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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1170

구태익 | 2002.02.27 01:01 | 조회 470
청진사는 당 시대에 당시 수도인 장안 시내 중심에 세워진 이슬람교 사원이다. 지금
도 많은 신도수를 자랑하는 청진사는 당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실크로드의 개척으로 서방무역이 활발해지고, 그 역사의 중심에는 장안이 있었다. 따
라서 장안시내에는 중국인들외에도 서쪽에서 온 상인 등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위해 그들 종교(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라마교 등등)사원이 필요하게 되었다. 당시 당
나라 조정은 이들을 탄압하지 않고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등 포용정책을 썼는데, 중국
인들 이외에 수많은 이방인들의 문화가 융합하여 국제적 문화라는 당 시대의 문화적
특성을 이루었다. 이를 대변해주는 것이 서안 시내 중심의 청진사이다.

이슬람교는 분명히 서남아시아 즉 서역에서 건너온 종교인데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얼마나 번성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하
지만 청진사 내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사원과 달리 돔(dome)이 있는 모스크양식
이 아니라 불교사찰과 같이 평범한 기와지붕일 뿐이었다. 다만 이색적인 것은 아라비
아어나 처마끝이 치켜 올라간 모습, 벽돌의 문양에서 다소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었을 뿐. 아마도 오랜 세월 중국문화에 동화되면서 건축양식도 그들의 전통방식과
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띄게 된 것이리라.

공산당이 특별히 체제에 반하지 않는 종교에 대해서는 별다른 탄압을 가하지 않았기
에 지금까지 청진사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청진사의 전체 배치도를 구하고자 찾던 중, 우연히 입구에 앉아 있던 회족 아
저씨 한 분이 액자에 보관된 조감도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해서, 밀착사진을 찍어 한
장 건질 수 있었다 : 2002년 2월23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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