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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激戰)의 후기(後記)

구태익 | 2002.02.01 01:01 | 조회 3075
향미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어제(1/31) 님의 항복문서를 받고 저는 무척 유쾌·상쾌·통쾌했습니다. 해서, 저는 이 사건을 저의 <1·31大捷>이라 명명·기억하고자 합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말빨에서 남을 이겨본 적이 없는(論理라면 몰라도) 어리버리가, 自他가 공인하는 當代 최고의 말빨 향미님을 꺾었다는 것이 너무도 기뻐, 어젯밤 항복문서를 프린트까지 하여 평소 농불회를 거의 접속도 않는 황계순에게 보여주며 자랑하였습니다.

하지만 황여사는 뛸 듯이 기뻐해 주리라는 저의 예상과는 달리 시큰둥했습니다. \"좀 읽어봐라\"하며 식탁 위에 던졌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 하던 일(밥상차리기)만 하더이다. 그래서 밥상머리에 앉아 참다못해 \"내가 읽어줄께\"하며 <弔香美文>을 몇 줄 읽는 동안 듣는 것 같더니, 이내 분위기 파악못하고 끼어든 둘째(이놈이 초등학교 4학년이면서 이리 눈치가 없어)의 질문에 답변하느라 내 말을 듣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허탈과 분노... 이건 초등학교 때 100점 받았다고 시험지 들고 와서 어머님께 자랑하는데, 칭찬은 커녕 외면당하는 기분이 이랬을 것입니다. \'당연한 걸 뭘 자랑하냐?\' 그런 심정인지, \'니가 뭔데 내 동생 울맀노?\'하는 심정인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난 그 순간 너무도 화가 나서 프린트물을 집어던졌고, 묵묵히 밥만 먹었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속으로만). \'우째 마누라란기 이래 남편 마음도 몰라주노...\' ㅠ.ㅠ

하지만 울다보니(속으로)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동생을 울릴 때 느끼는 응징의 환희와 성취감은 늘 잠깐이었고, 곧 이어닥칠 어머님의 무시무시한 잔소리와 매 타작을 당할 것 같은 공포... 그렇습니다. 농불회원도 아닌 것이 농불회의 최고 지성을 울렸는데, 농부리들이 절 가만 놔두겠습니까? 예쁜 동생이 울고 들어왔는데, 언니·오빠들이 가만있겠습니까?(황계순이 그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누나가 동네에서 맞고 들어왔는데, 아우들이 가만있겠습니까?

아아~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때, 향미님의 컬럼을 첨 읽었을 때 \'재밌네, 근데 좀 맘에 안든다\'하고 조용히 나갔더라면 이 엄청난 공포는 느끼지 않아도 좋았을껄...

향미님, 지금 이 글을 \'가진 자의 오만\'이라 하셔도 좋고 \'병주고 약주냐?\'하셔도 할 말은 없으나, 제가 그 때(향미님의 컬럼을 첨 읽었을 때) 조용히 나가지 않고 한 마디 거들었던 건 몇 해전 저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주어 인생관이 달라지게 했던 어떤 천적(天敵) 한 분과의 경험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혀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지금부터 드리려는 제 인생에서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패배의 경험을 보시고 맘을 푸셨으면 합니다. 농부리님들 용서하시고, 돌 던지지 마세여. 밤길 활보하며 편히 다닐 수 있도록... 저도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넘 아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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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그를 하려니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배경설명이 있어야겠습니다. 성가시더라도 좀...

제가 현재의 이 학교로 온 것이 1996년 2월이니, 그 해 1학기 개학을 하고 한 보름이나 되었을까? 우리 학교는 교수라 해봐야 학장포함 27명밖에 안되는 조그만 학교라서 교수 하나가 공채로 온다하니 어떤 넘인지는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났을 것인 바, 그 때나 지금이나 향미님 보다 더 어리바리(뭉기형이 더 잘 알 것임)한 저는 누가 누군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죠. 아마 그 분은 그 때 후배가 하나 왔다는데 어떤 넘인지 알고 싶어 하셨을 것입니다. 우연히 학교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내려오는 길에 그 분이 이것저것 물어보시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내려오다가 저의 연구실이 가까워지자 연구실 구경이나 하고 가자는 그 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던 지라, 연구실로 같이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하다보니 본인이 농대 원예과 71학번 姜台錫이라 하시더군요.

그래 어쩐지 그간 얘기하는 것이 나랑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바가 많아 참 맘에 든다고 생각했더니, 결국 선배더라는 것이죠. 그 때 알았습니다. 동문(同門)이란 것은 같은 문을 드나들었다는 의미뿐 아니라 결국 同시대를 같은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하였음으로 인해 얻어지는 정서적 일체감을 말하며, 이로 인해 더욱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나보다 하는 것을.. 그 날 이렇게 시작한 대화가 그러니까 저녁을 먹고 내려와서부터 치더라도 오후 6시반에서 거짓말 전혀 보태지 않고 다음날 새벽 4시반까지 꼬박 얘기의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정말 저의 인생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 술도 한 잔 안마시고, 화장실도 서로 한 번도 안가고 커피 단 한 잔씩만을 마시면서 무려 10시간을 얘기했다는 것은 정말 기네스 기록감입니다. 그 때 이미 강적(强敵)임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렇게 한 번 찐하게 정(情)이 들고나니 7년 선배라도 만만해지더라구요. 그것이 다음과 같은 화(禍)를 자초(自招)하였습니다.

<첫번째 패배>

그러던 어느 날 종강 무렵이었는데, 우리 학교는 <낙동향우회>라는 지연(地緣)모임이 있습니다. 학생들 自生모임인데, 이 놈들이 교수들도 간혹 초대해서 술값을 내게 만들기도 하지요. 고향이 안동(安東)인 姜교수와 고향이 진주인 金모교수(농학과 61학번)가 초대되어 우연히 합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제가 말이죠. 한 잔 먹은 김에 갑자기 건방을 떠느라고, 하늘같은 선배님께 \"金교수님은 고향이 진주인데, 여기는 뭐하러 오셨나요?\"하고 시비를 건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재차 \"여기는 낙동향우회인데, 낙동강 물줄기하고 진주 남강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하고 물었죠. 하여간 죽을라고 작정을 했던 모양입니다. 김교수는 순간 말문이 막히자, \"얌마 낙동강 그런 거 따지지마, 낙동향우회란 영남사람 전체를 지칭하는 상징이야\"하고 어물쩍 넘어가시려 하자, 문제의 姜교수님이 \"구교수, 남강이 진짜 낙동강하고 관련이 없나?\" 진지하게 물어오시더군요. 순간 간이 부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저는 \"남강이 와 南江인교? 南으로 흘러가니 南江이지. 洛東江은 東으로 흘러가니 洛東아인교?\"하고 되받았죠. 그랬더니 \"진짜가?\" 재차 확인. 순간 속으로는 \'진짜 그렇던가?\' 의심을 하면서도 어쩝니까 일단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하모요, 南江은 진주에서 사천만을 통해 남해로 바로 흘러가고 낙동강은 동쪽으로 돌아가는데 어디서 만난단 말인교?\", \"아일낀데..\" \"맞소, 마\". 잔뜩 의심하는 姜교수를 물리치고 그 날밤 난 南江과 洛東을 주제로 큰소리 뻥뻥쳤었습니다.

향미님, 지도 있으면 함 꺼내보십쇼. 진주 남강이 어디로 흘러드는지.. 술자리가 파한 뒤 연구실로 급히 돌아와서 불안한 마음에 지도를 펼쳐보았습니다. 아아~ 난 몰라. 이를 어쩌나... 지리산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경호강과 덕천강이 진양호에서 만나 남강을 이루더니 진주시가지를 돌아 갑자기 北上하여 의령을 지나 창녕 남지에서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흑흑흑...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잘난 척.. 큰소리 뻥뻥 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정말 혼자 있는데도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라(물론 술기운도 좀 있었겠지만) 머리끄댕이 쥐어뜯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으윽..\"

다음날 아침 다시 식당에서 姜교수님을 만났을 때 姜교수는 그저 조용히 미소만 짓고 계시더군요. 제가 가서 사죄했심다. \"행님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진주 남강이 낙동강 지류 맞데요.\" 정말 하기 싫은 이 한 마디에 \"그렇쟤? 나도 어제밤 긴가민가해서 지도책을 펼쳐봤더니, 낙동강하고 합쳐지더구만\" 더 이상 말씀 않으셨지먄, 그 침묵의 순간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저는 묵묵히 밥만 퍼먹고 姜교수님이 빨리 나가주시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패배>

이것도 역시 문제의 천적(天敵) 姜교수님과 관련된 일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부산출신 교수들이 몇 있습니다. 식당에서 몇몇 부산 분들이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객담을 나누고 있는 가운데 천적 姜교수님이 다가와 대화에 거들기 시작했지요. 서해대교 건설을 화제로 얘기를 하던 가운데 갑자기 姜교수님이 옛날 부산의 명물 영도다리 알지 하면서, 하루에 두 번 들던 그 영도다리가 어떻게 들렸는지 기억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부산 분들은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다고 머뭇거릴 무렵, 몇 해전 쓰라린 패배의 기억도 잊고, 나서기 좋아하는 이 몸이 얼른 생각해보니 가운데가 들리는 사진을 본 것 같아서, \"그거 양쪽으로 들렸던 거 아니요?\" 했더니, 옆의 다른 부산출신이 \"아이다. 섬에서 육지쪽으로 들었다\". 또 다른 이가 \"맞다. 육지에서 섬쪽으로 들었던 것 같다\" 설왕설래(說往說來),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지난번 패배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반드시 만회하겠다는 일념에서 거물가물한 기억을 총동원해서 추억의 영도다리를 연상해보았으나, 도무지 직접 본 기억은 나지 않고 어릴 적 용두산공원인가 시청 전시실에선가 본 사진이 생각나 집중·집중 또 집중했더니 아무래도 내가 맞는 것 같더군요. 해서, \"맞다. 양쪽으로 들린다\" 계속 주장했심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당시는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이라 금새 찾아볼 수가 없었던지라 금방 확인이 안되었죠. 姜교수님 말씀인즉 자신이 무슨 자료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부산 영도다리를 알게 되었는데, 1934년에 건설되어 1957년까지 하루에 두 번씩 들었고 섬쪽에서 육지쪽으로 걸쳐진 세 번째 교각까지는 고정되어 있었으며, 육지쪽에 모터가 달려있어 육지쪽 교각끝을 축으로 들어올렸다는 자상한 설명을 곁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에서 <영도대교>내지 <영도다리>를 찾아보니 그 말이 맞아요. 한편으로 내 기억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 것이 내가 기억하는 추억의 사진 속에는 분명히 가운데가 들린 것이 맞단 말이죠(섬쪽에서 세 번째 교각까지는 고정되어서 그렇지). 하지만 왜 양쪽으로 들리다고 주장했는지, 양쪽으로 든다면 이중으로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생각을 순간 왜 하지 못했는지.. 그 날밤 난 또다시 한웅큼의 머리 끄댕이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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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리 사소한 일에 목숨거냐굽쇼? 그건 본 제품의 특성을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인데, 저는 저 자신이 매우 사변적(思辨的)인 인물이라 생각하거든요. 사변적(思辨的), 즉 \'골똘히 생각하여 시비를 가림\' 알려면 똑바로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궁금한 게 있으면 의문이 풀릴 때까지 잠이 안오는 거.. 헌데 저보다 더 큰 천적(天敵)앞에서 왜 그런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목소리만 높이고 디리 우기기만 하였는지.. 그건 아마도 상대가 선배이기에 후배로서 그냥 한번 앵겨보는 심정으로 대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姜교수야 지금도 내가 당신을 천적(天敵)이라 생각한다는 것조차 모르시지만 이런 두 번의 대패(大敗)가 있고 난 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하는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여 괴로워하며, 앞으로 더욱 어수룩하게 대충 아는 지식으로 우기지 말자고 결심하였답니다. 그건 저에게도 직업상 더욱 중요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향미님이 어수룩한 논리(내가 보기에)로 감정만 앞세워 대들었으니, 어디서 뺨맞고 어디서 화풀이한다고 내가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ㅋㅋㅋ...

향미님께서 잘 걸렸다 하시면서 기고만장하실 때, 사실 제가 더 속으로 \"쾌재(快哉)라!!\" 외쳤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남자는 머리로 생각하고 여자는 가슴으로 생각한다는 말도 있지만, 향미님 당신은 상대를 즉 본 제품의 특성을 잘 몰랐던 겁니다. 왜냐? 내가 농부리가 아니었으므로 나에 대한 신상(身上)정보가 없었던 게지요. ㅊㅊㅊ...

향미님, 정말 흥미로운 영화 한 편 나왔더군요. 지난번에 얘기한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향미님이 시작한 \"if~\"가 주제인가 봐여. 김재은님이 향미님께 5만원 걸었다가 깨졌으니 그 돈 받아 영화 한 편씩 때리고 난 뒤, 만반의 준비를 하시고 제2차 공방을 벌여보는 것이 어때여? 분명 그 영화 속에 논쟁거리가 있을 것 같아요. 시간과 거리 관계상 만나서 함께 가기는 어렵겠고.. 음.. 향미(向美 ?)님은 도일(渡日 ?)님과 같이 가서 보시고 저는 황여사랑 가서 영화보고 맛있는 외식을 한 다음 영수증을 재은님께 드리면 정산해주시겠져? 재은님 ?... 一口二言하시면 담에 만날 때 혼내줄끼요.

이건 꼭 어릴 때 동생(내 동생이 향미님과 비슷한 연배, 1963년 11월생) 울리고 야단맞고 와서 달랠 때 기분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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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답글 '구-사-부-' 최향미 2313 2002.01.24 01:01
138 답글 나의 사랑, 나의 조국 최향미 2884 2002.01.30 01:01
137 답글 화이팅!! 김재은 2231 2002.01.31 01:01
136 답글 끝까지 엥겨라 변문기 2296 2002.01.31 01:01
135 답글 계속, 계속... 이정양 2143 2002.01.31 01:01
134 답글 최향미님의 빛나는 반론을 읽고 구태익 3183 2002.01.30 01:01
133 답글 감탄 변문기 2132 2002.01.31 01:01
132 답글 선배님 화이팅!! 박세호 2095 2002.01.31 01:01
131 답글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마지막 한 구태익 2659 2002.01.31 01:01
130 답글 심하다.. 변문기 2510 2002.01.31 01:01
129 답글 아쉬워요 이준식 2093 2002.01.31 01:01
128 답글 내 이럴줄 알았다... ㅠ.ㅠ 구태익 2143 2002.01.31 01:01
127 답글 항복이요.. 최향미 2165 2002.01.31 01:01
126 답글 미안해여^^ 구태익 2251 2002.01.31 01:01
125 답글 조 향미 문 (弔 香美 文) 최향미 2963 2002.01.31 01:01
124 답글 마음 아파요... 구태익 2273 2002.01.31 01:01
>> 답글 격전(激戰)의 후기(後記) 구태익 3076 2002.02.01 01:01
122 답글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요 김재은 2247 2002.02.02 01:01
121 답글 魚走九里 구태익 2169 2002.02.02 01:01
120 답글 이제 보니 최향미 2323 2002.02.02 01:01