을 부탁하였을까? 그야 물
론 당시 일본에는 이러한 건축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지...


또한 안내판에서 대형버스 주차장이 표시된 바로 아랫 부분(푸른색으로만 구분해두었
다)에 \'依水園(이스이엔)\'이라 불리는 회유임천식 정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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