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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건축

구태익 | 2003.01.08 01:01 | 조회 3335
가우디는 20세기초 표현주의 건축가들과는 아주 다른 관점에서 건축가 자신의 표현의지에 의해 지배되는 \'유기적인 조각적 매스로서의 건축 형태를 탐구해온 매우 독특한 건축가이다. 그는 \'자유롭게 흐르는 선적인 형태들을 진정한 3차원의 표현력을 갖는 건축\'으로 전환시킨 재능 있는 건축가였다.

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1852-1926)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작품이 단지 건축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과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이 이해하고 있는 건축이라는 분야와 그의 건축 작품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의 작품은 어느 특정한 분야나 양식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적인 체계로서는 분류하기가 힘들며, 어느 특정한 스승으로부터 사사받은 제자라고 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가우디의 작품은 시대와 양식 그리고 작품이 이루어진 시대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놀랄 만한 관찰력도 자연에 대한 대단한 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늘, 구름, 물, 바위, 나무, 동물이나 산과 같은 자연의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해서 관찰을 통해서 여러가지를 직접 배우곤 하였다.

그의 가족 중에는 건축가라곤 없었으며 단지 구리를 다루는 철공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건축가 집안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교육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가우디는 매우 소박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대단히 명석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배제하지 못한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와는 거리가 멀 정도로 사물을 아무 편견 없이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년간 가우디와 같이 일한 화가인 후안 무네르네에 의하면 가우디는 \'확실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일생 동안 실용적이고 매우 간단하며 기능적인 해결책을 추구하였으며 놀랄 만한 결과를 이룩하였다.

가우디 건축 형태를 관찰해 볼 때,그의 정신 상태가 복잡하거나 좀 뒤틀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의 건물의 들쭉날쭉 한 정면은 바로크식의 건축 개념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한편 불합리한 면도 다소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사실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의 자연에 대한 영감에 의한 건축 구성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서 평면에서 나타나는 선으로서 추상적인 형태에 기초를 둔 간단한 기하학을 처음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건축가들은 논리적인 단순화와 추상화 과정을 거쳐 설계를 하고 건물을 지어왔는데 그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보조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콤파스와 자에 불과하다. 평면에 제도를 그릴 때나 돌이나 나무를 절단할 때에도 항상 콤파스와 자를 사용해 왔다.

2차원의 형태인 평면이나 직선으로부터 정다면체, 정육면체, 4면체, 8면체, 20면체, 5각형의 12면체와 같은 3차원의 형태로 바뀐다.

흙, 불, 물, 공기 이외에 플라톤이 그의 저서 Timeo에서 주창한 바 있고 그의 제자들이 계속 이론을 발전시킨 제오원같은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형태가 자로 잴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콤파스는 원을 그릴 때 필요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에서는 일반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가우디는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이러한 등각의 다면체가 자연에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드문 것이라는 사실을 지각할 수 있었다.

황철광으로 된 정육면체나 수정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프리즘 혹은 미사로 된 5각형의 12면체와 같은 것이 발견되면 자연 박물관에 희귀한 물건으로 간주되어 보관될 것이다.

리우돔 마을의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여름이면 관찰할 수 있었던 자연 형태의 아름다움과 타라고나의 시골 풍경의 광명스러운 점에 감명을 받아서 자연이라는 것이 광물, 동물이나 식물 세계에 아름다운 형태를 탄생시킨다는 사실을 터득하였으며 또한 자연의 의도는 원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유용하고 기능적인 것들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였다.

가우디의 결론은 매우 간단하였다. 만약 건축가가 그의 작품에서 기능성을 추구한다면 그는 미를 찾게 될 것이다. 반면에 직접 아름다움만 찾는다면 예술 이론이나 미학 혹은 척학만을 깨닫게 될 것이며 이러한 추상적인 생각들은 가우디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분야이다.

가우디의 모든 건축은 독창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자연에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준 그것과 매우 유사한 균형된 형태로 만들어졌다.

가우디는 건축가는 균형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건축가는 건물 구조를 고안해서 그 형태를 구조 전문가에게 넘겨서 그 형태에 관한 수학적인 측정을 하게끔 한다. 구조 전문가는 그 형태가 안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판단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건축가는 그의 설계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직업을 바꾸어야만 한다. 연극이나 정치에나 관여하고 건축물에 대해서는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였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소위 밀폐된 천장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석고나 석회 맷돌로 된 조그만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 벽돌 2-3개 정도로만 이루어진 가느다란 형태의 천장 양식으로 15세기 이후로 매우 보편화된 양식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쌍곡선의 포물체 천장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조각 방식을 창조해내기도 하였다. 난로나 환풍기 Mila 저택의 계단 출구는 조각의 측면에서 대단히 아름다운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 모두 카탈란 방식의 천정으로 되어 있으며 Bellesguard와 빠티요 집의 지붕과 동일한 양식이다.

그는 건축에 대한 천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전 일생동안 건축 이외에는 한 것이 없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글도 많이 쓰지 않았으며 여행도 별로 하지 않는 편이었다.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이 있었다.

가우디는 소박하고 수줍으면서도 매우 예민한 사람으로서 자연을 관찰하면서 건축 형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고향과 가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관계로 평생동안 레우스 지역의 억양으로 말을 하였고 카탈류나의 그 지역이 예술 창조를 위해서 매우 이상적인 장소라고 생각하였다. 가우디의 연구가인 네델란드 건축가 장 모레마에 의하면 가우디는 레우스에서 보다 가까이 태어난 사람이 보다 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가우디는 지중해 연안이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에는 이상적인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태양의 빛이 45도 각도로 비추게 되며 모든 물체를 어떠한 굴절없이 완벽하게 밝힐 수 있다. 가우디에 의하면 지중해 사람들은 종합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북쪽 사람들은 분석적이라고 한다. 이 세상의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서 분석력은 필요하지만 예술적인 창조는 종합적인 능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의 지중해의 풍경과 그 지역 국가들의 땅이 지니고 있었던 크나큰 열정은 가우디의 종교적인 정신에 의해서 더욱 커져만 갔다. 그는 자연을 샌프란시스코 데 아시시 식으로 사랑하였다. 자연이 신의 작품이라고 간주하고 그곳으로부터 건축 양식을 얻게 된다면 조물주의 작업은 계속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가우디는 신은 인간을 통해서 창조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고 믿고, 품위가 있는 예술 창조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의 신앙심은 대단하였고 신부들의 충고를 따르는데 그치지 않았다. 여러번 그들과 논쟁을 벌인 적도 있지만 대체로 빅, 마요르까, 아스토르가의 주교 등 교회의 지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그는 기도나 예배 의식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것을 즐겼으나 신학에 관한 논쟁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선호하였다. 그의 건축양식은 매우 시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시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시는 고치만 아프다고 하였지만 히신또 베르다게르 칭이나 Francesch Matheu와 같은 시인과도 친분을 맺었다.

그의 사상은 항상 건축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대만의 건축가인 호테치엔(Hoh Teh-Chien)은 가우디에 관한 그의 박사 학위논문에서 주장하기를 가우디는 형이상학적인 건축을 실현하였으며 그는 건물을 지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밝히는 철학가나 다름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철학이나 건축에 관한 책을 별로 읽지는 않았다. 그는 Solesmes의 승려인 Dom Gueranger의 \"종교 연력\"에 관한 책을 부지런히 읽었는데 종교 카렌다로서 종교 축제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거애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적힌 책이었다. 가우디 자신이 즐기는 건축학 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는 그의 스튜디오 창문 밖을 가리키면서, 저기 보이는 나무가 자기의 제일 좋은 건축 교본이라고 말하였다. 그가 건축한 작품은 얼마 안되는 건물이지만 성 가족 성당 자체로서 건물 한 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69년 이후 그의 17가지 작품이 스페인의 국립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가우디는 그의 작품을 계속적으로 완벽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고 그는 자기의 작품이 완성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다. 또한 시멘트로 완벽하게 건물을 지었으며 아주 미세한 부분 즉 장식이나 보조에 이르기까지 구조에도 치밀하였다. 가구나 유리창, 단절된 일부분 등 모든 종류의 보조 요소까지도 설계하였으며 모델을 반본하는 적은 결코 없었다.

가우디 건물 하나하나가 제각기 특징을 가지고 있고 다른 것과 유사한 면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때문에 하나의 단위를 이루게 되며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하나의 건물에서만 오로지 존재하게 된다.

Walter Gropius가 설계한 Bauhaus 신 건물이 Dessau에 들어설 무렵, 가우디는 1926년 사망하였다. 그 당시에는 Le Corbusier, Siegfried Giedion등이 주창하는 합리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다.

이러한 추상적 개념의 단순 기하학적인 건축 형태는 가우디 작품과는 대치되는 것으로서 그들은 가우디의 작품을 바로크 양식이나 비합리적이라고 간주하였다.

그 이후의 건축가 세대들은 가우디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1952년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 가우디 전시회를 계기로 많은 건축 평론가와 이론가들이 가우디 건축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논문 전시회, 연구과정, 강의가 개최되는 등 가우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나 건축가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안았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저명한 스승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 그들의 해결책을 반복해오는 것이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가우디의 작품은 모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수많은 모방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가우디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어떠한 사람의 해결책을 모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자연에서 영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자연적인 형태에도 다양한 해결책이 있기 때문에 결코 반복될 위험이 없다.

가우디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을 추구함에 따라 경이적인 구조를 발견하였는데 재래의 건축 양식과는 달리 그는 시간을 초월한 자연 속의 그 무엇인가를 추구하였다.

로마 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면 짓고 있는 성당주위에는 떡갈나무나 삼나무 등이 있었다. 고딕 양식의 큰 건물이 만들어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철과 유리로 지은 건물이 주위에 많이 보이지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똑같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아마도 모두에게 만족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과 대자연은 결코 피곤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가우디의 건축은 항상 자연 속에서 직접 해결책을 찾았기 때문에 결코 피곤하지 않으며 그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의 건축은 시간을 초월하였으며 그 이유는 예술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기능적이고 유용한 형태를 만들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가우디의 유명한 말 중에 \"독창성이라는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의 근원은 신이 창조한 자 자연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 전문가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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