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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048

구태익 | 2002.02.27 01:01 | 조회 551
시황제는 진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자기 무덤터를 잡고 공사를 벌였다. 36년
이나 걸려 만든 그의 무덤은 왕성을 그대로 지하에 옮긴 듯이 거대하고 호화롭다고 전
해진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가 황제가 되자 마자 여산(驪山) 언덕에서 엄청난 토목공사가 시작되었다. 온 나라
에서 끌려온 70만명이 거기서 일했다. 그들은 세 군데나 지하수가 흐르는 곳까지 파들
어가 무덤을 만들었다. 그 지하수들은 무덤 안 지하 도시를 흐르는 황허ㆍ양쯔 두 강
이 되었으며, 수도 셴양을 본뜬 이 도시는 궁궐들의 축소판으로 가득찼다. 온갖 금붙
이와 보물이 큰 궤 3개에 가득 담겼다. 황제의 관 둘레는 구리를 녹여 둘렀으며, 이
구리벽을 뚫고 들어가는 사람은 화살 세례를 피할 수 없게 설계되었다.\'

진나라의 왕성이 재현된 이 지하 도시에, 고래기름으로 만든 초가 황제의 영생를 밝히
며 꺼지지 않고 탔다.

시황제의 무덤가에는 성벽과 망루·탑·사원 따위가 있었는데, 이곳을 침략했던 반달
족이 불태웠다. 그러나 내성(둘레 2,543m) 외성(둘레 6,294m) 두 겹으로 둘러싸인 지
하 도시만은 침략자의 말발굽을 피했다. 무덤을 파헤친 항우도 지하 도시에는 발을 들
여놓지 못했다.

중국 사람들은 \'대칭\'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무덤의 동쪽에만 병마용갱을 만들지는 않
았으리라는 것이 학자들의 추측이다. 무덤과 그 서ㆍ남ㆍ북 둘레를 모두 발굴한다면,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방대한 유적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무덤은 아직 발굴되지도 않았는데, 기껏해야 부장품을 묻었을 뿐인 주변의 땅굴(병마
용갱)이 벌써 인류의 8대 불가사의로 불리고 있으니, 정작 무덤의 안 모습이 드러난다
면 인류는 또 어떤 불가사의한 유산을 갖게 될까....
(아~~ 생각만해도 끔찍. 오래오래 살아서 진시황릉이 다 발굴되면 다시 들러야겠다)

그때가 언제일까? 진시황릉이 언제쯤 전부 발굴되겠느냐는 질문에 한 중국 고고학자
는 이렇게 말했다.

\"인내는 중국의 미덕이다. 발굴은 천년을 더 갈지도 모른다. 그때는 우리도 유물이 되
어 있으리라.”(뉴스 투데이 - http://www.stoo.com/에서 인용ㆍ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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