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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133
건릉(乾陵)에 세워진 측천무후의 무자비(無字碑) : 2002년 2월24일(일)
사신(使臣)들의 석상(石像) 앞쪽에는 무자비(無字碑)라 하여, 원래 아무 글씨가 쓰여
져 있지 않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공덕을 도저히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하여 글씨를 새기지 말도록 지시하였다는 것이다. 마치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을 평가하도록 백지 수표를 남겨놓은 것과 같으니, 참으로 측천무후 다운 발상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게 자신이 있었다는 말인가?
무릇 많은 독재자들은 후세 역사가들이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는 건방진 소리들을 많
이 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朴모, 全모씨들이 그런 소리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측천무후는 사실 過도 많지만 功도 많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의 평가로는 공과 과가
6 : 4 정도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현재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일부 글씨는 쪼아서 지운 흔적도 남아있는데, 우리가 방
문했을 때는 보수작업 중이었다.
사신(使臣)들의 석상(石像) 앞쪽에는 무자비(無字碑)라 하여, 원래 아무 글씨가 쓰여
져 있지 않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공덕을 도저히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하여 글씨를 새기지 말도록 지시하였다는 것이다. 마치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을 평가하도록 백지 수표를 남겨놓은 것과 같으니, 참으로 측천무후 다운 발상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게 자신이 있었다는 말인가?
무릇 많은 독재자들은 후세 역사가들이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는 건방진 소리들을 많
이 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朴모, 全모씨들이 그런 소리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측천무후는 사실 過도 많지만 功도 많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의 평가로는 공과 과가
6 : 4 정도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현재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일부 글씨는 쪼아서 지운 흔적도 남아있는데, 우리가 방
문했을 때는 보수작업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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