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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170
복원된 아방궁 일부 : 2002년 2월24일(일)
진시황제가 세운 아방궁은 진천제일궁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크게 나뉘면 전전(前殿)
과 후전(後殿), 두 개의 건축군으로 구별된다고 하는데 전전(前殿)은 500步(540m), 남
북 50丈(90m)이었고 2층은 1만명이 앉을 수 있는 광대한 것이었으며, 전체면적이 60
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실로 거대한 궁전이었다고 한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고 9년후인 B.C 221년, 제일 먼저 많은 인력과 재력을 들여 궁
전을 지었는데 궁전은 1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후궁의 미녀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어서, 날마다 다른 상대를 찾았던 진시황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모든
미녀들을 다 상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시황은 궁전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다고 하니,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정말인
지 모르지만 그만큼 장대한 스케일이었던 것 같다. 2대 황제가 공사를 계속하였으나
B.C 210년에 그가 자살할 때까지 공사를 완공하지 못했고 3년뒤에 항우가 이 땅을 불
살라 버렸기 때문에 아방궁은 허무하게 잿더미로 변해 버렸으며 <사기>에는 아방궁을
태운 불길은 3개월동안이나 꺼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 http://www.jinchon.co.kr/tr_suan_06.html에서 인용
진시황제가 세운 아방궁은 진천제일궁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크게 나뉘면 전전(前殿)
과 후전(後殿), 두 개의 건축군으로 구별된다고 하는데 전전(前殿)은 500步(540m), 남
북 50丈(90m)이었고 2층은 1만명이 앉을 수 있는 광대한 것이었으며, 전체면적이 60
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실로 거대한 궁전이었다고 한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고 9년후인 B.C 221년, 제일 먼저 많은 인력과 재력을 들여 궁
전을 지었는데 궁전은 1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후궁의 미녀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어서, 날마다 다른 상대를 찾았던 진시황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모든
미녀들을 다 상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시황은 궁전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다고 하니,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정말인
지 모르지만 그만큼 장대한 스케일이었던 것 같다. 2대 황제가 공사를 계속하였으나
B.C 210년에 그가 자살할 때까지 공사를 완공하지 못했고 3년뒤에 항우가 이 땅을 불
살라 버렸기 때문에 아방궁은 허무하게 잿더미로 변해 버렸으며 <사기>에는 아방궁을
태운 불길은 3개월동안이나 꺼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 http://www.jinchon.co.kr/tr_suan_06.html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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