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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208

구태익 | 2002.02.27 01:01 | 조회 469
현장법사(서유기의 모델이 되었던 삼장법사)의 금동불상 : 2002년 2월24일(일)

현장법사는 이름이 위(褘)이며, 진혜(陳惠)의 아들로 태어났다. 허난성(河南省) 뤄양
(洛陽) 동쪽에 있는 거우스현(里氏縣) 출생이며, 10세에 뤄양 정토사(淨土寺)에 들어
가 13세에 승적에 올랐다. 장안(長安)과 청두(成都) 및 그 밖의 중국 중북부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불교 연구에 진력한 뒤, 많은 의문을 풀고 또한 불교 경전을 가져오
기 위해 627년(일설에는 629년) 인도로 떠났다.

도중 고창국(高昌國)왕 국문태(麴文泰)의 대접을 받았으며, 인도에 도착한 후 나란다
사원에 들어가 계현(戒賢 : 시라바드라) 밑에서 불교연구에 힘썼다. 당시 카나우지에
도읍하고 있던 하르샤대왕 등의 우대를 받았는데, 641년 많은 경전과 불상을 가지고
귀국길에 올라, 힌두쿠시와 파미르의 두 험로를 넘어 호탄을 거쳐서 645년 정월에 조
야의 대환영을 받으며 장안으로 돌아왔다.

당태종(太宗)의 후원을 받아 74부 1,335권의 경전을 한역한 이외에도, 인도 여행기인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권을 저술하였다.

*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EnCybe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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