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정보기억 정보기억에 체크할 경우 다음접속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개인PC가 아닐 경우 타인이 로그인할 수 있습니다.
PC를 여러사람이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는 체크하지 마세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글
댓글 많은 글

하하-121

구태익 | 2002.08.19 01:01 | 조회 2282
<화성의궤> 원본 : 2002년 8월16일(금)

<화성의궤>의 원래 이름은 <화성성역의궤>이다. 이는 1796년 수원성(화성)이 약 2년8
개월의 공사를 마치고 준공되자 정조대왕은 공사보고서 발간을 지시하여, 그로부터
약 5년 후 화성의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가 발간되었다. 유려한 활자와 상세한
그림 자료들, 그리고 수준 높은 인쇄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하
는 이 책에는 성역에 소요된 시일과 인원, 사용된 기기, 성역 전의 성역에 관계된 여
러 사항은 물론이고, 각종 포상의 내용까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공사 인원만 하더라도 아무개가 어느 현장(팔달문 등 구체적 명시)에서 몇일간 어떤
일을 하였다고 기록했고, 일당을 적어 놓아서 개개인의 인건비까지도 셈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한자 이름 없이 항간에서 막 부르는 한글 이름을 한자어로 음역하였다.
김 큰놈이라는 사람은 김 대노미(金大老味), 윤 어떤놈은 윤 어인노미(尹於仁老味),
박 착한놈은 박 선노미(朴善老味) 등으로 기록하여서 당시의 서민이름 연구에 보탬이
될 수 있겠다. 일꾼들의 출신지별로 광주부, 강화부 등으로 나누어 놓았고, 작업일수
는 반일까지 계산하여, 개성부의 석수 임 작은놈(林者斤老味)은 부석소와 남암문에서
577일반 동안 일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이 한 대목만 보아도 개인에 대한 상세정보가 나오므로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공사
못지않게 기록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는 얘기가 되겠고, 공사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그만큼 짜임새있게 운영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당시의 실학자들이 성역
의 설계와 시공 그리고 기록과 정리에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설물에 대한 설명은 아주 자세하고 조리 있게, 비용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읽어 보기
만 해도 그 윤곽이 눈에 잡힐 듯하다. 게다가 바깥과 안에서 본 그림에다 투시도까지
그려 넣어서, 그림만 보고도 시설물의 건축 방법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1975년부터 시작된 복원사업에서 이 화성성역의궤가 설계도 역할을 하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에서 열었는데 그
에 대한 기록도 눈여겨 봄직하다. 음식재료의 물목은 물론이고, 수량까지 적어 놓아
서, 당시의 궁중 요리를 연구하는데 한 방편이 될 것이다. 상량문은 물론 상량식에 들
어간 술까지도 모두 적었고, 회식(호궤)의 참석 인원, 음식 종류, 비용까지도 적었
다. 화성성역의궤는 성역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록해 놓아서 당시의 사회, 정치, 경
제, 과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제한적이나마 공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발간하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나 정확한 수치와 자료로 작성하는지 의문이다. 보고서 자체를 놓고 보면 더 이상의
완벽시공이 없으나 실제 현장의 경우와는 종종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공사나 시행착
오는 있을 수 있다. 겸허하게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솔직한 보고서
가 될 것이다. 어느 공사든지 솔직한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부실 공사를 막을 수 있
다. 200년 전의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는 그래서 민족의 큰 자랑거리다.

http://www.cosguide.com/에서 인용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98개(8/15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