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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142

구태익 | 2007.03.16 01:01 | 조회 1074
1860년 10월 영국군은 함대 173척과 병사 18,000여명, 프랑스군은 함대 44척과 병사 6,300
여명을 천진항을 통해 북경으로 보내어, 이미 황제가 \'열하\'로 피신하여 텅빈 자금성을 마
음껏 노략질했다.

10월6일 영불연합군은 원명원 주위를 지났다. 그들은 말 그대로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깨
끗하게 약탈했다. 약탈의 주역은 주로 프랑스인들이었으며, 영국군 장교 일부가 약탈에 참
가하기도 하였다. 원명원의 약탈은 10월6일에 시작되었는데, 다음날 7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모두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없이 도둑질에 빠져 있을 수 있었다.

마침 그때 영불연합군의 섭외주임이었던 파크스를 비롯해 청에 포로로 잡혀있던 사람들
이 교섭 끝에 석방되었지만, 그 이전에 포로가 되었던 20명이 사망한 일이 발생하였다. 영
국인 13명, 프랑스 7명이었다. 연합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원명원을 불태우기로 했다.
약탈의 주역은 프랑스군이었지만 방화의 주역은 영국군이었다. 영국군이 지른 불로 원명
원은 사흘동안 타올랐다. 자국의 포로를 죽인 대가라지만 결과적으로 이 방화는 약탈의 흔
적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 진순신지음(2001). [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기행]. 도서출판 예담 34~5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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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영불연합군이 자금성에 난입하여 온갖 금은보화를 약탈해가고 심지어 궁궐
의 방화수(防火水)를 담아 놓던 물항아리(순우리말로 \'드므\')의 금도금마져 칼로 긁어간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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