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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149

구태익 | 2002.08.19 01:01 | 조회 1754
다산초당을 내려와 어느 한정식집 마당 한가운데 세워진 남근석(男根石)을 발견하다
: 2002년 8월16일(금)

우리의 전통정원에서는 이처럼 신체의 일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형상물을 배치하
지 않는다. 다만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뿐, 방지원도(方池圓島)처럼..

방지원도의 구조를 살펴보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것(평편한 것)\'이라는 동양
고유의 전통적인 우주관, \'천원지방(天圓地方)설\'에 따라 방지(方池)는 땅이고 음(陰)
이며 여성을 표현한 것이며, 원도(圓島)는 하늘이고 양(陽)이며 남성을 나타내고 있다
고 하였다.

그러면 원도(圓島)는 왜 방지(方池)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음양이 결합하는, 더 쉽게 말하면 남녀가 교합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
현한 것이라 나는 해석한다.

옛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은 외설적이기 보다는 자손의 번성과 농업생산의 풍요를 비
는 일종의 주술적인 의미로서, 지극히 순박하고 자연스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유교의 법도가 지배하는 남녀유별의 사회이었으므로, 남녀의 성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매우 천박하게 여겼으므로(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문명사회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를 정원에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이 그 의미를 깨우치는 사람은 빙그레 웃을 것이고,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연못과 물고기 그리고 섬만 보고 지나칠 것이다. 이런 것이 은유
법이 우리에게 주는 묘미이다.

이에 비해 일본정원에서는 음양석을 여기저기에 배치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것은 표현기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차이이다. 문학에서 직유법은 은유법보다 천박하
고 격조가 낮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이 집 마당에 세워진 남근석은 양기가 왕성하게 일어나길 비는 의미로 좋게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적 정서에는 맞지 않는 천박한 것이다.

그렇다면
.
.
.
http://tygu.yonam.ac.kr/gallery/gallery_read.php?
seqid=1668&cur_page=2&s=&t=&g_id=92\">
보길도의 세연지에는 왜 방지(方池)에 \'방도(方島, 네모난 섬)\'를 두었을까?

이것은 조선조 중기에 큰 두 번의 전란,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사회전반
에 강건했던 유교적 기풍이 허물어졌고 이에 따라 예술이나 생활풍속의 여러 면에서
형식의 파괴가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간 옳다고 믿어왔던 이념이나 사상,
제도나 형식이 두 번의 큰 전란에는 아무 소용도 되지 않더라는 각성은 생활의 여러
분야에 걸쳐 파격 또는 개혁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예로, 고산과 같은 남인들과 우암 송시열로 대변되는 서인들이 격렬하게 대립
했던 예송논쟁은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예송논쟁이란 왕이 죽었을 때 몇 년상을 치
러야 하느냐는, 일견 사소한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서인중심의 기득권 세력
과 남인중심의 개혁세력이 부딛히는 정권쟁탈전 성격이 강했으며 이는 왕을 사대부의
하나로 보는 서인들의 성격과 왕을 초월적 존재로 보는 남인의 정치성향과의 충돌로
서, 조선의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중대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산의 성향으로 보아 조선조 정원연못에서 이어져온 방지원도의 정통적인
틀은 고답적인 것으로 여겼을 것이므로, 파격을 도모하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몰론 뚜렷한 증거를 가지고 하는 얘기는 아니므로,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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