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많이 본 글
댓글 많은 글
하하-131
다산초당 : 2002년 8월16일(금)
이곳은 정약용이 기거하기 전부터 차밭이 만산(滿山)하여 [다산]이라고 불렸다는데,
정약용선생이 \'사암(俟菴)\'이란 호를 버리고 \'다산\'으로 고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
다. 그는 차나무를 근처 여러 산에 이식을 하여 그 후 이곳 차는 오랫동안 명물이 되
었다고 한다. 처사 윤단의 아들인 윤구로(橘園 尹奎魯) 등 3형제가 아들과 조카들의
교육을 위해 정약용을 다산초당으로 초빙했고, 해남의 외가쪽 사람들은 尹孤山이래 家
傳되어오던 천여권의 장서를 제공함으로써 다산초당이 다산학의 산실이 되었다.
이곳은 정약용이 기거하기 전부터 차밭이 만산(滿山)하여 [다산]이라고 불렸다는데,
정약용선생이 \'사암(俟菴)\'이란 호를 버리고 \'다산\'으로 고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
다. 그는 차나무를 근처 여러 산에 이식을 하여 그 후 이곳 차는 오랫동안 명물이 되
었다고 한다. 처사 윤단의 아들인 윤구로(橘園 尹奎魯) 등 3형제가 아들과 조카들의
교육을 위해 정약용을 다산초당으로 초빙했고, 해남의 외가쪽 사람들은 尹孤山이래 家
傳되어오던 천여권의 장서를 제공함으로써 다산초당이 다산학의 산실이 되었다.
댓글 0개
| 엮인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