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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숭례문 현판 : 2005년 8월20일(토)
숭례문 현판은 왜 세로로 세워 썼을까?
이는 \'불의 산(火山)\'이라 일컬어지는 한양 남쪽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서였다.
글씨를 세로로 길게 늘어뜨려 성문 밑을 막고 누르면 화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며 숭례문의 \'崇\'자 역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상징한다.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보면 서체가 장중하면서도 단아하다. 힘이 넘치고 아름답다. 이것
은 태종의 큰아들 양녕대군의 글씨로도 유명하다. 물론 세종의 셋째아들이자 조선의 명필
로 이름을 떨쳤던 안평대군의 글씨라는 주장도 있다.
임진왜란 때엔 이 현판을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몇년 뒤인 광해군시대 어느날
밤, 지금의 서울 청파동 한 도랑에서 서광이 비치기에 파보았더니 숭례문 현판이 있었다
는 이야기도 전한다.
숭례문 현판은 왜 세로로 세워 썼을까?
이는 \'불의 산(火山)\'이라 일컬어지는 한양 남쪽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서였다.
글씨를 세로로 길게 늘어뜨려 성문 밑을 막고 누르면 화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며 숭례문의 \'崇\'자 역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상징한다.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보면 서체가 장중하면서도 단아하다. 힘이 넘치고 아름답다. 이것
은 태종의 큰아들 양녕대군의 글씨로도 유명하다. 물론 세종의 셋째아들이자 조선의 명필
로 이름을 떨쳤던 안평대군의 글씨라는 주장도 있다.
임진왜란 때엔 이 현판을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몇년 뒤인 광해군시대 어느날
밤, 지금의 서울 청파동 한 도랑에서 서광이 비치기에 파보았더니 숭례문 현판이 있었다
는 이야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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