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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답사기 : 옮긴글

구태익 | 2002.08.08 01:01 | 조회 3436
세연정(보길도)

- 보길도 기행 중 세연정에서 : 함동진님의 글


보길도 격자봉 아래 부용동계곡, 흐르는 맑은 물 막아 큰 못 이루어 세연지(洗然池)라 하고요. 세연지의 물을 끌어 들여 인공 연못 회수담(回水潭)을 만들었지요. 두 못 사이에 멋지게 세운 정자를 이름지어 세연정이라 했어요.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이지요. 주로 연회와 유희의 장소로 쓰고요, 고산 할아버님은 멋진 시인 할아버지였어요. 세연지에 배를 띄우고 어부사시사를 노래하며 풍류를 즐겼대요.

세연정은 동서남북과 중앙 모두 다섯 곳에 현판을 달았었지요. 비홍교 남쪽에는 혹약암 등의 일곱 암석이 있고요, 정자 서쪽에 편액을 칠암헌(七岩軒)이라 했어요. 중앙은 세연정(洗然亭), 남쪽에는 낙기란(樂飢欄), 서쪽으로 동하각(同何閣), 동쪽에는 호광루(呼光樓)라 했지요...



< 동하각(同何閣) >

내 어찌 세상을 저 버리랴
세상이 나를 저 버렸네
이름은 중서위에 있는 것이 아니거니
삶은 항시 녹야의 규범과 같았다네
(고산 윤선도)


고산 할아버님은 동하각이라는 시를 썼는데요. 은둔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정치야망을 버리지 못는 자신의 처절한 심경을 시로 써서 표현한 것이지요. 세연지는 시냇물을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만든 연못이지요. 흘러가는 계류를 판석으로 제방을 쌓고
마음 심(心)자 모양의 연못을 만들고, 연못 안에 인공섬을 만들고 곳곳에 바위 배치하여 운치를 더하고 물 흐름을 더디게 하여 수면을 고요하게 했지요.
(옥소대에서 세연지를 내려다보면 마음심 心자로 보이도록 꾸며 배치함)

고산할아버님은 옥소대에서 기녀들에게 긴 소매를 단 채색 옷을 입혀 춤을 추게 하고
그림자가 세연지에 비치는 모습을 즐겼다지요. 세연지 연못 가운데 인공섬이 있지요.
세연지 인공섬은 둥그렇게 석축을 쌓고 안에 흙을 부어 나무를 심어서 세연지 연못의 경관이 한층 더 멋스러워요.

세연지에 여러 개의 바위를 배치하여 운치를 더하며 물흐름을 조절하고요, 못 속에 배치한 바위 무더기를 칠암(七岩)이라 하지요. 바위들 때문에 세연정은 칠암헌(七岩軒)이란 별명도 얻었지요.

세연정에는 사투암(射投岩)이란 바위가 있어요.
윤선도 할아버님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국세력의 침략이 잦았던 시대에 사셨지요. 선비님 할아버지라고 어찌 무(武)를 등한시 하셨겠어요? 세연지 건너 산중턱에 옥소암에 과녁을 설치하고 사투암(射投岩) 바위에서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지요. 사투암 바위는 활을 쏘기에 알맞도록 다듬은 흔적이 뚜렸해요.

혹약암(或躍岩)은 세연지 안에 뛰어오를 듯한 형상을 한 큰 바위의 이름이어요.
\"큰 두꺼비가 뛸 듯하고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의 옛 중국 역경(易經)에 나오는 싯귀에서 따온 이름이라 해요. 이 바위는 와룡암(臥龍岩)을 닮아, 촉망되는 인물이 아직 나타나 활동하지 않고 있음을 비유한답니다.

촉한의 제갈량(諸葛亮)은 세상 보기드문 영웅이었지만 삼고초려(三顧草廬)에 응하기 전에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평소 와룡관을 쓰고 있어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불리운 사람이지요.



용처럼 꿈틀거리는 물속의 바위
어찌하여 와룡암을 닮았는고
나는 제갈 공명의 상을 그려
이 연못 곁에 사당을 세우고져 하네
(고산 윤선도)


고산할아버지가 지은 혹약암이라는 한시를 번역한 시인데요. 제갈량을 기리며 기념하고자 한 것은 대망(大望)을 꿈꾸며 장래를 기약하는 고산의 야심이 들어 있는 내용이지요.

고산께서 세연지에서 어부사시사를 부르며 낚시를 한 것은 고기를 낚고자 함이 아니라 큰 뜻을 펼칠 세월을 낚고자 함이었죠.
(三顧草廬 : 유비가 세 번을 찾아가 제갈량을 모셨다는 고사에서 연유한 말)

고산할아버님은 거북 모양의 바위 위에 얹어놓은 비홍교(飛虹橋) 무지개다리를 지나
세연정에 오르곤 했는데, 비홍교는 지금 그 자취 없어져 찾아볼 수 없고 터만 남았지요.

세연지 건너편 대나무 무성히 자라는 곳에 고산할아버님은 충절을 표현하기 위해
타고 다니던 말의 목을 쳐 묻어 놓아, 이 곳을 고산마총(말무덤)이라 전해오고 있어요.

졸졸졸 시내에 제방을 막아 논물 대는 원리를 이용하여, 세연지에 물을 가두기 위한 둑으로 일명 굴뚝 다리라고도 부르지요. 양쪽에 판석을 세우고 안을 진흙과 강회를 섞어 채워서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였고 윗 부분에 다시 판석을 깔았지요.

판석보(板石洑)는 세연지에 물이 고이도록 물막이 둑으로, 옥소대로 오르기 위해 세연지를 건너는 다리로 장마 때는 물이 넘쳐 작은 폭포로 사용하고요, 판석보는 공명共鳴(울림)설계로 적은 물의 넘침에도 울림 폭포소리로 세연정까지 들렸대요...

세연정 입구로 들어오다 왼쪽에 보이는 동대는 사각형으로 쌓은 단이구요.
고산할아버님은 기녀들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고 이를 보며 즐긴 무대라 하지요. 서대는 세연정 입구로 들어오다 보이는 오른쪽에 나선형 모양 삼단의 돌 계단으로 축조되어 있고요, 여기서는 국악을 연주하였다 하지요.

연꽃이 있는 회수담(回水潭)은 세연지 맞은 편의 네모 난 인공 연못으로, 가운데 네모 난 방도方島(사각형의 섬)를 만들어 회수담의 물이 돌게 하고요. 입수구와 배수구를 과학적으로 조절하여 항상 일정한 수위가 되게 하였어요.

연못 가운데에는 노오란 꼬마 연꽃을 심어 고산할아버님의 연꽃 사랑을 보여주고 있지요(큰 연꽃은 번식력이 강해 연못을 순식간에 메꿈으로 회수담 역할을 못하게 되어 꼬마 연꽃을 심었다함).

윤선도 할아버님의 생애에는 기이하게도 세 송이의 연꽃 같은 인연이 있어요.

태어난 곳이 서울의 동부 연화동(지금의 종로구 연지동)이고요, 해남 종손으로 종택을 물려받은 곳이 전남 해남 연동이고 마지막 은거지인 낙서재 주변을 부용동이란 이름을 붙여 연꽃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연꽃은 혼탁한 시류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기품을 잃지 않은 선비나 시인을 상징하는데요. 중국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주돈이는 \'애련설\'이라는 글을 남겨 연꽃의 상징성을 표현했지요...



\"내 홀로 연을 사랑하노니

진흙에서 나서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 요염하지 않고

가운데는 총하고 밖은 곧으며
넝쿨도 가지도 없으나 향기는 멀리 더욱 맑으며
정정하여 조촐히 섰으니

멀리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 매만질 수는 없다.\"

(중국 주돈이의 글)


회수담에도 역시 연꽃을 심어 놓으니 고산과 연꽃의 특별한 인연을 생각하게 되지요.

무도암은 회수담 안에 있는 사각형의 평평한 바위이고요, 고산할아버님은 무도암 위에서 무희들의 춤추는 것을 보며 즐겼다 해요..

유도암은 회수담과 정자에 붙은 바위로 고산할아버님은 이 바위에 앉아 낚시줄을 드리우며, 무도암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시를 읊었다 해요.

회수담에 사각형의 인공섬 방도를 만들고 그 곳에 나무를 심었지요.
회수담방도는 회수담의 물을 돌게 하여 썩지 않게 하고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지요. 세연정 동쪽 축담 밑에는 계담에서 인공연못으로 물을 공급해 주는 터널식 입수구가 있어요.

오입삼출(五入三出)이라 하여 물이 들어가는 구멍은 5개, 인공 연못 쪽으로 나가는 구멍은 30cm아래에 세 개가 만들어져 있지요.

판석보로 막은 계담 물이 인공 연못으로 빨리 유입되며 연못 속의 수면을 고요하게 했고요, 농민들이 개울에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방법을 응용한 고산할아버님의 절묘한 건축조예 멋지지요?

세연정 앞 회수담 쪽에 몇 백년을 자란 큰 노송이 가지를 물속으로 느려뜨리고 있어요. 세연정과 멋진 조화를 이루어 옛부터 이 소나무를 세연고송(洗然孤松)이라 하며, 부용동 팔경 중 하나이지요.

옥소대(玉簫臺)는 세연지 건너 편 산 중턱의 넓적한 바위로, 고산할아버님은 기희(妓姬)에게 소매가 긴 채색 옷을 입혀 춤추게 하고 세연지 못에 거꾸로 비치는 그림자를 보고 즐겼다 하네요.

옥소(玉蕭)란 \'옥으로 만든 퉁소\'로, 기희들의 춤과 더불어 풍악을 연주한 곳으로 보이지요.

봉화대는 세연지를 만들면서 파낸 흙을 쌓아놓은 곳이고요. 고산할아버님은 세연정에서 유희하다가 음식이 필요하거나 낙서재와 연락할 일이 있을 때 이 곳에서 깃발이나 연기를 피워 신호를 주고 받았다 하지요.

지금은 푸르른 나무가 울창하고 여름철에 바람이 서늘하여 여행객들이 땀을 식히는 곳이 되었지요.

세연정 둘레에 쌓았다는 세연정 토성은 일부만 남아 있어요. 토성에는 상록수들이 밀림을 이루지요.

세연지 상류에는 샘물이 세차게 흘러나오고 샘에 내려가기 전 보길초등학교 울타리에는 세연정으로 통하는 길을 터놓아 보길도 부용동 아이들은 고산할아버지하고 날마다 노는 셈이지요.

세연정 앞 회수담 곁과 보길초등학교 담 사이에 고산할아버님이 세연정에서 지으신
어부사시사의 춘ㆍ하ㆍ추ㆍ동 네 수가 각각 큰 돌에 새겨져 있어요.
(시비의 부지는 보길초등학교에서 기증하였다고 함)



어부사시사 시비

春詞(춘사-봄노래)

앞강에 안개 걷고 뒷산에 해비친다
배 뛰워라 배 뛰워라
썰물은 밀려가고 밀물은 밀려온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강촌에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시비의 내용 - 춘사 제 1수)

夏詞 (하사-여름노래)

궂은 비 멈춰가고 시냇물이 맑아온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낚싯대를 둘러메고 깊은 흥이 절로 난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산수의 경개를 그 누가 그려낸고
(시비의 내용 - 하사 제 1수)

秋詞 (추사-가을노래)

물외(物外)의 맑은 일이 어부생애 아니던가
배 뛰워라 배 뚸워라
어옹(漁翁)을 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렸더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사철 흥취 한가지나 가을 강이 으뜸이라
(시비의 내용-추사 제 1수)

冬詞 (동사-겨울노래)

구름 걷은 후에 햇볕이 두텁도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천지가 막혔으니 바다만은 여전하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끝없는 물결이 비단을 편 듯 고요하다
(시비의 내용 - 동사 제 1수)



2002. 8. 4. 한국아동문학회 세미나로 해남 땅끝마을과 보길도를 기행하고. 깊은산골(長山) 함동진 http://www.poet.or.kr/h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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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 윤선도 孤山 尹善道 1587-1671의 연보

ㆍ1587년 6월 22일 한성부 동부 연화방(漢城府 東部 蓮花坊)에서 태어남
ㆍ6세에 학문(學文)을 시작함
ㆍ8세때 해남윤씨 가문의 대통을 잇기 위해 숙부 유기의 양자로 입적함
ㆍ26세때 진사시(進士試)에 장원급제함
ㆍ30세때 12월 집권파(執權派) 이이첨 등의 어지러운 정치를 탄핵하는 병진소를 올림 병진소로 인해 31세 2월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됨
ㆍ37세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귀양에서 풀림
ㆍ42세때 봄 별시문과(別試文科)의 초시(初試)에 장원급제함
ㆍ42세 3월 봉림대군(鳳林大君)ㆍ인평대군(麟坪大君) 두 왕자의 사부(師傅)가 됨
ㆍ50세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킴
ㆍ51세 2월 보길도에 입도(入島)함
ㆍ52세 6월 대동찰방에 제수된 것을 거부한 이유로 경상도 영덕(慶尙道 盈德)으로
귀양감
ㆍ53세 2월 귀양에서 풀림
ㆍ56세 해남금쇄동(海南金鎖洞)에서 산중신곡(山中新曲) 19수(오우가 6수포함) 지음
ㆍ65세 가을 보길도 부용동에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40수 지음
ㆍ66세 8월 예조참의(禮曹參議)가 됨
ㆍ74세 6월(1659년) 효종의 장지와 조재비의 복제문제로 서인 송시열과 논쟁을 벌이다가 함경도 삼수(咸鏡道 三水)로 귀양 감
ㆍ81세 7월(1667년) 귀양에서 풀려 보길도 부용동에 은거함
ㆍ1671년 6월 11일 보길도 부용동 낙서재(甫吉島 芙蓉洞 樂書齋)에서 85세로 돌아가시고, 같은 해 9월 22일 해남군 현산면 문소동 금쇄산성 아래에 묻힘
ㆍ1675년 숙종(肅宗) 때 이조판서에 추증됨
ㆍ1679년 충헌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짐.

(출처 : 선경 보길도 윤고산 발자취를 따라서, 완도군,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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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와 보길도


보길도

ㆍ행 정 구 역 : 전남(全南) 완도군(莞島郡) 보길면(甫吉面)
ㆍ크 기 : 길이12㎞ 넓이 8㎞ 면적32.98㎢
ㆍ인 구 : 약3,400명(남1,700 여1,700명)
ㆍ육지와의거리 : 완도읍 32㎞ 해남(海南)땅끝 12㎞

보길도는 북으로는 노화도, 동쪽으로는 소안도, 서쪽으로는 진도군이 자리하고 남으로는 제주도가 있는 면적 32.98㎢에, 인구 3,424명(남 1,765명, 여 1,6597)의 순박한 주민들이 대부분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계절 푸르른 천혜의 섬으로 윤선도 사적지와 예송리 상록수림, 중리, 통리 해수욕장, 우암 송시열 글쓴바위 등으로 알려져 있어 수많은 문화유적 답사팀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사계절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보길도는 분명 환상의 섬도 아니며 그냥 그대로 한반도 남쪽에 위치하여 크고 작은 섬들과 어울려 그 나름대로의 멋을 한껏 자랑하며 떠 있는 섬일 뿐이다. 단지 제주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들이 상당히 많이 분포하고 있는 난대림의 보고임에는 틀림 없으며 여타의 섬들이 물이 모자라 애로를 겪고 있는 반면 보길도는 그 삼림이 울창하여 물이 좋기로 전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육지가 가뭄이 들어 물난리를 겪고 있어도 보길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보옥리, 예송리 등의 물은 그 맛이 일품이다. 산속에 들어가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상록수림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갯벌과 모래사장, 그리고 검은 갯돌로 이루어진 자갈밭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갖고 있는 섬이기도 한다.

ㆍ보길도 십경(十景) : 고산 유적지, 우암탄시암, 예송리 흑명석(갯돌), 중리 백사장, 월봉 망원설(月峰望遠雪), 큰기미 기암 괴석, 부용리 동백림, 복생 풍란향, 월송 광기암, 보옥 청기암 등을 들 수 있다. 보길도에는 수백년된 동백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겨울에도 동백꽃을 볼 수 있으며 특히 봄에는 동백이 만발하여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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