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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0231

구태익 | 2002.02.27 01:01 | 조회 2616
고고학자들이 정성을 다해 병마용갱을 발굴하고 있는 모습 : 사진은 병마용갱 안내서
에서 스캔받아 올림

중국정부는 고고학자인 위안중이가 이끄는 산시성 고고학발굴팀을 파견하였다.
이 용갱(俑坑;인형이 묻힌 땅굴)을 발굴하기 시작한 날은 1974년 7월15일.지하군단
군사들은 4.6∼6m 깊이의 땅속에서 벽돌 바닥위에 줄지어 서있었다.병사들만 서있는
보병 대열, 전차와 병사가 함께한 기병 대열이 규칙적으로 섞여 있었다.말 4마리가
끄는 전차에는 병사가 3∼4명씩 타고 있고, 그 뒤에는 보병이 12명씩 서 있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록 발굴팀은 용갱이 어느 시대, 누구의 유적인지 알 수 없었
다.\'심증적으로는\' 진시황릉의 유적이었지만 \'물증\'이 없었으므로 진시황릉 울타리에
서 1.5㎞나 떨어져 있는 용갱을 진시황릉에 딸린 것이라고 확정하기 어려웠다.

발굴이 2주째로 접어들던 날 마침내 확실한 증거물이 나왔다.\'여불위가 승상이 되고
나서 3년째에 만들었다’는 글이 새겨진 구리 극(戟;창의 한 가지)을 찾아낸 것이다.
여불위는 진시황의 아버지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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