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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0541

구태익 | 2002.03.11 01:01 | 조회 757
당귀비 양옥환(唐貴妃 楊玉環), 즉 양귀비의 모습

서기 736년 사랑하던 무혜비(武惠妃)를 잃은 현종은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후
궁에는 아리따운 미녀가 3천명이나 있었으나 누구 하나 현종의 마음을 끄는 여인은 없
었던 것이다.

이럴 즈음 현종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한 가지 소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현종의 열여
덟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 수왕비(壽王妃)가 보기 드문 절세의 미녀라는 소문
이었다. 현종은 은근히 마음이 끌려 환관에게 명하여 일단 수왕비를 자신의 술자리에
불러오도록 하였다. 현종은 수왕비를 보자 한눈에 마음이 끌렸다. 수왕비는 빼어난 미
모일 뿐 아니라 매우 이지적인 여성으로 음악.무용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술자리
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악보를 보자 그녀는 즉석에서 이 곡
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녀의 자태는 마치 선녀가 지상에 하
강하여 춤을 추는 듯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수왕비야말로 다름 아닌 후의 양귀비(楊貴妃)로서 현종 황제와 양귀비의 로맨스는
이 만남을 계기로 그 막이 오르게 되었다. 그 양귀비의 본명은 옥환(玉環)이며 현종
의 며느리이었으니, 56세의 시아버지 현종이 22세의 며느리와 사랑을 불태운다는 것
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선 양귀비 자신의 뜻이라 빙자하여 그녀를 여도
사(女道士)로 삼아 우선 남궁에서 살게 하고 태진(太眞)이라는 호를 내려 남궁을 태진
궁(太眞宮)이라 개칭하였다. 현종은 아들 수왕(李瑁)에게 죄책감을 느껴서였는지 수왕
에게는 위씨의 딸을 대신 보내어 아내로 삼게 하였다.

태진이 귀비로 책봉되어 양귀비로 불리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지만 남궁에 들어온 태
진에 대한 현종의 열애는 대단한 것이었다. 남궁에 들어온지 1년도 채 못되어 태진에
게서는 마치 황후가 된 듯한 도도한 행동마저 보였다.

현종과 태진 이 두사람은 깊은 밤도 오히려 짧은 듯, 해가 높이 떠올라도 잠자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렇게 하여 일찌기 흥경궁에 근정전을 세워 아침 일찍부터 밤늦
게까지 정무에 열중하던 현종 황제는 정치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상실하여 마치 딴 사
람처럼 되어 버렸다. 남궁에 들어온지 6년 후 태진은 귀비로 책봉되었다. 명실 공히
양귀비가 된 셈이다. 궁중의 법도상 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으나 이때 황후는 없
었으므로 사실상 양귀비가 황후의 행세를 하였다.

양귀비는 더욱 더 현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그녀의 일족들도 차례차례 고관의 자리
에 오르게 되었다. 양귀비는 고아 출신으로 양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갔기 때문에 혈연
을 같이 하는 친척은 없었지만 현종은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양씨 일족에게도
특별한 배려를 하였다. 양귀비의 6촌오빠 양소는 별로 품행이 좋지 않았는 데도 불구
하고 민첩하고 요령있는 행동으로 점차 현종의 신임을 받아 현종으로부터 국충(國忠)
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 후 재상 이림보와 대립하였고 이림보가 실각한 후에는 안록
산과도 대립했던 양국충이 바로 양귀비의 6촌오빠이었던 것이다.

천보 10년(751) 칠월 칠석날에 있었던 일이다.
현종은 화청궁에 거동하여 장생전에서 양귀비와 함께 노닐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깊
어 하늘에는 은하수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건만 웬일인지 칠석의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양귀비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현종은 왜 우느냐고 달래듯 물었으나
양귀비는 그저 울음만을 계속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윽고 양귀비는 눈
물을 닦으면서 띄엄띄엄 그의 심정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하늘에 만짝이는 견우성과 직녀성,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입니까. 저 부부의 지극한
사랑, 영원한 애정이 부럽습니다. 저 부부와 같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이 듭니다...... 역사에도 자주 기록되어 있지만 나이가 들면 가을 부채처럼 버림을
받는 여자의 허무함,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서글퍼 견딜수가 없아옵니다.......\"

양귀비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종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
리하여 두 사람을 손을 서로 붙잡고 그들의 영원한 애정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에게
맹세하는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어지이다.\"

이 뜻을 풀이하면, \'비익조(比翼鳥)\'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새로, 암수가 한 몸이 되
어 난다는 데서 사이가 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연리지(連理枝)\' 또한 중국 전설에 나
오는 나무로, 뿌리는 둘이지만 가지는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데서 부부의 깊은 애정
을 상징한다. 현종과 양귀비는 이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처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개원 24년(736)부터 천보 연간에 걸쳐 조정에서는 간신이 제멋대로 정사를 농락하고
현종은 양귀비에게 정신을 빼앗겨 당왕조의 정치는 부패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이렇
게 해서 번영의 뒤에 숨겨져 있던 위기가 점점 심화되어 갔다. 우선 농촌에서는 균전
제가 무너져 국가의 세입원이 위협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조정의 재정이 궁핍하게 되
었으며 군사 체제의 토대가 되었던 부병제가 무너져 군대를 모집해도 응모하는 자가
없어 군의 사기와 전투력이 급격히 저하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변경 지방의 군사력
을 장악하고 있는 절도사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그의 손에 장악하고 있어 일단 유사시
당왕조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정세로 보아
당의 현종 왕조의 위기는 폭발 일보 직전에까지 다다르고 있었던 것이다.

* http://www.스타투어.com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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